스티븐 스필버그 - <더 포스트>

  현대 사회에서 언론은 강력하다.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하며 권력 남용을 견제한다. 그렇기에 강력한 집권을 원한 정부는 언론을 통제하려 한다.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언론은 가까운 곳에서 투쟁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지키려한 사람들을 <더 포스트>에서 만나보자.

▲ CGV아트하우스 제공

  1971년 6월 13일, 미국 제일의 일간지 뉴욕 타임스는 베트남 전쟁의 비밀을 담은 ‘펜타곤 페이퍼’를 찾아내어 최초로 보도한다. 미국의 전 국방부 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의 지시로 작성된 펜타곤 페이퍼는,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네 명의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 사실을 담고 있었다. 반전과 평화를 외치던 정부가 전쟁을 지원하고 선거에 개입해왔으며, 불리한 전황 속에서 사상자만 늘고 있는 전쟁을 억지로 지속한 사실은 국민을 분노하게 한다. 1급 기밀문서를 보도한 뉴욕 타임스가 정부에 의해 기소당하며 위기에 처했을 때, 카메라는 경쟁사인 워싱턴 포스트를 비춘다.

  뉴욕 타임스의 보도 후, 워싱턴 포스트는 난장판이 되었다. 편집장 벤 브래들리는 뉴욕 타임스의 기사를 따라 써야 하는 것에 분노하며 펜타곤 페이퍼를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얼마 후 기자 백키디언이 펜타곤 페이퍼를 유출한 내부고발자 다니엘 엘스버그와 접촉하지만, 이미 정부가 보도 금지명령을 내린 상황. 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추가 보도는 특종도 아니거니와 워싱턴 포스트의 경영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뻔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은 남편이 죽고 회사를 이어받은 여성 경영인이다.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정적 시선을 받았으며, 회사는 재정 위기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벤이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하자, 캐서린은 언론의 자유와 회사의 존속 사이에서 고민한다. 그녀의 오랜 친구였던 맥나마라는 닉슨 대통령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회사를 파괴할 것이라며 만류하지만, 국민을 속아왔다는 생각에 고민은 깊어져만 간다.

  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보도는 캐서린에게 위험한 모험이었다. 아버지와 남편이 쌓은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었다. 캐서린은 누구보다도 회사를 사랑했고, 직원들을 걱정했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발행하는 것이며, 보도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패배와 같다는 벤의 외침에, 캐서린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 영화를 두고 ‘올해의 미국이 만든 영화’라고 말했다. 분명 이것은 4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의 투쟁이, 캐서린 그레이엄의 강렬한 결단이 지금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위대한 보도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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