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호 - <갑의 횡포, 을의 일터>

  모두 쌈짓돈을 들고 경매장에 오자. 20달러를 두고 벌이는 이곳의 경매는 특이한 점이 있다. 최고입찰가를 부른 사람과 차상위입찰가를 부른 사람 모두 경매인에게 입찰가를 줘야 한다. 물론 20달러 지폐는 최고입찰가를 부른 사람에게 돌아간다. 경쟁이 붙은 두 명은 서로 입찰가를 계속 올려 불러야 할 것이다. 맥스 배저먼 교수는 이 경매 실험을 대학원생에게 10년에 걸쳐 200번 실행하였는데, 최고 입찰가와 차상위 입찰가의 합이 39달러인 경우는 한 번도 없었고, 최고기록은 407달러라고 밝혔다.
 
  한국에서 갑과 을의 도급 계약이 이토록 공고한 것은 경제학적으로 특이한 현상이다. <갑의 횡포, 을의 일터>의 저자 양정호는 ‘갑을’ 사회의 견고한 축 두 개를 설정한다. 바로 지대추구행위와 외주화이다. 지대의 정의를 밝히기 전, 위의 경매를 예시로 지대에 대한 직관을 제공한다. 여기서 압도적인 이익을 취하는 경매인의 20달러가 바로 지대인 것이다. 20달러 지폐 경매라는 독점적인 장을 열면, 을들이 뛰어와 서로의 손에 피를 묻히는 현상은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저자는 지대추구행위를 이렇게 정의한다. 부당한 방식으로 경쟁을 회피하며 지대를 추구하는 행위. 가수 조영남은 무명화가에게 약간의 보상을 지급하고 그림 대부분을 그리게 한 뒤, 자기 것처럼 전시,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년 넘게 미술계에 몸담고 있었던 화가에게 막 미술계로 뛰어든 조영남이 불공정한 요구를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를 독점적인 자산인 유명세를 이용하여 지대추구를 꾀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유타 대학의 경제학 교수 E.K. 헌트는 이를 ‘보이지 않는 발’이라고 했다. ‘보이지 않는 손’의 알레고리처럼, 배타적인 특혜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은밀하게 행해지지만 타자를 해한다.

  저자는 이 외에도 ‘갑을’ 사회를 만드는 다른 요인을 소개한다. 갑을의 관계를 합법적으로 보호해주는 외주화도 그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갑의 비도덕적 행위를 고발하는 데나 을의 안타까운 상황을 부각시키는 것에 경도되지 않고, 경제적인 견지로만 ‘갑을’ 사회를 분석하는 책의 시선이 무척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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