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간 평창에서 펼쳐진 각본 없는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그 길이를 감히 헤아릴 수 없는 100분의 1초 차이에 온 국민이 환호하고 탄식했다. ‘간발의 차이’ 가 만들어낸 결과는 비단 금과 은이 가진 금전적 가치의 차이로 환산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무의미했던 찰나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고통을 모두 보상받고도 남는 가치가 될 수 있다. 분초를 다투는 재난 현장 또한 마찬가지다. ‘찰나의 시간’ 이 사람의 생사를 가르는 문제로 직결된다. 지난겨울 곳곳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 참사는 모두 불과 수 분 내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지난 1월 26일 일어난 밀양 세종병원 화재는 최악의 대형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반면 그로부터 불과 8일 후 비슷한 양상으로 시작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화재는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결코 길지 않은 대피 및 대응 시간의 차이가 극명한 결과를 낳았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신속하고 안전한 대피가 가능했던 이유는 철저한 훈련 때문이었다. “평소에 하는 소방 훈련인 줄 알고 그때처럼 했다”라는 병원 관계자의 말에서 안전 의식이 얼마나 몸에 배어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실제 상황과 다름없는 재난대응 훈련을 통해 사고 발생 시 본능에 가까운 속도로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매뉴얼의 핵심은 모든 구성원이 그 내용과 차례를 숙지하여 실제 상황에서 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행하는 데 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은 병원 임직원은 물론이고 관내 소방서와 환자 모두가 화재대피훈련에 참여하도록 했다. 건물 내에 존재하는 모든 구성원이 매뉴얼을 몸소 익혀 실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질서 있게 대피한 덕에 이른바 ‘골든 타임’을 벌 수 있었다. 한편 필자가 지난 일 년간 본원 생활관에 거주하는 동안 실제 상황을 가정한 화재대피훈련에 직접 참여한 기억은 단 한 차례도 없을뿐더러, 건물별•상황별 대응 매뉴얼의 유무와 그 학습 경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같은 맥락에서, 사상 초유의 대입수능고사 연기를 초래한 지난해 11월 포항 대지진의 영향에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필자의 오후 강의가 시작될 즈음, 휴대폰의 요란한 경보음과 함께 누구나 체감할 정도로 강의실이 진동했다. 그러나 강의실에 있는 학생 중 배운 대로 책상 밑에 피신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뿐 아니라 교수님께서는 웃어넘기시며 강의를 계속하셨고, 강의실 밖에는 건물 밖으로 대피하려는 일부 학생들이 우왕좌왕하느라 혼란만 계속되었다. 전 국민이 지진 및 지진해일 대피 훈련에 참가한 ‘2017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 이 있은 지 정확히 2주 만의 일이다.
 
  미국의 한 보험사에 근무하던 허버트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는 1931년 이른바 ‘하인리히 법칙’을 발표했다. ‘1:29:300의 법칙’ 으로도 잘 알려진 이 법칙은 통계적으로 한 건의 대형 사고 이전에 반드시 29건의 경미한 사고와 300건의 잠재적 징후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이 법칙에 따르면 근래 우리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킨 재난 사건들을 단순 사고로 치부하고 쉽게 넘길 일은 아닌 듯하다. 이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위기의식이 절실하다. 유사한 내용의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 은 사소하게만 보이는 안전 의식의 흠이 한순간에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야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봄학기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구성원을 맞이함으로써 또 다른 카이스트의 미래가 시작되었다. 누군가 책임(Responsibility)은 반응(Response)의 능력(Ability)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에게 안전한 카이스트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잠재된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철저한 안전 의식을 갖추는 능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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