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모포비아란 생필품이나 먹거리에 포함된 화학 물질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불안에서 비롯된 심리적 현상을 지칭한다. 국내에서는 지난해에만 살충제 계란, 발암물질 생리대 등 여러 제품군에서 높은 수치의 화학물질이 검출되며 소비자들의 혼란을 가져온 바 있다. 최근 식품이나 화장품 등 대부분의 제품군에서 유기농, 혹은 천연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는 것 또한 이러한 소비자들의 불안 심리를 의식한 마케팅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외로 케모포비아와 관련된 이슈들을 정확히 짚고, 같은 실수를 답습하지 않기 위한 기업과 정부의 노력을 다룬다.

케모포비아, 사회 현상으로 자리잡다
  지난해 병원을 찾은 임산부 1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99%가 넘는 임산부 대부분이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임산부들이 걱정하는 구체적인 화학물질로는 염화비닐 수지 재질의 플라스틱 용기, 방부제 재질의 가습기 살균제 등이 언급되었다. 작은 표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이지만, 일상생활 속 화학물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이 더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임은 분명해 보인다.
  앞서 언급한 케모포비아(Chemo phobia)는 ‘화학적인’이라는 뜻의 케미컬(Chemical)과 ‘공포’를 뜻하는 포비아(Phobia)를 더해 생겨난 단어로, 말 그대로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증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생소한 단어일 수 있으나, 생소한 현상은 절대 아니다.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생필품에 대한 불안은 이처럼 새로운 단어를 형성할 정도로 하나의 고정된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가습기 살균제에서 발견된 유해 물질
  우리에게 익숙한 케모포비아 이슈 중 비교적 오래된 이슈는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이슈이다. 당시 피해 규모로 집계된 사망자만 100명이 넘었고, 이 중 절반 이상이 4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이었다는 점에서 큰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바 있다. 국내에선 화학물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이나 불만이 극단적인 분노로 이어진 대표적 이슈로 손꼽힌다. 이제 햇수로 7년째 들어선 비교적 오래된 사건이지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들의 정신적인 보상은 물론이고, 사건의 주요 책임자들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불만이 많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들어서야 사건 당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세 군데 업체들에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이처럼 가습기 살균제 이슈가 불러온 파장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직접적인 피해를 유발한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은 크게 PHMG(Poly-hexamethylene Guanidine), PGH(oligo(2-(2-ethoxy) ethoxy-ethyl) guanidium chloride), CMIT(Chloromethylisothiazolinone)/MIT(Methylisothiazolinone) 혼합물로 분석되고 있다. 당시 안전성평가연구소(Korea Institute of Toxicology, KIT)와 환경단체들은 각각 독성학적 자료, 역학 자료에 초점을 맞춰 유해성을 판단하면서 상당한 입장차를 보였다. KIT의 경우, 흡입독성실험에서 CMIT/MIT의 독성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고, 이는 가습기 살균제의 제작 및 유통에 관여한 업체들이 피해보상을 거부하는 근거가 되었다. 환경단체의 경우, 단순히 독성학적 자료에만 의존해서는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판단할 수 없다며, 가습기 살균제가 피해자들의 사망이나 질환과 관련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 신고자가 2016년 말 기준으로 5,000명이 넘는 것만 보아도 가습기 살균제가 안전하다는 검사 결과는 신뢰성이 떨어진다. 아직도 CMIT/MIT 유해성 연구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살충제의 주성분이 계란에서 검출돼
  가습기 살균제에 이어 지난해 하반기, 국내에선 크게 두 번의 케모포비아 이슈가 발생했다. 첫 번째는 살충제 계란 사건이었다. 계란에서 발견된 살충제 성분으로 인해 계란이 들어가는 모든 식품의 소비가 큰 폭으로 줄어들었고, 그 영향으로 인해 판매유통업을 포함한 관련 업계의 생계가 위협받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럽산 계란에서 발견된 피프로닐이 경기도 양주의 한 농가가 생산한 계란에서 검출되어 논란의 시발점이 되었다. 피프로닐은 광분해 될 수 있는 성분으로, 광분해산물의 독성이 강해 유럽 식품안전청에서는 피프로닐 함량과 광분해산물의 함량을 더한 합산치로 유해 정도를 판단한다. 유럽 식품안전청 기준 일평균 피프로닐 허용 노출량은 0.005mg/kg로, 유럽과 우리나라 모두 검출 당시 해당 허용치를 초과했다. 대형마트에 계란을 납품하고 있는 큰 규모의 업체들도 논란을 피해가지 못하면서 대부분의 소비자가 살충제 계란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공동 전수조사에 따르면, 전체 산란계 농장의 약 4%에 해당하는 농장에서 살충제 계란이 취급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해당 농장에서 생산한 계란에서는 비펜트린, 피프로닐, 플루페녹수론 등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유해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었다. 이 물질들은 세포호흡을 방해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으며, 개미나 진드기의 유충이 성체로 변태되는 과정을 저해하는 대표적 살충제 성분이다.
  언론의 연이은 살충제 계란 관련 보도에 소비자들의 심리는 불안을 넘어선 공포로 이어졌지만, 식약처 등 관련 기관에서 발표한 조사 결과는 한마디로 ‘유해하지만, 인체에 큰 영향은 없다’였다. 이후 가습기 살균제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전문가들은 2살 미만의 아기가 하루에 24개의 계란을 먹어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지 않으며, 성인의 경우 매일 2개씩 계란을 섭취한다고 해도 체내에 만성 독성이 잔류할 확률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계란에서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추가 보도가 잇따르며 소비자들의 입장은 계란을 먹지 않는, 즉 소비를 줄이는 쪽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DDT는 유기염소 계열의 살충제로, 국내에선 1979년부터 사용이 금지된 유해 성분이다. DDT가 계란이 아닌 닭에서도 검출되면서 닭고기 소비마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유럽에서 시작된 발암물질 생리대 논란
  두 번째는 발암물질 생리대 사건으로, 마찬가지로 지난해 하반기 살충제 계란과 비슷한 시기에 국내 언론에서 보도되었다. 생리대에 대한 논란은 살충제 계란보다 훨씬 전인 2014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의 한 시민단체인 ‘지구를 위한 여성의 목소리(Women’s Voice for Earth)’가 P&G사에서 납품하는 생리대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을 검출한 검사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보다 3년이 지난 2017년에 여성환경연대가 VOCs를 검출한 검사 결과를 식약처에 제출하면서 논란이 공식화되었다. 식약처는 여성환경연대에서 제출한 검사 결과가 공식적인 방식으로 측정되지 않았다며 자체적으로 VOCs 수치를 다시 검사했고, 생리대와 기저귀 모두 기준치를 초과하지 않는 안전한 제품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성환경연대가 제출한 생리대의 구체적인 제품명이 언론에 공개되며 식약처의 검사를 불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정부와 언론, 소비자들의 혼란만 키워
  세 이슈의 가장 큰 공통점은 어떤 관점에서 유해성 검사를 진행했는지에 따라 그 판단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세 사건 모두 공인된 정부 기관에서 문제없다는 입장을 내비치면, 시민단체나 언론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분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계란, 발암물질 생리대에 이어 어떤 화학물질이 또다시 케모포비아를 불러올지는 알 수 없다. 화학물질을 일체 사용하지 않겠다는 노케미(No-Chemi)족까지 등장할 만큼 소비자들의 불안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화학물질이 현대인의 삶의 질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한 것은 사실이지만, 높아진 삶의 질과 함께 깊어진 소비자들의 불안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현재로서는 정부와 관련 기관의 정확하고 신속한 대처와 언론의 책임감 있는 보도가 소비자들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기 위해 가장 중요해 보인다.

  발생한 논란에 대한 답변을 내놓기 전, 처음부터 소비자들의 안전이 충분히 검증된 제품만 판매하였다면, 정부와 언론의 미숙한 대처에 소비자들이 목맬 일도 없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화학물질을 연구하고, 제품에 적용하고, 소비되는 상품으로 상용화하는 모든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안전에 경종을 울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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