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일등지상주의 반성해야

17일간의 지구촌 ‘겨울 대축제’가 막을 내렸다. 여느 때보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 올겨울, 대한민국은 지구 반대편 얼음판 위에서 전해 온 대한민국 선수들 몸짓 하나하나에 열광했다. 마치 8년 전 월드컵의 흥분이 되살아난 느낌이다. 동계 올림픽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리며 마침표를 찍은 데다 메달 종목도 풍성해지는 등 빙상계에서도 하나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대회로 남아 그 의미가 크다. 늘 ‘효자 종목’이라는 핑계로 부담을 져야 했던 쇼트트랙의 마음의 짐을 스피드 스케이팅과 피겨가 덜어준 기분이다. 한국이 겨울 스포츠의 새 강자로 자리 잡았다며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는 일부 언론의 가당찮은 설레발이 싫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아쉬운 이야기를 하자면 감격의 순간보다 더 쏟아낼 것이 많다. 지난달 14일 열린 남자 쇼트트랙 1,500m 경기가 그러하다. 이날 경기에서는 마지막 결승선을 넘기 직전, 은과 동 위치에 있던 한국의 두 선수가 한 선수의 잘못된 욕심으로 뒤엉켜 넘어지며 금, 은, 동 모두를 대한민국이 차지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는 씁쓸한 광경이 벌어졌다. 조금만 욕심을 버리고 페이스를 유지했더라면 한국 선수 셋이 나란히 시상대에 오르는 희열의 장면이 전 세계 전파를 탔을 것이기에 경기 후, 누리꾼의 비난의 화살은 곧바로 해당 선수에게 향했다. 파벌문제와 왕따 설, 해당 선수의 과거가 담긴 글까지 각종 뒷담화가 온라인을 잠식하며 그는 순식간에 역적으로 전락했다.

물론 누리꾼의 심정이 십분 이해는 간다. 그릇된 욕심이 자신은 물론, 그날을 위해 수년간 피땀 흘렸을 한 동료의 결실의 시간을 배반해 버린 철없는 행동이었기에 메달 획득의 결과보다 더 큰 실망감을 느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순위로 평가되고, 메달의 유무로 자신의 미래가 보장받는 운동선수라는 특별한 삶을 사는 그에게 이번 올림픽은 전부터 꿈꿔오고 두 번 다시 놓칠 수 없었던 기회였을 것이다. 모든 선수는 금메달을 향해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승자독식이 일상화된 한국사회의 혹독한 경쟁 시스템이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리 만무하다. 한국 선수에게 그 강박감은 더욱 거대할 터이고 그 강박이 한 선수에게 지나치다 못해 극단적일 만큼 무서운 승부욕을 자극한 셈이다.

금메달만 값지고 은메달은 아쉬운 것이 되는 나라, 그곳이 대한민국이다. 오래전부터 국제대회라면 민감하게 반응해온 우리다. 대표라는 이름을 달고 대회에 임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그들보다 먼저 정해버리고 응원인지 협박인지 알 수 없는 말로 혼부터 빼놓는다. 경기를 마친 후, 이기면 영웅으로 칭송하고 못하면 못난 놈 취급한다. 메달을 목에 걸고, 트로피를 옆에 들고 귀국하던 선수에게만 쏟아지던 찬사와 관심 뒤에는 똑같은 시간 속에서 똑같이 고생하며 함께 도전했던 또 다른 선수들이 있다는 사실을 차갑게 잊고 만다. 어쩌면 그날 그 선수의 욕심의 시작도 자의 반, 타의 반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천하대가 답이고 서운대는 외면하는 우리 사회에서 최상의 결과를 얻어내야 하는 것은 도전하는 이의 당연한 의무처럼 여겨진다. 은이든 동이든, 행여 메달을 따지 못했든 이미 한 국가를 대표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들도 똑같이 자랑스러운 우리의 대표이건만 기대감 높은 금메달의 그늘에 가려져 우리의 관심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국가의 명예가 달린 국제대회가 있을 때에만 그들을 응원하고 나서는 우리 모습이,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조차 못 해주면서 꾸준히 좋은 성적 내길 바라는 우리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그들이 흘린 수년간의 피와 땀은 아무도 헤아려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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