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곳곳에는 카이스트신문 가판대가 있다. 아마 의식해서 봤다면 기숙사 입구나, 창의관, 교양 분관 등을 돌아다니면서 카이스트신문이 잔뜩 쌓여있는 모습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가판대에는 항상 신문이 넘칠 정도로 가득 차 있는데, 1년에 딱 한 번 그 신문이 모두 동이 난다. 바로 딸기 파티 시즌이다.
딸기 파티 시즌이 되면 신문은 모두의 엉덩이가 축축하게 젖는 것을 막아주기 위해 훌륭한 돗자리로써 그 명을 다한다. 우리는 1년에 한 번이라도 사람들이 신문을 가져가 주는 것에 감사하면서, 잉크 걱정 없이 앉을 수 있도록 아무것도 인쇄되지 않은 돗자리 면을 만들까 하는 생각도 종종 하곤 했었다. 한 글자라도 더 정보를 전달하고 싶어 하는 기자들이었지만, 1년에 한 번 있는 진귀한 풍경을 만들어주는 우리 학교 학우들에게 감사하기 위해서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학보사의 현실이다. 2년 반 동안 카이스트신문에 재직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신문 아무도 안 읽는데 도대체 왜 만들어?”였다. 처음에는 내가 하는 일이 헛되게 보이는 것이 싫어 장황하게 반론했지만, 1년쯤 지나고 나니 이렇게 말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냥 하는 거지 뭐”
하지만 올해 초, 편집장을 맡게 된 후부터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우리가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다는, 자기반성 차원에서 말이다. 사실 신문은 독자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신문은 철저하게 독자를 위해 쓰이고, 독자의 눈높이에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만약 신문사 기자들이 “우리는 열심히 만드는데, 학우들은 왜 관심이 없을까?”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기자는 자격 미달이라고 말하고 싶다.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매체를 만들지 못했다는 죄명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학보를 만드는 우리들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내가 1년 동안 신문을 만들면서 내린 결론은, 아이러니하게도 신문을 버려라 였다. 신문사가 신문을 버린다면 존재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냉정하게도 현대 독자, 특히 20대 초반 대학생은 신문을 주의 깊게 읽지 않는다. 짧은 인터넷 기사조차도 주의 깊게 읽지 않고 댓글 창으로 내려가 버리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우리는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사람들이 신문을 읽지 않는다면 다른 매체를 이용해야 한다. 신문사는 신문만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에서 탈피할 것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나는 SNS라고 단호하게 말할 것이다. 현재 학보사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누구일까? 편집권을 침해하는 학교? 취재 협조를 잘 받아주지 않는 총학생회? 모두 아니다. 우리의 라이벌은 ‘대나무숲’이다. 학보사는 대나무숲에 완전히 패배했다. 한 글자라도 틀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대나무숲의 접근성과 신속성은 절대 따라갈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교내 여론기관으로서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두 요소를 보완해야 한다. 지면에 기사가 올라가기 전에 페이스북을 통해 학우들에게 소식을 전달하고, 대나무숲을 통해 얻을 수 없는 신뢰성 있는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SNS에서는 글만으로 시선을 끌 수 없으므로 사진과 카드 뉴스, 동영상까지 모두 활용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일을 진행하면서도 지면 또한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쓰고 보니 정말 할 일이 많다. 나 또한 실천하려고 애썼지만, 나를 포함한 기자들은 전업 기자가 아니고, 학업에 시간을 쏟아야 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2주에 한 번 16면의 신문을 만들고 나면 모두 진이 빠져 추가 업무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1면에 대강 4500자, 신문을 한 번 만들 때 평균 12면의 기사들을 교정하고, 3시간이 넘는 교열 회의를 하면서 모든 면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다시 읽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침에도 불구하고 신문을 인쇄하고 나면 한두 개씩 오류가 발견된다. 가끔 들어오는 보도에 대한 항의도 기자들의 스트레스에 한몫하는 편이다.
나는 올해로 2년 반의 재직을 마치고, 카이스트신문에서 퇴직한다. 되돌아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드는 생각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후배들의 노력으로 카이스트신문이 교내 언론 기관의 중심이 되었으면 한다. 이제는 돗자리 만드는 곳이 아닌, 언론 기관으로서 학우들의 기억에 남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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