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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코트 위에서 피어난 평등
발레리 페리스 -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442호] 2017년 11월 28일 (화) 오현창 기자 hyunchang@kaist.ac.kr

 1973년 9월 20일, 약 90만명의 관객들이 한 테니스 친선 경기를 보기 위해 TV 앞에 앉았다. 윔블던 여자 챔피언 빌리 진 킹과 또 다른 챔피언 바비 릭스가 맞붙은 이 경기는 기득권을 지키고 싶은 남성들과 평등을 부르짖던 여성들 사이의 갈등이 극적으로 드러난 대결이었다. 영화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에서 생생하게 재현된 경기의 열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여자 테니스 랭킹 1위 빌리 진 킹은 남자 테니스 우승자의 상금이 여자에 비해 8배나 높다는 사실에 항의하고자 테니스 협회에서 쫓겨날 위협을 무릅쓰고 여자 테니스 협회를 창설한다. 협회의 첫 회원인 빌리와 8명의 동료 선수들은 남성 중심 체육계의 냉대 속에서도 협찬사의 지원을 따내며 자신들만의 경기를 꾸려나간다.
한편, 전 윔블던 챔피언 바비 릭스는 은퇴 후 도박을 끊지 못해 아내와 불화를 빚는다. 삶에 싫증을 느낀 바비는 커져가는 여성들의 권리 운동을 기회 삼아 흥미로운 이벤트를 계획한다. 그는 공개 석상에서 “여성 테니스는 열등하다”고 비난하며 “그렇지 않다면 시합을 통해서 증명하라”며 현역 여성 선수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영화는 당시의 의상과 배경을 완벽 재현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이 독특한 시대에 더욱 몰입하게 한다. 70년대는 패션을 통한 자기 표현이 시작된 시대로, 영화는 실제 인물들이 입었던 옷을 참고해 빌리의 터프함과 바비의 보수성을 더욱 살려냈다. 특히, 빌리의 경기 의상은 다양한 색채를 사용해 당시 테니스 계에 새로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영화는 빌리 진 킹 본인이 감탄할 정도로 이를 완벽히 재현했다. 이렇게 재구성된 당대의 감성은 디지털 방식이 아닌 35mm 필름에 70년대 렌즈를 통해 촬영되어 손실없이 스크린 너머로 전해진다.
배우들의 명연과 더불어 빌리와 바비 뒤에서 흐르는 대조적인 음악은 이들이 다른 영화의 어떤 인물보다도 입체적으로 느껴지도록 한다. 빌리의 역동성은 그랜드 피아노 테마를 통해 그려지는 반면, 바비의 불안한 내면은 콘트라 베이스와 목관, 드럼 등을 통해 나타난다. 여기에 더해져 영화 곳곳에 숨어있는 70년대의 명곡들은 다시 한 번 우리를 40년 전으로 되돌려 놓는다.
여성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이 경기는 전 세계로 생중계되어 이후 인권 운동의 방향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실제로 빌리 진 킹은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경기의 결과가 달랐더라면 역사가 50년은 차이났을 것”이라 말했다. 역사는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 주었을까, 지금 영화관에서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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