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7.12.5 화 10:32
시작페이지로 설정즐겨찾기 추가
 
> 뉴스 > 문화
     
인디밴드, '인디'한 그들의 역사
[442호] 2017년 11월 28일 (화) 김선규 기자 seongyukim@kaist.ac.kr

 인디 음악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연신 녹아든다. 방송 프로그램과 SNS 상에서 인디 밴드의 활약을 볼 수 있으며, 인디 음악 차트의 노래를 들으며 비 오는 날의 정취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인디 음악의 역사에서 단편에 불과하다. 이 기사에서는 인디 음악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인디 음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려 한다.

인디 음악, 그 의미와 시작에 대하여

하나의 음악 장르는 다른 음악 장르와 상호교류를 통해서 발생, 발전, 정립, 후퇴하게 된다. 그렇기에 하나의 음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악가, 시대상, 음악사 등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디 음악(Indie Music) 역시 갑자기 발생한 음악의 분류로 보기보다는 다른 음악 장르와의 연결성을 차근차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인디 음악의 시초는 의견이 분분하나, 대체로 70년대 개러지 록(Garage Rock)으로 본다. 개러지 록은 DIY(Do It Yourself) 원칙에 따라, 젊은 뮤지션이 차고에서 자체적으로 음악을 제작, 공연한 것에서 유래한다. 이 밴드들은 거대 레이블과 독립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다듬어지지 않고 거친 형태의 음악을 발표했다. 이들의 음악은 단지 소수만이 공감할 수 있었지만,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의 유명 밴드가 흐름에 동조하며 인디 음악의 윤곽이 선명해지게 된다.
메이저 음반사들이 수익을 나눠 가지던 음반 시장이었지만, 초기 인디 밴드들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할지언정 소수의 팬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의 음악은 비록 대중적이지 않았지만, 이들의 음악에 공감하던 사람들이 지원할 의사를 비치며 인디 레이블이 설립되기에 이른다. 독자 활동을 하던 밴드들은 인디 레이블에 소속됨으로써 메이저 음반사를 통하지 않은 나름의 음반 유통 방식을 갖추게 되었다. 이때부터 인디 뮤지션(Indie Musician)이 부르는 인디 음악이 대중 음악사에 본격적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후 몇 년간 인디 음악은 대중음악을 여러 번 개척하며 음악사의 중요한 흐름으로 인식되었으며, 현재 영미권 음반 시장의 20%가량을 인디 밴드가 차지하고 있다. 이 짧지 않은 변혁 속에서 인디 밴드의 정의가 확립되어, 음악의 제작, 유통, 홍보를 타인의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활동을 하는 뮤지션들의 음악을 일컫게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음반을 독자적으로 제작해 음악적 독창성을 지키고, 유통 및 공연 기획은 기획사에 맡기는 경우도 넓은 의미의 인디 음악에 포함된다.
인디 음악은 공통적으로 거대 자본과 유통 시스템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는데, 이는 인디(Indie)의 유래가 ‘Independent’에 있는 것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디 음악 활동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흐름에 발맞춰, 1996년 크라잉넛과 옐로우키친이 작업한 최초의 한국 인디 음반 <Our Nation 1>이 발매된다. 이후로도 홍대 주변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디 밴드와 인디 레이블의 활동이 한국 인디 활동의 주류가 되어, 한국의 인디 음악은 홍대 음악을 가장 먼저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홍대의 음악 흐름은 언더그라운드 음악(Underground Music)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인디 음악과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동의어로 이해되기도 하는데,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주류 무대가 아닌 비주류 무대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의 음악을 일컫는 말로 유통 방식이 독자적인 인디 음악과는 다른 뜻을 가진다.

한국에서도 등장한 인디 음악가
인디 음악의 주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독립성이 등장한 것은 영국과 미국의 록 음악 신(scene)이다. 앞서 독립된 형태의 개러지 록에서 시작한 인디 음악은 펑크 록의 등장으로 이어지며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다. 세태에 반항적이고 주류 문화에 대항하는 펑크 록 밴드의 활동은 대중의 관심을 한 눈에 끌었다. 더해 팩토리 레코드, 도미노 레코드 등 영국의 인디 레이블의 활동이 메이저 음반사에 뒤지지 않는 성과를 내자, 대중은 인디 음악에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소수를 위한 음악에서 시작되었지만, 영국에서 활동하던 인디 밴드와 레이블이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며 비주류 음악의 종류가 아닌 대중음악의 한 축이 되었으며, 이후 더 라스, 오아시스, 스트록스 등의 브릿팝(Britpop) 밴드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폭발적이었다.
90년대 미국에서도 영국 밴드의 행보에 자극받은 인디 밴드들이 얼터너티브 팝(Alternative Pop), 포스트 록(Post Rock) 등의 장르를 개척하며 주류 밴드가 되기에 이르렀다. 미국과 영국의 인디 음악은 독자성을 잃지 않으며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대중은 자본에 때 묻지 않은 이들의 도전적인 음악을 즐겼으며, 인디 밴드는 상업적인 음악과 다른 형태의 음악을 탄생시키며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넓혀주는 역할을 이행했다. 대중에게 다가가고 소통하는 것에 성공하는 동시에 독자성을 지켜낸 미국과 영국의 인디 밴드와는 달리, 한국에서 발생한 최초의 인디 음악은 ‘독자성’을 과하게 해석해 음악적 독창성뿐만 아니라 괴기한 음악을 하며 과도기를 겪었다.
한국 인디 음악사에 있어서 1990년대는 탄생의 시기이다. 1994년 홍대 앞 클럽 ‘드럭’에서 한국 인디 음악의 흐름이 시작되었다. 클럽 ‘드럭’에서 활동하던 인디 밴드는 펑크 록이나 모던 록을 따라 부르는 형태로 그들의 음악을 시작했다. 그들의 음악은 과도하게 ‘독자적’이었는데, 스스로 앨범 수록곡을 창작했을 뿐 아니라 대중의 관심에서도 크게 떨어진 노래를 연주하곤 했다. 미국 록 음악의 반항성이 음악적 표현에서 더 격하게 드러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보이기에 십상이었다. 그러나 2년 후에 인디 첫 앨범 <Our Nation 1>이 발매된 이후 꾸준한 인디 밴드의 발매 활동과, ‘인디 1세대’ 밴드 자우림, 크라잉 넛 등의 활약은 한국 인디 밴드의 존재감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21세기, 인디는 어떻게 변해왔나
2000년 이후, 인디 음악은 ‘비상업’에서 ‘음악적 독립’으로의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러 인디 밴드는 음악 제작 외의 홍보, 공연, 유통 등의 작업을 자체적으로 충당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인디 밴드는 음악적 독립성을 지키며 독자적인 음반 제작을 원칙으로 하고 음악 레이블과 협력하는 형태를 자주 보여줬다. 이 상호협력은 음악적,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이루는 인디 뮤지션의 수를 늘렸으며,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의 초기 인디 밴드와는 다른 행보를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인디 음악과 상업 음악의 간격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해, 2000년대 대중 음악 신(scene)은 두 음악이 공존이 두드러진다.
이 흐름 속에서 상업 음악과 인디 음악의 입지가 크게 변하게 되는 계기가 두 차례 있었다. 먼저 2000년대 초반 음원의 디지털화 과정에서, 앨범 위주의 음악 레이블이 흔들리게 된다. 대형 레이블들이 수입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며, MP3를 통한 음원 유통을 반대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대신 인디 레이블들은 소규모의 자금으로도 음원을 퍼뜨릴 기회를 잡게 된다. MP3의 간편한 유통 방식은 유명하지 않은 밴드의 음악이 대중에게 소비되게 만들었다. 음원의 디지털화 과정에서 앨범 중심의 한국 음악계 또한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음악 장르를 가리지 않고 침체기가 나타났다. 인디 밴드의 경우 더 심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는데, 1세대 인디 밴드의 인기 하락과 대중의 인기를 끌 만한 인디 음악이 소개되지 않았다는 점, 당시 댄스곡, 발라드가 무대를 지배하던 시장에서 인디 음악의 주류였던 록 음악이 설 자리가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2000년대 대중 음악사에서 인디 음악의 입지는 점점 더 견고해지고 있다. 인디 레이블 <머지레코드>에 속해있는 아케이드 파이어는 빌보드 1위와 그래미 어워드를 거머쥐는 등 2000년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밴드는 음악적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 대형 레이블에 소속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가는 뛰어난 인디 밴드들은 2000년대 상업 배타적 정신을 널리 퍼뜨렸다.
SNS의 등장과 함께 인디 음악계는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전에는 무대 활동이나 방송을 통해서만 대중에게 음악을 소개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SNS는 음악을 손쉽게 영상이나 디지털 음원의 형태로 공유될 수 있는 콘텐츠로 변형시켰다. 즉 음악의 홍보가 쉬워지게 되어, 자본의 도움 없이도 홍보,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인디 산업계는 이를 활용해 대중과의 교류를 늘리고 있으며, 국카스텐, 브로콜리 너마저, 장기하와 얼굴들 등은 독자적인 음악성과 변화된 시장 구조를 활용하며 한국 음악계에서 인디 음악의 자리를 넓혔다. 게다가 1990년대 록 음악에만 집중되어 있던 인디 음악의 장르가 R&B, 재즈, 발라드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것도 지켜볼 만한 점이다.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되자, 인디 음악가를 소재로 한 방송이 제작되거나, 인디 음악만을 공연하는 인디 음악 페스티벌이 개최되는 등 인디 음악이 대중문화에 흡수되고 있다.

한국 인디 음악, 앞으로의 행보는
한국 인디 밴드가 메이저 무대에 서며 더는 비주류로 치부되지 않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작업 활동 영역이 홍대에만 치중되어 있다는 점, 인디 음악이 국내 음원 시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인디 밴드가 명성을 탄 후 상업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변질되는 점 등 한국 인디 밴드는 아직도 그 의미를 온전히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인디 음악과 상업 음악이 공존하며 긴장감을 유지할 때, 음악은 더 다양해지고 시대적 흐름을 반영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상업적 레이블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한국 대중 음악의 미래를 한국 인디 음악가들이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참고문헌 |
<골든 인디 컬렉션: The Musician>, 최규성
<맨땅에 헤딩하리: 한국 인디 음악의 좌표와 궤적>, 정호영

김선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카이스트신문(http://times.kaist.ac.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기사제보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대전 유성구 대학로 291 KAIST 교양분관 1층 카이스트신문사 | Tel 042-350-2243
발행인 신성철 | 주간 김동주 | 편집장 이상현
Copyright 2010-2016 카이스트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kaisttime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