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릭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는 “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고, 향기를 지배하는 자는 사람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향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무의식을 건드리는 강한 힘과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향수는 이제 단순한 향기 그 이상을 의미한다. 이번 호에서는 조향사 정미순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조향사와 향수에 대해 소개한다

조향사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조향사란 향의 이미지를 구체화해 향수를 제작하고, 이를 필요한 상품에 적용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조향사에는 기업체 연구소 소속의 조향사와 프리랜서 조향사인 향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KAIST 출신과 같은 화학 전공자는 기업체에서 연구하는 일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업체에서 연구하는 조향사는 향을 분석하는 일을 주로 합니다. 오렌지 향을 만드는 과정을 예로 들자면, 먼저 그 오렌지 향이 어떠한 물질로 구성되어 특유의 향기를 내는지 화학적으로 분석합니다. 그 다음에 분석된 물질의 정확한 구성 물질을 함량에 따라 분류하고 나서 각양각색의 향료를 이용해 다시 오렌지 향을 조합해 만드는 등의 일을 합니다.
조향사는 단지 향수뿐만 아니라 화장품, 샴푸와 같은 향장향과 담배, 의약품에 사용되는 식품향 등 다양한 향을 제조합니다. 21세기에는 후각, 시각 등 감성적 요소가 시장에 미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조향사의 활약이 점점 주목받고 있으며 기대를 모으는 직종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좋은 향기의 조건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좋은 향기는 예술작품처럼 독창성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이 느끼기에 아름다움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향이 조화롭고 맡기에 적당한 감도와 지속성이 있어야 좋은 향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준을 바탕으로 향기마케팅을 합니다. 향기마케팅은 사람의 후각 기관, 뇌의 작용, 심리상태 등을 연구해 소비자들의 구매를 자극하는 판매촉진 마케팅의 한 분야입니다. 향이 가진 ‘전달의 힘’을 잘 응용한 것이죠. 향은 무언의 메시지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감성마케팅에 향의 힘을 접목시킨다면 좀 더 효과적인 마케팅이 될 것입니다.

향수가 개인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같은 향수를 사용하더라도 사람마다 그 본연의 체취가 다르기 때문에 그 향이 다르게 표현됩니다. 체취와 향수의 향이 섞여서 새로운 향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향수를 뿌리는 일은 좀 더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의 일종으로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내게 꼭 맞는 향수를 찾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맞춤형 심리향수를 만들기도 합니다.
심리향수란 무엇인가요
향에 대한 반응은 매우 개인적입니다. 대다수 사람이 좋아하는 향기는 있지만,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좋아하는 향기는 없죠. 흥미로운 점은 같은 향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공통된 성격이나 성향을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성향이 강한 서양 사람들은 향이 진한 향수를 좋아합니다. 반면, 감정이 풍부하고 감각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가볍고 신선한 느낌의 향수를 선호합니다. 이런 사실은 향기가 심리적 성향, 체질과도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울할 때 자신에게 맞는 심리 향수를 뿌리면 기분이 나아지면서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향기는 사람의 본능과 무의식 세계를 표현하는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저 역시 맞춤 향수를 원하는 고객과 상담을 할 때, 고객이 향료를 고르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심리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감각적인 사람은 달콤한 과일향이나 라일락 향을 고릅니다. 또한, 피곤할 때는 그린 향을, 기운이 떨어졌을 때는 무스크 향을 고릅니다.

자신에게 맞는 향수를 고르는 방법에는 어떠한 것이 있나요
첫째는 본능적인 감각에 의해서 향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처음 향을 맡았을 때 ‘아! 좋다’라고 느껴지는 향이 바로 자신의 본능적 감각입니다. 둘째는 테스트를 통해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심리유형을 테스트해보고 그에 맞는 향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향수를 센스있게 뿌리는 방법을 소개해주세요
향수는 향기가 은은히 풍길 정도로 적당량 사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손목, 귀 뒷부분 등 비교적 체온이 높은 부위에 뿌립니다. 또한, 향기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퍼지므로 무릎이나 치마 단과 같이 자주 움직이는 부분에 뿌리는 것도 좋습니다. 지성 피부인 사람은 신선하고 깔끔한 느낌을 가지는 오데 코롱의 사용을 권하고, 건성 피부인 사람은 지성 피부인 사람보다 향기의 지속시간이 짧은 편이므로 조금씩 자주 사용하거나 향수를 사용하기 전 바디로션을 발라 지속성을 좋게 할 수 있습니다. 피부가 민감한 사람은 직접 피부에 뿌리는 것을 피하고 솜이나 거즈를 사용할 것을 권장합니다.

향수를 뿌리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향이 변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와 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실제로 하나의 향수를 뿌리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향기는 달라집니다. 노트별로 향료를 사용했기 때문이죠. 노트란 한가지 원료나 여러가지 배합에서 나오는 향에 대한 후각적인 인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향은 발향 단계에 따라 탑노트, 미들노트, 베이스노트의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이는 향수를 뿌린 후 시간에 따른 향의 변화를 나타낸 말입니다. 향수에 사용된 여러가지 향은 각각 알코올의 함량에 차이가 있어 분자가 증발하는 속도가 다릅니다. 따라서 처음 향수를 뿌렸을 때에는 분자 증발 속도가 빠른 탑노트의 향이 주로 나고, 잔류시간이 길수록 베이스 노트 의 함량이 높아지기 때문에 베이스 노트의 향이 납니다.
 
우리 학교 학우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조향사라는 직업은 아직 대중적이지 못합니다. 단지 조향사뿐만 아니라 이처럼 미개척 분야에 뛰어들고자 하는 사람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으로 용기를 내어 도전하십시오. 문이 좁다고 해서 열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향기로운 KAIST인이 되세요.

정미순 씨는 핸드메이드 맞춤 향수를 제작하는 향수 디자이너로 국내 최초의 조향 전문 학원인 갈리마드의 대표이다. 현재 조향학 및 향과 인간 심리의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향 심리학자이자 조향사로 명성이 높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