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란 무엇일까. 같은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느끼는 맛이 다르고, 그 안에 담긴 추억과 감정 역시 모두 다를 것이다. 그래서 혀끝의 감각을 글로 표현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의 맛과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말과 글은 많은 사람을 입맛 다시게 하고, 좋은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푸드 칼럼니스트의 맛 표현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그들의 글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알아보았다.

“맛의 구조가 아주 짱짱하다. 옅은 연둣빛이 감도는 술 한 모금을 입에 무니 향이 안개처럼 입안에 퍼진다. 혀로는 바람처럼 은은한 단맛이 감돈다.” 중앙디자인웍스의 이택희 대표가 제주에서 만든 전통주인 ‘맑은바당’을 마시고 쓴 표현이다. 눈을 감고 가만 상상해보면 그 맛이 혀끝에서 느껴지는 듯하다. 하지만 연둣빛 맛, 바람 같은 단맛이 모든 독자에게 같은 감각으로 다가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맛을 글로 표현하기 위한 노력
이 대표는 “내가 느낀 음식의 맛을 가장 가깝게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을 늘 고민한다”며, “한편으로는 우리말에 대한 책임감으로 새로운 표현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는 현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기 위해 한나절이 꼬박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김유진 제작소의 김유진 칼럼니스트는 사람들은 자신이 기억하는 맛에서 정보를 찾는다며, 그 기억을 실감 나게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혀에 닿았을 때 화악 퍼지는 매콤한 고추 향’, ‘핏물 줄줄 흐르는 1등급 한우’ 등이 그런 예시다.
한국음식의 맛을 표현하는 어휘는 4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맛을 설명하는 데도 표현이 다양하다. 농수산쇼핑의 전은경 쇼핑호스트가 펴낸 <맛을 표현하는 어휘 연구>에 따르면 우리말에 ‘맵다’를 표현하는 단어는 ‘칼칼하다’, ‘알알하다’, ‘매콤하다’, ‘얼큰하다’, ‘알찌근하다(혀가 아린듯한 맛)’, ‘매옴하다(약간 알알한 맛을 느낄 정도)’ 등 무려 20개가 넘는다. 여기에 ‘가을 햇살과 같은 포근한 맛’과 같이 개개인의 경험과 감정에서 우러나온 표현을 합하면 음식의 맛을 표현하는 방법은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푸드 칼럼니스트는 이러한 다양한 표현을 활용해 자신이 느끼는 맛을 최대한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 시대의 음식 문화사를 기록하다
이 대표의 맛 칼럼인 <이택희의 맛따라기>를 보면 사실 맛 표현보다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의 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맛 칼럼을 읽다 보면 단순히 이 음식이 무슨 맛인지를 전달하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음식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요리사와의 대화, 그리고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한 편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글이 펼쳐진다. 조선일보에 연재된 <정동현 셰프의 생각하는 식탁>에서 정 셰프는 그 음식과 관련된 자신의 추억을 소개하는 데에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이 대표가 글을 쓰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쏟는 것도 바로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의 대화, 그리고 음식과 지역에 대한 조사다.
한 사회의 문화를 알고 싶다면 그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보면 된다고 했다. 푸드 칼럼니스트의 글은 어떤 식당에 방문해서 이 식당의 음식이 맛있는지, 달콤한지 혹은 짠지를 소개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지닌다. 이 대표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단순히 기능의 영역이 아니라 말한다. 그는 삶의 철학과 살아온 내력이 음식에 녹아있다고 믿으며, 한 식당의 음식이 맛있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인생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표는 자신이 식당을 소개하는 기사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음식 문화를 미시사로써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가 소개한 한 식당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1981년 도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시절 처음 강원도 홍천으로 넘어와 살림을 일군 안정숙 씨는 큰 집에 살고 싶다는 소원 하나를 가지고 37년 넘는 세월 동안 매일같이 산나물을 캐다 요리를 하고 있다. 이제는 건물만 다섯 채로 소원은 넘치도록 풀렸으나 이를 위해 치렀던 노고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손은 37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 휘어지고 성한 곳 하나 없지만 아직도 그녀의 손은 일을 놓지 못하고 머릿속은 음식 구상으로 가득하다. 모든 음식을 자연에서 난 그대로 사용해서 만들고 싶다는 그녀는 지금의 살림이 그렇게 속이지 않고 열심히 일한 복을 하늘에서 내려준 것이라고 말한다.

푸드 칼럼니스트의 무거워진 책임감
이 대표와 같이 이 시대의 음식 문화사를 기록한다는 사명감을 지니고 자신이 다니던 단골 식당과 국토 곳곳의 사연을 찾아다니는 푸드 칼럼니스트와 달리, 매체가 가지는 파급력을 잘못된 방향으로 겨냥해 논란이 되는 평론가들도 많다. 그들의 글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평론’의 기능을 다 하기 위해 음식의 취향에 지나친 자기주장을 투영하고, 그러한 주장이 종종 전문적이거나 성숙하지 못한 평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한겨레에 연재된 <요리사X와 김중혁의 음식 잡담>이라는 코너는 두 사람의 만담 형식으로 한 식당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곁들인다. 당시 최현석 셰프가 근무하던 테이스티블루바드에서 매시드포테이토에 겨자를 넣었다, 스테이크가 너무 뜨겁다, 심지어는 스테이크로 유명해지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하지만 매시드포테이토에 겨자를 넣는 것은 테이스티블루바드의 개성이었고, 뉴욕의 유명 스테이크 하우스에서도 뜨거운 철판에 스테이크를 낸다. 화제를 만들기 위해서 자극적인 글을 쓰고, 그 영향력에 대해 우려하거나 사실 여부를 검증하지 않는 것은 요식 문화 자체의 수준을 낮추곤 한다.
대중이 음식의 기원과 맛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방송에서 요리나 음식과 관련된 정보가 쏟아지고, 좋은 음식과 맛있는 음식, 혹은 나쁜 음식에 대한 논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다. 이러한 사회에서 전문가들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현재 한국 음식 문화의 수준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를 문화 권력을 쥐고 있는 주류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그래서 현재의 주류 음식 문화를 경계를 가리지 않고 비판한다. 그의 올바른 음식 문화에 대한 주장은 분명히 생각해볼 만한 논지가 많으며, 그의 발언으로 인해 일부 음식 문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음식 문화의 주도권을 가져오려 하는 듯한 그의 발언이 대중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는지 재고해봐야 한다. 그의 양념치킨 발언이나, 설탕 수저론 등은 맞든 틀리든 많은 언론과 매체를 통해 퍼져나가고, 대중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의 발언에 신중함이 요구되는 이유다.
세상이 음식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푸드 칼럼니스트의 역할은 점점 커질 것이다. 그들의 발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통찰력을 줄 수도, 우리 시대의 문화사를 그려가는데 좋은 사초가 될 수도 있다. 그만큼 그들의 음식 예찬은 우리의 삶을 기록하고 삶의 형태를 정의하는 훌륭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맛 칼럼이 그러한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책임감과 대중들의 비판적인 시선이 공존해야 할 것이다.

취재를 마친 후 합정역 근처에 있는 북한 음식 전문점 ‘동무밥상’을 방문했다. 평양 옥류관에서 요리를 하다가 남으로 내려온 윤종철 요리사는 북한에서 배운 요리의 정체성과 맛을 지키기 위해 서울에서 절대 외식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감히 흉내를 내보자면, ‘동무밥상’의 어복쟁반은 “오로지 소고기로만 끓여낸 육수가 순정 그 자체의 맛을 지니고 있어 깊고 깔끔했으며”, 북한식으로 고봉으로 쌓아서 나온 평양냉면은 “삼삼한 듯 부드러운 시원한 육수에 간간이 터지는 들깨의 향이 향기로웠다”고 표현해보겠다. 요리를 만드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음식 안에 녹아들고, 그 이야기가 더욱 많은 사람들과 공유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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