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화학상 - 초저온투과전자현미경

 2017년도 노벨 화학상은 초저온투과전자현미경(Cryo-Electron Microscopy, CryoEM) 기술을 발전시킨 리처드 헨더슨(Richard Henderson), 쟈크 뒤보셰(Jacques Dubochet), 요하힘 프랭크(Joachim Frank) 3명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초저온투과전자현미경이 생체분자 이미지 영상화를 개선했고, 이 기술이 생화학을 신기원으로 이끌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구조생물학, 분자의 구조를 규명하다
단백질과 DNA, RNA 등 우리 몸을 이루는 생체분자는 저마다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다. 보통 생체분자의 기능은 그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여러 분자가 함께 작용해 발생하는 복잡한 생명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체분자의 3차원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구조생물학이다.

기존 분광학 연구 기기들의 한계
오랜 기간 동안 구조생물학 연구에 기여해온 기술로는 X-선 결정학(X-ray Crystallography)과 핵자기공명분광학(Nuclear Magnetic Resonance, NMR) 등이 있다. 특히 X-선 결정학은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1950년대 마이오글로빈 단백질의 3차원 분자구조를 처음으로 규명한 이래로 단백질, 단백질-DNA 복합체, 단백질-RNA 복합체 등 많은 생체분자 구조를 규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X-선 결정학을 이용해 생체분자의 구조를 파악할 때는 그 분자의 결정이 필요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세포막단백질이나 크기가 아주 큰 단백질복합체들의 3차원 구조는 알아낼 수 없었고, 결정 상태의 생체분자는 실제 생체 내 상태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형태와 기능을 분석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또한, 핵자기공명분광학은 용액 상태에서 비교적 작은 생체분자만 관찰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투과전자현미경, 대안으로 제시되다
초저온투과전자현미경은 기존 분광학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며 구조생물학 연구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그 개발 또한 최근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독일의 과학자 에른스트 루스카(Ernst Ruska)는 1932년에 오늘날 사용되는 투과전자현미경(Transmision Electron Microscopy, TEM)의 원형을 만들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투과전자현미경은 광원과 광원렌즈 대신 전자빔과 전자렌즈를 사용해 얇은 시편에 있는 시료를 고배율로 확대해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상장비이다.

분자 왜곡 등의 새로운 문제점 등장
투과전자현미경은 획기적인 기술이었지만, 처음에는 이를 이용해 생물시료를 관찰하는 데 몇 가지 문제점들이 존재했다. 우선 투과전자현미경에 사용되는 전자빔의 특성상 경통 안은 항상 고진공 상태가 유지되어야 하지만, 세포 속은 액체로 이루어져 있고 대부분의 생체분자들은 수용액 상태에서만 안정하므로 경통 안의 환경에서 오랫동안 버틸 수 없었다. 또한, 대부분 탄소, 질소, 산소, 수소로 구성된 생체분자들은 전자 산란력이 낮아 영상의 명암대비가 좋지 않았고, 전자 산란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여기에너지에 의해 생체분자들의 공유결합들이 쉽게 깨질 수 있어 전자빔에 오랜 시간 노출할 수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매질염색법(negative staining)과 같은 전처리 과정들이 도입되었지만, 염색과 건조 과정에서 생체분자가 본래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새로운 문제점이 등장했다. 따라서 분자의 상태를 보존하면서 구조를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요구되었다.

포도당 용액 이용해 수분 증발 막아
1970년대, 리처드 헨더슨 교수는 세포막단백질인 박테리오로돕신의 구조를 밝히려는 시도를 했다. 시료의 표면을 포도당 용액으로 코팅해 박테리오로돕신의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 진공상태에서도 원래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한 후, 약한 에너지의 전자빔을 이용해 다양한 각도에서 투과전자현미경 이미지를 촬영하였다. 얻어낸 이미지들과 회절 패턴 분석을 통해, 헨더슨 교수는 1975년 박테리오로돕신 3차원 구조를 7옴스트롱의 해상도로 규명하였다. 당시까지 전자현미경으로 관측한 3차원 이미지 중 가장 정밀한 결과였으며, 이를 통해 염색과 탈수과정 없이 생체분자 단백질의 투과전자현미경 이미지를 활용한 분자구조 분석이 가능함이 최초로 증명되었다. 이후 헨더슨 교수는 거듭된 연구 끝에 1990년, 원자 수준의 고해상도 3차원 박테리오로돕신의 구조를 얻어냈다.

헨더슨 연구의 한계를 극복한 뒤보셰
헨더슨 교수의 포도당 용액을 이용한 방법은 시료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었지만, 친수성 생체분자에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1980년대, 쟈크 뒤보셰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6℃의 액체에탄을 사용한 초저온 시편 제작 기술을 개발했다. 용액 상의 단백질을 초저온 액체에탄으로 급속 냉각시켰을 때 용액은 얼음 결정이 아닌 비정질의 유리화된 상태로 변하고, 그 안에 자유롭게 떠 있던 단백질 분자들은 무작위적인 방향성을 가진 채 그 상태로 보존된다. 단분자 초저온투과전자현미경(single particle CryoEM) 기술은 이렇게 수십에서 수백만 개의 가두어진 단백질 단분자들을 투과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후, 각각의 상대적 방향성을 분석하여 3차원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뒤보셰 교수의 연구는 요하힘 프랭크 교수의 연구와 함께 이 기술의 핵심적 근간이 되었다.

이미지 분석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해
단백질의 전자산란력은 낮기 때문에, 투과전자현미경으로부터 얻어진 단백질 단분자 이미지 각각에 포함되어있는 신호들은 매우 약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80년대 요하힘 프랭크 교수는 수백만 개의 단백질 단분자 이미지들을 유사한 것들끼리 같은 그룹으로 묶은 후, 영상신호를 평균화해서 신호대잡음비(signal-to-noise ratio)를 증폭시키는 기법을 개발함으로서 이미지의 해상도를 향상시켰다. 또한, 서로 다른 각도에서 찍은 2차원 이미지들을 연결해 3차원 구조로 재구성하는 이미지 프로세싱 알고리즘과 그 처리 과정에서의 빅데이터를 다루기 위한 소프트웨어 스파이더(System for Processing Image Data from Electron microscopy and Related fields, SPIDER)도 개발했다. 프랭크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새로운 이미지 분석법을 이용해 당시 리보솜의 구조를 최초로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융합적 발전 이룬 투과전자현미경
이후 2000년대 후반부터 물리, 전자, 전산 등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서 초저온투과전자현미경의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융합적 발전이 이루어졌다. 한 때 해상도가 너무 낮아 생체분자들이 방울(blob)처럼 보인다는 뜻에서 ‘블라볼로지(blobology)’라고 조롱받던 투과전자현미경은, 현재 분자들의 구조를 최고 2옴스트롱에 달하는 고해상도로 규명할 수 있는 혁신적 기술이 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세포막단백질과 거대한 단백질복합체의 구조를 밝히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지카바이러스 등 병원성 바이러스의 구조를 토대로 표적 신약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학교 의과학대학원 김호민 교수는 “향후 5~10년 내 생화학 교과서에 실린 상당수의 생체분자 3차원 구조 그림들은 초저온투과전자현미경의 연구 결과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2017년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의 선구적인 노력 덕분에 구조생물학 분야는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이를 발판 삼아 앞으로도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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