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개론. 심리학 개론이라는 과목명을 듣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 과목에 관심이 있다고들 말한다. SNS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심리 테스트,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는 미디어 속의 심리학자들의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어렸을 때부터 사람의 마음을 탐구하는 심리학을 굉장히 좋아했고, 실제로 심리학자를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가을학기에 심리학 개론을 신청하였고, 운이 좋게 수강 신청에 성공했다.
하지만 공대에서 배우는 심리학 수업은 흔히 생각하는 심리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뇌의 해부도를 보면서 명칭을 외우거나, 그래프와 수식들도 등장하는 힘든 과목이었다. 그래서 이 과목을 신청한 것을 후회하였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분명 전공과목 뺨치는 로드에는 후회하고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올해 카이스트에 처음 들어와서 첫 퀴즈를 보는 순간, 공부에 대한 회의감이 엄청 들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항상 최상위권만 차지하였는데 이곳에서는 중위권에 들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공부 방법을 바꾸거나 잠을 줄이는 등 시행착오를 견디면서 한 학기를 보내왔지만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에서 나를 잘못 뽑았다는 생각이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가을 학기에도 그나마 학교에 적응되어 생활이 편해졌다 해도 학업에 관해서는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렇게 막 가을이 찾아오고 학교가 붉은색으로 물들어갈 무렵에 시험 기간이 시작되었다. 심리학 개론이라도 학점을 챙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고, 조건 형성은 심리학에서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더욱 자료를 찾아 공부하였다. 조건 형성은 크게 고전적 조건 형성(Classical Conditioning)과 조작적 조건 형성(Operant Conditioning)으로 구분된다. 조작적 조건 형성은 쉽게 말하자면 강화와 처벌이다. 강화는 어떤 행위에 빈도수를 증가시키고 처벌은 빈도수를 감소시킨다. 그 앞에 긍정적이라는 용어가 붙으면 어떠한 보상을 추가시키는 것이고 부정적이라는 말은 자극을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 실험용 생쥐가 상자에 갇힌 경우를 생각해보자. 실험자는 생쥐가 상자에 설치된 버튼을 누를 때마다 먹이를 준다. 그러면 먹이를 받기 위해서 생쥐는 버튼을 자주 누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생쥐가 버튼을 누르는 행위의 빈도수가 증가하고, 먹이라는 보상이 주어지는 긍정적 강화이다.
이 개념을 이해하자마자 나는 아주 익숙한 예시를 떠올릴 수 있었다.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칭찬, 혹은 용돈 등과 같은 보상을 받아왔다. 공부하여 좋은 성적이 나올수록 주변의 시선의 기분이 좋아지거나 친척들에게 많은 용돈을 받곤 한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말했던 긍정적 강화가 아니었던가!
결국 내가 그 동안 해왔던 모든 공부는 스스로 한 것이 아니었다. 보상을 받기 위해서 주어진 행위를 반복하는, 한 마리의 실험용 생쥐와 별다를 바가 없던 거였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열심히 하고 대학교에 가서는 놀면 된다.’라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사회 풍토가 한국의 모든 학생을 실험용 생쥐로 만들어서 학교라는 상자에 가둬둔 꼴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더 이상 ‘등수’라는 보상만을 기대하며 공부라는 행위를 반복하는 생쥐의 모습에서 벗어나기로 하였다. 그 대신 새로운 지식이 내 머릿속에 채워지는 그 즐거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암기하고 있던 물리 과목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수학 과목의 벡터장과의 관계를 깨닫고 신기해하고, 너무나 복잡하게만 보였던 보어 반지름이 역학을 통해서 유도된다는 것을 배우고 직접 유도해 보기도 하였다.
사실 아직도 과거의 모습이 남아있긴 하다. 흔히들 말하는 ‘장짤’이라는 부정적 강화를 피하고자 시험 전날에 벼락치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전보다는 학문 자체에 조금이나마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언젠가는 생쥐에서 벗어나 사람다운 공부를 하는 결실 볼 거라고 생각한다. 곧 있으면 캠퍼스에 벚꽃과 함께 18학번 후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텐데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당장 나오는 등수에 스트레스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머릿속에 새로운 사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그 느낌에도 집중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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