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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잣대
[438호] 2017년 09월 12일 (화) 곽대현 부편집장 kaisttimes@gmail.com

 국민들의 분노가 무섭습니다. 최근 며칠간 줄줄이 보도된 청소년들의 폭행 사건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부산 여중생 폭행’이라는 키워드로 각종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린 이 사건의 경우, 피해 상황에 대한 상세한 묘사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노골적인 상해 사진까지 SNS로 퍼져나가며 가해 청소년에 대한 분노 여론이 급속도로 퍼져나갔습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올라온 소년법 폐지 청원은 벌써 26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가해자가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강력 범죄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핵심 주장입니다.
“그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돼” 꽤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입니다. 그만큼 상식이라는 건 언제든지 꺼내서 기준으로 제시할 수 있을 만큼 일상 속 자연스레 스며들어있던 것이겠지요. 우리는 누군가가 죄를 지어 법의 심판을 받을 때, 처벌의 경중이 납득이 가느냐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납득의 기준은 전적으로 우리의 경험과 지식에 의존합니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을 만큼’ 죄질이 악한 범죄자에게 우리가 까다롭게 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무언가를 상식만으로 판단하기엔 그 범주가 너무나도 넓다는 데 있습니다. 폭행 사건의 가해 청소년을 보며 느끼는 이성적 괴리감만큼이나, 소년법 폐지가 아닌 개정을 주장하는 이들을 보며 드는 혼란이 그 예시입니다. 법 또한 우리의 상식적인 일상을 지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청소년의 정의’부터 시작하는, 준비되어있고 잘 다듬어진 법의 논리 앞에서 귀를 닫은 채 자신만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도 어리석은 행동일 것입니다.
가해 청소년들은 피해자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습니다.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그들이 피해 학생만큼의 고통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떠오릅니다. 애초에 깊이가 다른 사람에게 무작정 우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말이 되는 일일까요? 우리가 당장의 분노에 휩쓸려 또 다른 상식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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