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방학, 나는 친구들과 함께 민주화 운동 유적지 답사를 다녔다. 사실 답사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실천리더십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AU를 받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답사가 끝나고 나에게 남은 것은 AU 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 세상이 조금씩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결코 ‘저절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여름방학 동안 답사를 다니며 한 생각들을 나누고자 한다.
우리는 정읍, 광주, 서울의 총 세 곳으로 답사를 떠났다. 각각 동학농민운동,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19 혁명이 일어난 곳이다. 그 중 나에게 가장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곳은 바로 광주였다. 우리가 방문한 5.18 자유공원에는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배경과 과정, 그리고 민주화 운동 이후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진 진상 규명 등의 조치에 대해 알 수 있는 전시관과 당시 광주 시민들이 수감되었던 영창 건물이 있었다.
전시관에는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전시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광주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신문, 군대에서 시민들을 이간질하기 위해 허위 사실을 적어 유포시킨 선전물 등을 보며 1980년 5월 광주의 분위기와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느껴 볼 수 있었다. 특히 광주 시민들의 다짐을 적은 글들은 비상식적인 현실을 바꾸어 보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다. 목숨을 걸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당시 희생자들의 관을 덮었던 태극기도 잊을 수 없다. 피로 얼룩진 태극기를 보며 내 마음은 숙연해졌다. 부조리한 국가 권력과 그 권력에 의해 희생된 무고한 시민. 그들이 바라보았던 태극기의 모양은 같았겠지만 그 안에 담긴 정신은 조금도 닮지 않았을 것이다. 광주에서 관을 덮었던 피로 얼룩진 태극기들은 독재자 앞에서 펄럭였을 새하얀 태극기보다 그 겉모습은 지저분했겠지만, 그 깃발이 담고 있던 의미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이 순수했을 것이다.
전시관 바깥에는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갇혔던 영창 건물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 있었다. 무고한 시민들에게 가해졌던 끔찍한 고문, 그들이 가만히 앉아 하루를 보내야 했던 비좁은 방, 그들이 당했던 불공평한 재판에 대한 설명을 문화 해설사분께 들으며 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져 갔다. 불의에 눈감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히려 그들에게 가해진 고통은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다.
정의롭고 순수한 정신으로 싸웠던 그들의 인권이 짓밟힌 흔적들을 보며 나는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 동시에 그들에게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들의 투쟁은 이후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의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의 노력 하나하나가 모여 좀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광주에서의 답사를 통해 나는 내가 당연한 듯이 누려왔던 자유, 인권이라는 가치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가치를 얻기 위해, 또는 다음 세대가 그 가치를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 왔다. 무엇도 저절로 얻어진 것은 없었다. 정의를 위해 싸운 분들의 노력이 만약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의 삶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과거의 역사에서 얻은 이 교훈은 미래의 역사에도 적용된다. 역사 속에서 용기 있는 사람들이 얻어냈던 가치들은, 현재의 우리가 지켜내지 않는다면 언젠가 다시 사라져버릴 것이다. 또한, 현재의 우리가 정의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미래의 사람들은 더 나은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라는 거대한 책의 독자이자 저자이다.
‘저절로’는 없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앞서 살았던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으로 얻어진 것들일 것이다. 동시에 우리의 미래도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희생과 노력만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광주 자유공원 문화해설사분의 마지막 당부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역사를 잊지 않고 불의에 대항할 줄 알아야 우리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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