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말이 되면 내 생활은 나쁜 삶의 표본이 된다.
월요일에는 월요일 수업의 과제가 있고 화요일에는 화요일 수업의 과제가 있다. 매일 매일 과제가 쉬지 않고 나오는 생활 속에서 나는 하루종일 정신없이 산다. 저녁을 먹고 과제를 하다보면 당장 내일인 기한은 다가오고 남은 일이 많아 밤을 세게 된다. 수업에 가 과제를 발표하면 그 다음날 수업 과제의 기한이 코 앞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련의 과제들에 치여 끼니를 거르고 며칠 내내 10시간도 못자는 경우도 허다하다. 강의실 구석 소파에서 먼지 가득한 담요를 덮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한 두시간 쯤 자다보면 목이 칼칼하고 눈이 뻑뻑하지만 방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을 아니 차라리 그렇게 쪽잠을 자고 만다. 이렇게 며칠을 살다보면 아프지 않을 몸도 아프게 된다. 평소 같으면 일주일이면 떨어질 감기가 한 달 내내 사람을 괴롭힐 때도 있고 정신을 놓고 다니다 넘어져 발목을 다치기도 한다.
겨우 과제를 마무리하고 아침 8시 쯤 영화에 나오는 좀비처럼 비척비척 북측 기숙사 길을 걷다 보면 9시 수업을 가는 사람들이 기숙사에서 걸어나오는 것이 보인다. 나는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다른 사람들은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보는 것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쓰러지 듯 누우면 내가 왜 이렇게 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불규칙한 수면 시간과 식생활에 몸이 약해진다는 것을 바로 느끼면서도 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내 스스로가 가끔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폭풍같았던 학기말이 지나고 여유로운 방학이 되어 나는 지난 내 생활들을 돌아보았다. 학기 초와 확연히 달라진 안색과 체력, 주량에 나는 내 생활이 얼마나 건강하지 못했나 깨달았다. 사람들은 다들 자신만의 저울을 가지고 산다. 저울의 두 접시 위에 각각 다른 것을 옮겨 놓고 기우는 쪽의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나는 항상 과제를 하며 불만족스러웠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욕심을 내어 더 잘하고 싶었다. 그런 욕심은 내 몸의 건강과 함께 저울에 올라갔고 항상 욕심이 건강을 이겼다. 과제에 대한 만족은 쉽게 오지 않았고 그럴수록 내 건강은 더 나빠져만 갔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사람 바이 사람이라는 세상의 진리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없다. 어떤 사람의 어떤 상황에는 건강보다 과제의 만족도가 더 중요할 수 있고 저런 사람의 저런 상황에는 과제보다 본인의 몸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결국 무엇을 택할지는 본인의 선택인 것이다.
나는 이번 학기부터 규칙적으로 생활해 내 몸에 신경을 쓰기로 다짐했다. 내 멋진 미래를 위해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한 미래를 위해 건강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저번 학기를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두울 때 자고 밝을 때 일어나 사람들 밥 먹는 시간에 끼니를 챙겨먹을 것이다. 학기말에 저번처럼 좀비가 되지 않은 건강한 내 모습을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