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올드로이드 - <레이디 맥베스>

 한 여자가 짐짓 설렌 듯, 방에 서 있다. 드디어 결혼 후 첫날 밤을 보낼 남자가 들어왔다. 나중에 집 밖 구경도 하면서 외풍을 쐬고 싶다는 여자의 기대 섞인 말에, 사내는 방에만 잠자코 있으라고 고함치고 각자 잔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에서 결혼식 장면 후 바로 이어지는 쇼트다. 주인공인 캐서린은 그녀와 잠자리를 하지 않으려는 강압적인 남편인 알렉산더, 그리고 그의 아버지 즉 캐서린의 장인어른인 보리스와 저택에서 함께 살게 된다. 자유를 거세당한 엄격한 저택 속에 들어온 캐서린을 비추며 영화는 시작된다.
그러던 중, 알렉산더와 보리스가 갑작스레 어디 멀리 간다면서, 저택을 비우게 됐다. 자유를 만끽할 새도 없이, 캐서린은 그녀의 흑인 하녀의 비명을 듣고 도축장으로 뛰어갔다. 거기에는 남자 하인들이 흑인 하녀를 전라 상태로 희롱하고 있었고, 캐서린은 엄정하게 남자 하인들을 혼내지만 유독 한 남자, 세바스찬만이 빈정대며, 심지어 그녀를 들러업어 희롱하려 하기도 한다. 캐서린이 가진 저택 내에서의 권력의 연원이 결국 그녀의 남편과 장인어른임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세바스찬은 분명 캐서린에겐 새로운 자극이었고, 둘은 이내 연인 관계가 된다. 캐서린은 사랑을 사수하려는 강한 욕구를 갖게 되고, 집에 혼자 돌아온 보리스한테 노골적으로 대들기까지 한다. 결국, 그녀는 세바스찬과 같이 있기 위해 방해되는 것들을 없애기 시작한다. 캐서린은 내연관계를 알아챈 보리스를 독버섯을 먹여서 죽이고, 원래 그녀와 보리스가 앉던 만찬 식탁에 그녀의 흑인 하녀를 앉힌다. 그녀에게는 사랑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와 동시에, 저택의 백인 남성 중심적인 권력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욕구도 있었던 것이다.
영화 내내, 저택 안에서는 어떤 역동적인 이벤트가 일어나도 카메라는 정적인 픽스를 고집스러울 정도로 유지한다. 세바스찬과 보리스가 떠나고 나서야, 캐서린은 그토록 맞고 싶었던 외풍을 맞으려 외출을 감행하는데, 이때 비로소 카메라가 크게 움직인다.
그러다가 영화에서 집 안에서는 픽스, 야외에서는 무빙이라는 고집스러운 원칙이 깨지는 중요한 지점이 생긴다. 바로, 캐서린과 세바스찬의 첫 정사 장면이다. 원래 카메라가 어떤 각도로 풍광을 잡고 나면, 인물들이 아무리 화면의 가장자리로 가도 관심 없다는 듯 고정돼있었는데, 그들의 정사 장면에서는 집 안에서의 섹스임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는 집요하게 캐서린의 흥분된 얼굴을 화면에 중앙에 배치시키려 분주하게 움직인다. 어쩌면 그녀가 잔혹한 폭력과 살인을 통해서라도 지키고자 했던 것은 사랑의 대상인 세바스찬이 아니라, 외풍을 맞을, 그 자유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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