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예술가, 에드가 드가 서거 100주년이다. 드가는 뛰어난 소묘 실력과 독특한 색채감을 가진 화가였다. 그가 화폭에 그려낸 수많은 일상은 순간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의 붓 아래 재탄생한 역사, 인물, 풍경, 일상을 보고 있으면, 마치 그림의 상황 속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림을 매개로 1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드가의 삶과 생각을 느껴보자.

예술과 일상 사이, 젊은 드가의 역설
드가가 자란 환경과 어린 시절을 보면, 우리의 시각적 인상을 그토록 바꿔놓을 혁명적인 예술가의 운명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드가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역동성을 담아낸 정확한 소묘와 대담한 붓질을 통해서 완성된 순간의 아름다움에 현혹되기 마련이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삶은 혁명가의 자질을 갖기에는 평탄했다. 파리의 부유한 은행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가업을 물려받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법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대학 생활 내내 화가들의 작품을 따라 그리는 일에 열중했고, 결국 학업을 포기하고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어릴 적부터 루브르 박물관을 드나들며 모사에 관심을 가졌던 드가는 화가 루이 라모트 아래서 사사하며 소묘의 기본기를 다졌다. 또한, 신고전주의 거장인 앵그르에게 직접 회화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기억을 되살려 선을 그려라’라는 앵그르의 조언은 젊은 드가에게 복음과도 같아서 그가 많은 고전주의 작품을 자세히 연구하며 묘사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고전주의 미술은 고대의 미학을 정형화된 양식의 회화로 표현했는데, 드가는 이때 갖게 된 고전주의에 대한 애정을 평생 버리지 못했다. 드가는 1856년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서 르네상스 작품에 심취하게 되었다. 약 10년간 기를란다요, 라파엘로 등의 고전 작품에 관심을 가지며 자신만의 역사화를 탄생시켰다. 이 기간에 <바빌론을 건설하는 세미라미스>, <소년에게 도전하는 스파르타 소녀> 등의 역사화가 완성되었다. 그가 당시를 주름잡던 앵그르와 외젠 들라크루아를 모범으로 삼았지만, 그가 그려낸 역사화는 그 당시의 이상적인 형태를 띠고 있지 않다. 이전의 역사화와는 달리 사실적인 표현으로 가득하며, 스파르타 소녀가 만들어내는 동적인 구조는 역사화가 추구하는 정적 아름다움과는 반한다. 이때부터 그의 스승들과 조금씩 어긋나던 화풍은 1880년대에 독자적인 경지에 이른다.

형식의 변화를 통해 긴장을 담아내다
1865년 이전 드가가 그려낸 역사화를 보고 있으면 결국 그가 고전주의 화풍의 그림을 그만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소년에게 도전하는 스파르타 소녀>에서 나타나는 구도는 이전의 역사화에서 쉽게 보이지 않던 동적인 형식이었으며, <뉴올리언스의 수난>에서는 시각적 효과를 위해서 인물을 잘라내 이야기를 희생하기도 하였다. 그는 역사화를 그리면서 그 관례적 표현들을 이해하고 그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가 정작 관심을 가진 것은 신체에 대한 표현, 실제의 경험이었다. 역사화가 가진 공허함과 극적인 성격을 깨닫게 된 그는 구경거리로서의 역사 대신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드가가 초상화가 가진 관례를 파괴하면서 그의 작품은 빛을 발하게 된다. 초기에 그린 드가의 초상화는 특유의 긴장감을 가진다. <에드몬도 모르빌리 부부>는 이런 특징을 잘 보여주는 그림일 것이다. 회색 조 배경 속의 부부는 응시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부의 성격 차이가 은연중에 드러난다. 절제된 귀족의 예절을 갖춘 공작과는 달리, 부드러운 우수를 간직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공작부인은 자연스럽게 대조를 이룬다. 부인이 자신의 뺨에 대고 있는 오른손은 그녀가 시선을 옮기는 순간을 포착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드가는 인물 사이의 긴장감뿐만이 아닌, 사물과 인물 사이의 긴장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초상화는 관습적으로 중심이 되는 인물을 중앙에 배치하지만, 오히려 <국화와 여인>에서는 풍성하게 피어있는 꽃을 중앙에 배치해, 가장자리로 밀려난 여인이 국화와 경쟁하는 듯한 구도를 완성해 관객에게 신선함을 선물한다.

파리 소시민의 일상을 사랑한 드가
드가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당시,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생활하며, 개인에 집중하는 초상화에서 벗어나, 일상의 교묘한 관계를 그려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뉴올리언스 목화거래소>, <뉴올리언스의 목화 상인> 등의 작품을 보면, 같은 공간 내에 있지만, 서로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 비즈니스의 세계가 그려져 있다. 그가 미국에서 시도한, 소외와 개인이라는 주제에 대한 묘사는 파리에 돌아온 이후 그의 그림에서 더 명백하게 나타난다. 드가는 자연주의 문학에 크게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뒤랑튀의 영향을 받아 예술이 현재를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스타 무용수> 등도 탄생하였다.
드가는 인물의 환경이 근대적 인물의 특성을 스스로 설명하게 했으며,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소외, 허탈, 긴장 등 그림의 상황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파리의 카페와 경주마, 극장과 거리에서 드가는 속도감을 기기어이 찾아내, 그것을 그림에 구현했다. 잇달아 벌어지는 사건의 한 단면을 발견해 파고드는 방식으로 그림의 내용을 구성했다. 그의 그림 중 가장 잘 알려진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은 그가 가진 독특한 기법과 주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시선의 각도, 남녀의 위치가 이 그림이 더 큰 장면의 일부분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잘라내기 기법은 남녀의 소외와 혼란을 강조한다. 띄엄띄엄 불규칙하게 떨어져 있는 탁자의 배열은 공간을 분리하며 남녀의 우울과 무기력을 더 강화한다. 이외에도 오케스트라, 부부의 일상, 카페의 모습을 담아내며 속도감 있는 파리의 생활을 그려낸 드가에게 감탄하게 된다.

외면받던 존재, 여성을 등장시키다
드가는 르누아르와 함께 평범한 여인을 작품에 등장시킨 혁명적인 화가이기도 하다. 당시 여성은 힘없는 존재,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드가도 그러한 세태에서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는 예술 소재로서 여성을 배척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신체를 자유롭게 활용해 아름다운 동작을 그렸는데, 드가는 이러한 작품의 폭을 늘리며 무희의 화가로 불리게 된다.
발레리나가 가진 특유의 생동감을 표현하는 한편, 발레와 연관된 다양한 주제를 시도하며 대상의 가능성을 탐구해냈다. 발레의 동작과 경직을 동시에 담고 있는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단순히 발레라는 동작에서 그치지 않고 사라지는 것과 견고하게 구축된 것, 외양과 진실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그의 대담함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외에도 세탁소의 여인, 가수, 모자를 쓴 여인, 목욕하는 여인 등을 주제로 연작을 그리며 그의 주제는 확장됐으며 시각적 전략은 한층 향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그는 고집스럽고 특이한 사람이지만, 우리로 하여금 한눈에 아름다움을 느끼게끔 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시력을 잃기 전까지 많은 그림을 남겼으며, 1917년 “드가는 드로잉을 사랑했다”라는 묘비명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에드가 드가는 부분적이고 임의적인 것을 그림으로 옮겼다. 평소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 일상의 모습을 가시적으로 변화시켜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보이게 했다. 그는 비록 사소한 대상을 그렸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주제를 담아냈으며, 이는 에드가 드가가 가진 무한한 기법과 끝없는 관찰에서 온 결과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 보이지 않던 많은 것을 새롭게 느끼게 된다.

참고문헌 |

<에드가 드가>, 베른트 그로베
<춤추는 여인 : 드가, 위대한 예술가의 초상 3>, 에드가 드가
<DEGAS : 에드가 드가, 위대한 미술가의 얼굴>, 피에르 카반느

참고전시 |

Degas, Impressionism, and the Paris Millinery Trade
Legion of Honor, San Francisco,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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