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 더 나아가서 아예 모든 문화사를 ‘침묵’이라는 키워드로 재정렬을 시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예술의 흐름에 정통한 80대 노학자가 이를 시도한다. 시간적 순서를 무시하고 오로지 침묵이라는 키워드로 재구성된 놀라운 문화사를 책 <침묵의 예술>에서 살펴보자.
사전적인 정의로, 침묵은 어떠한 소리도 없는 상태일 뿐이다. 하지만 침묵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그런 침묵의 능동성을 저자는 힘을 주어 얘기한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침묵은 사색과 생각들에 영향을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의 행동과 결정에도 큰 영향을 준다. 저자는 이를 공간과의 상호작용에 결부하여, 단적으로 ‘침묵을 호흡하는 집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특히 19~20세기 문학에서 자주 보이는 저택에 깔린 침묵을 소개한다. 이러한 저택에서 침묵은 주체적으로 움직인다. 침묵은 ‘무거운 가스처럼 방 안을 뒤덮어 구석구석 메웠다.’
문학적으로, 침묵은 종종 절망적인 상황을 예기하기도 한다. 이는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윈 씨>에서 자세히 묘사된 앙텔므의 임종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윈 씨의 호흡은 작은 방의 침묵을 방해하기는커녕 일종의 침울한 위중함을 더해줄 뿐이다.’ 침묵이라기보단 적막으로 기능하는 이 정서는 불안과 공포를 상징한다. 또한, 대표적인 19세기의 낭만파 작가인 샤토브리앙은 동양을 전제군주제에서 생겨난 비탄의 거대한 침묵으로 묘사했다. 그 외에도 자연의 본질로서 존재하는 침묵 등, 저자는 인간의 본능 상 침묵이 자아내는 공포의 분위기를 잘 포착한다.
이렇게 저자는 문학, 영화, 심지어는 회화를 아우르며 인간과 침묵의 관계에 대해서 고찰을 시도한다. 침묵은 인간의 역사에서 그야말로 무수한 함의들을 가지고 등장한다. 사랑의 신호이기도, 죽음이기도, 자연이기도, 밤이기도, 성스러운 경외감이기도 한 침묵은 문학에서 특히 그 존재감을 뽐낸다. 이토록 침묵이 여러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은 그 본질적인 공백에서 나오는 넓은 여지 때문이다. 범람의 시대가 되어버린 지금, 세상에서 침묵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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