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3일 문화재위원회에서 7년여간 진위논란이 일던 증도가자의 보물지정을 부결로 결론지었다. 문화재위원회는 증도가자의 서체와 주조, 불분명한 입수경위를 지적하며 증도가자가 증도가를 인쇄한 활자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증도가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7년여간의 논란 끝에 부결로 결론이 났는 지, 그 내막을 자세히 알아보자. 

증도가자, 세상에 공개되다

  지난 2010년 9월 2일, 남권희 경북대 교수는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한 다보성고미술 전시관에서 언론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남 교수는 현존하는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보다 최소 138년 앞선 금속활자 12점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남교수는 이 활자들이 고려 고종26년 때 목판본으로 복각*한 남명천화상송증도가(보물 758호, 이하 증도가)의 원본을 찍어 낸 활자라고 주장하며, 이를 증도가자로 부를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한 증거로 남 교수는 증도가에서 보이는 특유의 서체와 활자높이, 각, 삐침이 증도가자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을 제시했다. 또한,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소장하는 고려시대 추정 금속활자 1점과 구리, 주석, 납 성분이 비슷하다는 것과 상하분리된 활자의 구조도 증거로 제시됐다. 이에 당시 학계에서는 남 교수의 주장이 연구가치는 있지만, 당장 제시된 근거들이 간접적이라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한, 고려시 대 금속활자라고 판단하기 위한 비교대상이 없어 연구진척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진전 없던 증도가자 진위공방
  남 교수가 증도가자를 발표한 후 5일이 지난 2010년 9월7일,중 원대 이상주 교수가 처음으로 학술적인 반론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공개된 금속활자 12점 가운데 명(明), 선(善), 소(所), 평(平), 어(於) 5점에 대해붓으로글씨를쓰는방법인서 법으로 분석한 결과를 제시했다. 명(明)의 경우 월(月)의 별(J)이 일(日)의 오른쪽 곤(l)과 증도가의 경우 맞닿 아 있지만, 증도가자는 맞닿아 있지 않으며, 선(善)의 경우 양(羊) 위의 두 획이 증도가에는 팔(八)자 가 뒤집힌 모양이지만 증도 가자는 팔(八)과 같이 쓰였다고 지적했다. 또한 소(所)의 경우 호(戶) 와 근(斤)의 별(J) 각도가 다른 점, 어(於)의 경우 ‘ᄉ’ 아래획들의 서법이 다른 점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서법분석을 토대로 증도가자는 증도가를 인쇄한 실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의 이같은 주장에 남 교수는 같은 달 14일에 다보성고미술 전시관에서 ‘금속활자와 증도가자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열어 반박할 자리를 마련했다. 특강에서 남 교수는 금속활자가 아닌 목판활자로 새길 때 획이 거칠고 두꺼워질 수 있어 글자체가 일치하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하며 이 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글 자체가 다른 부분이 있다는 질문과 북한에서 활자가 왔다고 추정하는 자세한 경위를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확실한 근거를 내놓지 못했다. 결국, 남 교수는 증도가자 발표가 성급했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함께 연구해나가자고 제안하며 특강을 마쳤다.

  하지만 이런 남 교수의 제안에도 진위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남 교수의 특강이 있었던 바로 다음 달인 2010년 10월 24일, 이 교수로부터 2차 반론이 제시됐다. 이 교수는 목판활자가 획이 거칠고 두껍다는 주장에, 명(明)의 경우 증도가 번 각본이 아닌 증도가자가 획이 더 거칠고 두껍다고 반박했다. 또한, 목 판활자가 획이 두껍다는 남 교수의 주장에도, 목판활자를 한지에 찍어 낼때 먹이 번지며 두꺼워지는 것이지 목판활자 자체가 두껍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남 교수와 이 교수의 치열한 진위공방은 결국 2010년 11월 5일 한국 서지학회의 추계 학술발표에서 처음으로 직접 부딪히게 된다. 하지만 이날 두 교수는 분석방법에서큰차이를보이며서로의입장을 번복하기만 했다. 

증도가자, 고려시대 활자로 추정돼

  우위를 가릴 수 없었던 두 교수의 진위공방은 증도가자 탄소연대 측정결과에 따라 남 교수 측의 주장이 힘을얻게 된다. 지난 2010년 11월 30일, KBS 1TV ‘역사스페셜’ 제작진은 남 교수 측에서 제시한 12점의 증도가자가 아닌 또 다른 증도가자인 비(悲)와 불(佛)의 남은 먹을 채취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AMS 연대측정을 의뢰한 결과, 고려시대의 먹으로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비 (悲)의 경우 AD 1160~1280년에 속 할 확률이 95.4%, 불(佛)의 경우 AD 1010~1210년에 속할 확률이 95.4% 로, 이는 증도가자가 고려시대에 제작된 금속활자라는 주장을 증명해 준다. 제작진 측은 본래 제시한 12점의 증도가자의 경우 먹의 상태가 매우 열악하여 상태가 좋은 다른 증도가자의 먹을 채취해 나온 결과라고 전했다. 
  이런 결과에 힘입어 증도가자에 관한 연구는 탄력을 받았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곧바로 비(悲)와 불(佛)자를 포함하여 다른 증도 가자에 대한 탄소연대 측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관한 연구결과를 2011년 6월 17일에 열린 증도가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다. 당시 발표를 맡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완 책임연구원은 시료 채취가 불가 능한 금속활자의 특성상 금속활자에 묻은 먹을 통해 탄소연대측정을 했다고 밝혔다. 측정결과 비(悲)와 불 (佛)의 경우 이전과 비슷한 결과가, 대(大)의 경우 AD 770~980년에 속 할 확률이 94.0%, 인(人)의 경우 AD 810~1030년에 속할 확률이 95.4% 수치가 나왔다. 이에 대해 홍완 책임 연구원은 연구결과가 금속활자의 연도를 측정한 것이 아닌 활자에 묻은 먹의 연대 측정 결과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결과들을 바탕으로 증도 가자 소장인 이정애 씨는 2011년 10 월 6일 문화재청에 정식으로 101점 증도가자의 보물지정을 신청했다.

잠정보류된 증도가자 보물지정

  증도가자 보물지정에 대한 문화 재청의 심의는 간단하지만 긴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2011년 10월 6일 에 신청된 보물지정은, 2011년 12월 13일에 문화재위원회에 보고되어 이 정애 씨가 제출한 보고서를 토대로 소위원회에서 지정가치를 검토하여 지정 추진으로 결론을 지었다. 이후 1년 여가 지난 2012년 10월 11일에 문화재위원회는 전문가 자문회의를 개최한다. 전문가 자문회의에서 문화재 위원회는 출처와 소명이 미흡한 점을 들어 폭넓은 조사와 진위판별이 있고 난 뒤 문화재 지정절차를 거치기로 한다. 이후 2013년 1월 29일 증도가자현지실견조사를 통해 최종지정을 검토하고, 바로 다음달인 2013년 2월 14일에 문화재위원회는 출처불분명과 폭넓은 조사의 필요성을 이유로 지정 추진을 보류하게 된다. 문화재위원회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유출되었다가 대구의 한 수집가에 의해 반입되었다는 이정애 씨의 출처주장에 대해 정확한 증거가 없다는 견해였다.

  문화재위원회의 지정추진 보류에 이정애 씨는 곧바로 4달 뒤인 2013년 6월 18일에 지정추진을 촉구했 다. 동시에 다보성고미술 전시관을 운영하는 김종춘 회장이 증도가자가 담겨 있었다는 청동초두(주전자)와 청동수반(대야)을 공개하며 증도가 자의 출처에 대한 증거를 제시했다. 다보성미술관 측은 X-ray 판독결과 청동초두와 청동수반에 각각 1개 씩 증도가자가 묻혀있다고 밝혔다. 이에 김종춘 회장은 증도가자가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있었다는 증거가 여기에 있다고 주장하며, 일제강점기 북한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된 증도 가자가 일본에 넘어갔다가 우리나라로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문화재위원회는 2013년 9월 10일 협의를 거쳐, 2013년 10월 10일 종합학술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다시 조사에 착수하기로 한다.
한편 2013년 10월 17일에 열렸던 국 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의 정세균 의원이 문화재청 측에 증도가자 조사에 필요성을 언 급하며 조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기초학술조사 연구 실시돼

  문화재위원회는 직접 조사단을 꾸려 조사에 나서기 전, 기초학술조사를 위해 경북대 산학협력단에 용역을 요청하여 2014년 6월 10일부 터 조사를 착수해 보고서를 작성하게 했다. 당시 경북대 산학협력단의 책임자는 증도가자를 처음 학계에 제시한 남권희 교수였고, 그 외 서지학, 보존과학, 서예, 역사학 등에 관련한 32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경북대 산학협력단은 보관장소에 따라 분류된 다보성 증도가자 101개, 국립중앙박물관 1개, 청주고인쇄박 물관 7개, 총 109개의 증도가자 추 정금속활자를 가지고서 체비교 및 제작환경 연구, 방사성 탄소 연대, 금속 성분분석 및 3D 스캔 등의 과정을 거쳐 기초학술조사를 진행하였다. 2014년 12월 19일 마무리 된 기초학술조사는 활자형태, 활자사용여부, 글자일치여부, 동일자여부를 근거로 109개의 금속활자 중 62개 활자를 증도가자로, 나머지 47개의 활자를 고려시대 주조 활자로 분류했다. 결론적으로 경북대 산학협력단은 109개 금속활자 모두 고려시대에 주조되었으며, 일부는 사용된 흔적이 있다고 문화재위원회 측에 보고했다.

자세한 조사를 위한 지정조사단 결성
  산학협력단의 조사결과에 따라 증도가자에 대한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문화재위원회는 절차에 따라 지정조사단을 꾸리기로 한다. 2015년 3월부터 기한 없음으로 예정된 지정조사단은 지정조사단 자문회의를 거쳐 학회관계자들의 조사단 추천을 받아 구성하기로 했다. 그 결과 성균관 대신 승운교수가 위원장을 맡게 되었고, 그 아래로 서체, 연대측정, 제작기법 연구에 필요한 부위원장들을 선정했다. 이들은 같은 해 6월4일 첫회의를 통해 ▲출처경위에 대한 상세조사 ▲비교대 상동시대 유물의 결여문제 해결 ▲서체 비교 계량의 필요성 ▲시료의 연대측정 정밀화 등을 논의하며 자세한 연구계획을 세웠다. 이후 경북대 산학협력단에서 보고한 기초학술 조사에 관한 소견서를 전문가들에게 요청해 기초학술조사에서 부족했던 점과 적절하지 않았던 연구에 대해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2015년 12월 2일에 지정조사단은 2차 회의를 열어 조사계획을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증도가자, 위조 의혹에 휩싸여
  하지만 이 사이 언론에서는 증도 가자 조작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논란의 시작은 2015년 6월 22일 충북 경찰청에서 밝힌 조사 내용이었다. 충북경찰청은 4억 원 규모의 금속활 자복원사업 연구용역을 맡은 모 교수가 인건비 명목으로 연구비를 횡령하고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첩보를 받아 조사 중이라 밝혔다. 이에 언론 은모교수를 당시 경북대 산학협력 단 단장을 맡았던 증도가자를 처음으로 알린 교수로 예상하며 증도가자 또한 조작되었다는 여론을 조성했다.
  이어 2015년 10월 27일 국립과 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서 청주 고인쇄박물관의 금속활자 7개가 위조품이라는 결과를 제시하며 증도가자 조작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지게 된다. 국과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고활자와 7개의 활자를 컴퓨터 단층촬영(이하 CT)을 통해 비교해 본 결과, 고인쇄박물관의 고활자와는 달리 금속활자가 외부가 아닌 내부부터 부식되고 있는 것을 확인 했다고 전했다. 또한, 마이크로 X선 형광분석기(이하 XRF) 조사에서 활자 내부와 외부의 금속성분비가 다르게 나왔고, 활자 뒷면에 금속을 덧바른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중국에서만 사용되던 문자가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남교수는 이에 대해 청동기 시대의 구리거울인 다뉴세문경(국보 제141호)을 예로 들며, 고대 청동 유물의 경우 내부부터 부식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과 CT에서 내부 밀도 차로 인해 이중구조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하며 국과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또한, 문화재청도 7개의 증도가자만 위조로 추측되는 것 이지, 100여 개의 모든 증도가자가 위조라 판명된 것이 아니므로 조사 경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외에도 경북대산학 협력단 용역 형평성 논란, 증도가자의 인공원소검출 논란, 증도가 실제 시대 논란 등이 일어 언론에서는 증도가자를 ‘증도가짜’로 낙인찍었으며, 개성 만월대에서 실제로 고려시대 금속활자들이 발굴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며 증도가자는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잊혀 갔다.

계획대로 진행된 지정조사단 조사
  이러는 중에도 지정조사단의 조사는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2016년 4월초까지 1차분석 대상증도가 자16점에대한 비파괴 조사 및 데이터 분석을 완료한 문화재위원회는, 2016년 4월 18일 그동안의 증도가자 분석내용을 가지고 분석자문단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결과 1차 증도 가자 비파괴 검사에 대해서는 시료 채취의정밀성보완이,시료채취분석 방법에 대해서는 미량원소에 관한 분석방법개선이 요구되었다. 이 때, 비파괴 검사에서 증도가자에 토양출토 문화재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염화동 부식물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을 명시하기도 했다. 이에 지정조사단은 미량 원소를 정밀 분석할 수 있는 LA-ICP-MS 분석법을 도입하여 미량 원소를 정량분석하는 등의 시료채취 분석계획과, 증도가자에 대한 2차 전수조사 계획을 마련했다.
  계획을 토대로 지정조사단은 2차 분석대상 증도가자 85점을 2016년 7월 20일까지 전수 분석했다. 또한, 국과수에서 체분석을 의뢰해 조선시대 활자인 초주갑인자와 임진자의 주자본**과 번각본*** 간 서체 일치율과 증도가자의 일치율을 비교 분석했으며, 같은 해 8월에서 9월 사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시대 추정 금속활자 1점과 증도가자를 비교분석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지정조사단은 2016년 10월 20일, 31일과 같은 해 11월 9일 세 번에 걸쳐 분석자료 검토회의를 개최한다. 회의에서 지정조사단은 ▲미량 원소의 정밀 분석이 어려운 점 ▲부식상태가 심각한점 ▲비교분석할 대상이 없는 점을 들며 과학적 조사에 한계가 있음을 밝혔다. 결국 지정조사단은 그동안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보고하되, 조사가 현재 진행 중인 점과 과학적 조사와 데이터 분석의 한계가 있음을 명시하도록 했다.

증도가자 취득경위 불분명해
  2년 넘게 조사를 했음에도 결론을 내지 못한 지정조사단은 2016년 12월 6일, 4차 지정조사단 전체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에서 지정조사단은 지정조사 분석결과를 종합적으로 보고했다. 당시 보고에는 처음으로 자세한 증도가자 취득 경위에 관한 조사가 담겨 있었다. 조사에 따르면 보물지정 신청자인 이정애 씨는 개성에서 주조된 증도가자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유출된 뒤, 일본 오사카의 구키야 마코토, 박진규, 김환재, 대구의 김병구, 이준영을 거쳐 자신에게 오게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소명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실제 증빙자료가 부족한 소명서였기 때문에, 지정조사단은 이전 소장인들에게 공문을 보내 입수경위 및 매매계약서, 세관신고서 등을 요구했다.
  이에 박진규 씨는 사실확인서와 관세율표를 서류로 제출했고, 김병 구 씨는 사실확인서와 금속활자 사진,이준영씨는 이정애씨가 대신하여 매매계약서와 사실확인서를 보내 왔다. 구키야 마코토 또한 사실확인 서와 자신이 작성한 매매계약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보내온 사실확인서를 증명해줄 자료는 미미 했고,김환재씨의경우사망하여취 득경위를밝힐수없었다. 또한, 개성에서 주조되어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유출되었다는 이정애 씨의 주장을 증명할 어떠한 증거도 없어 취득 경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지정조사 단의 결론이었다.

증도가자, 공개검증 신청하다

  또한, 당시 회의에서 과학적 조사의 한계를 느낀 지정조사단은 공개 검증을 제안했다. 정밀분석의 어려움과 비교대상이 부족해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지정조사단이, 국민에게 자료를 공개해 다양한 의견을 받아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를 받아들이고 분석자료를 검토해, 2016년 12월 30일부터 15일간 그동안의 분석결과를 일반에 공개하고 국민에게 의견을 받는 공개검증을 신청했다. 당시 문화재청에서 공개한 자료에는 ▲소유자 제출자료 ▲증도가자 기초학술조사연구 보고서 ▲금속활자 과학적 조사에 관한 보고서 등이 첨부되어 있었고, 자료 안에는 그동안의 증도가자에 관한 역사적, 과학적 연구결과 및 분석과 취득 경위에 관한 자세한 조사과정이 담겨있었다.이후 지정조사단은 공개검증에서 수렴한 의견을 바탕으로 주요 의견 제출자를 초청해 지난 2월 16일과 20일에 과학분석분야간담회, 서체비교주조조판 분야 간담회를 각각 개최하고 증도가자 보물 지정에 관한 이견을 조율했다. 이를 토대로 지정조사단은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여 문화재위원회에 보고했다.
  결과적으로 증도가자는 지난 달 13 일, 문화재청의 발표에 따라 보물지정 부결로 결론이 났다. 문화재청은 활자의 서체, 주조, 조판 등의 면과 불분명한 출처 경위로 인해 현재는 증도가자를 인쇄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고려시대 금속활자의 가능성은 열려있으므로 정확한 출처 경위와 확실한 증거들이 더 나온다면 보물 지정을 다시 논의해 볼 수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7년여 간 진위논란이 일은 증도가자는 다시 제자리걸음을 하게 됐다.

복각*
한번 새긴 책판을 원본 그대로 다시 목판으로 새김.
주자본**
금속활자로 한번에 새긴 책을 일컫는 말.
번각본***
한번 새긴 책의 목판을 본보 기로 삼아 다시 새긴 책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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