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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들의 축제
“모든 정치는 다수의 무관심에 기초하고 있다 - 제임스 레스턴”
[432호] 2017년 03월 28일 (화) 공은비 프리랜서 작가 kaisttimes@gmail.com

 
2009년 방영된 드라마 <시티홀>의 1화 오프닝 시퀀스는 한 시골 마을의 이장선거를 통해서 다수의 국민이 정치에 무지하고, 무관심한 우리나라의 세태를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그런 보통 사람 중 하나이던 여주인공이 시청 말단 공무원에서 시장으로, 여성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녀는 왜 안정적인 직장, 보장된 삶을 버리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험난한 정치판에 뛰어들게 될까? 바로 ‘정치’라는 것이 자신과 가족의 삶, 미혼모인 친구의 삶, 손녀와 단둘이 어렵게 사는 이웃 노인의 삶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 전인 2008년. 유학생 신분으로 머물고 있었던 프랑스는 연일 사르코지 우파 정부의 개혁 정책에 반대하는 파업과 시위로 들끓고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유학생들에게 프랑스 문화를 가르치는 수업 시간 도중 한 미국인 학생이 던진 질문에서 시작 되었다. 그 날은 중, 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신들의 동의 없는 정부의 교육 개혁에 반대하는 가두 행진을 하던 날이었다. “당신은 당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수업을 듣지 않고 시위 중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학생의 질문에 프랑스인 교수가 답했다. “그것이 그 아이의 정치적인 신념이라면 나는 존중한다. 그리고 나는 내 아이가 단지 바칼로레아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자신의 신념에 반해 교실에 남아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바깥에서 어린 학생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여러분, 책을 덮으세요.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입니다.”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에서 징계를 내리는 내 나라가 부끄럽고, 자신들의 높은 정치의식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프랑스인들이 부럽기만 했던 그 때로부터 8년이 흐른 2016년. 국정을 농단한 비선실세 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다시 광장으로 뛰쳐나왔다. 언제나 그랬듯 냄비처럼 금세 식을 거라는 냉소적인 반응에 반해 정치적인 이슈에 무관심하게 살던 사람들까지 더해져 집회 규모는 매주 주말마다 커졌고, 주최 측 추산 최대 200만 명까지 모였음에도 어떤 불상사도 없었던 평화로운 집회는 해외 외신으로부터 ‘다른 국가들, 특히 민주주의 국가들이 가장 열망하는 모습 중 하나’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냈다. 그 어느 때보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보통 시민들의 승리였다. 그들은 손에 화염병 대신 촛불을 들었다. 대학생들은 민중가요 대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 8,90년대 민주화 항쟁 당시의 시위와 사뭇 다른 양상을 띠게 된 촛불집회는 더 이상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면, 2016년 광화문 광장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의 광장을 뒤덮은 촛불은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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