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및전자공학부 유회준 교수와 고려대학교 의학과 최상식 교수 공동 연구팀이 수술 중 마취 심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무선 기기를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지난달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고체회로설계학회(ISSCC)에서 발표되었다.

기존에는 일부 약제들에 적용 못해
수술 중 마취 심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환자의 안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마취가 얕으면 고통스럽고, 깊으면 합병증이나 사망 등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주로 사용해온 BIS*(Bispectral Index) 감시장치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받아왔다. 우선 BIS는 모든 환자에게 사용할 수 없다는 큰 단점이 있다. 마취에 자주 사용되는 프로포폴의 경우, 뇌파를 큰 폭으로 달라지게 하기 때문에 BIS만으로도 마취 심도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포폴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환자에게 사용하는 케타민**의 경우, 뇌파의 변화가 미미해 BIS로는 신호를 잡아내기 힘들다. 즉 케타민으로 마취한 환자의 마취 심도는 BIS만 이용해서는 알 수 없다. 이 외에도 BIS는 전선이 필요해 복잡한 수술 과정에 사용하기 번거롭고, 수술 시간이 불가피하게 길어지는 경우에는 전극의 젤이 말라 뇌파 신호가 부정확하게 측정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새롭게 적용된 근적외선 분광법
이에 연구팀은 뇌파 검사에 근적외선 분광법(Near Infrared Spec-troscopy, NIRS)을 추가로 도입해 마취 심도를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기기를 개발했다. NIRS는 파장이 다른 두 빛을 대뇌 피질에 쬐어준 후 흡광도 차이를 분석해 혈액 속 헤모글로빈 농도를 측정하는 기술이다. 주로 수술실 밖에서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는 데 사용되었고, 마취와 관련된 분야에 이를 접목한 건 처음이다.

신체 정보 받아 딥 러닝으로 분석해
연구팀이 개발한 기기는 환자의 이마에 부착하는 패치 형태로, 패치 위에 개발한 회로가 들어간 칩을 부착해 만들어진다. 마취 중인 환자에게 기기를 붙이면 뇌파와 혈중 헤모글로빈 농도가 신호로 전달되고, 해당 신호는 디지털 신호로 전환된다. 딥 러닝으로 학습된 알고리즘이 몇 가지 선택된 변수를 중심으로 신호를 분석하면 최종적으로 마취 심도를 알아내는 원리이다.

두 가지 신호 조합해 개선한 정확도
이번에 새로 개발한 기기는 BIS가 지적받았던 단점들을 한 번에 해결했다. 우선 연구팀이 개발한 기기는 뇌파뿐만 아니라 근적외선 분광 신호도 추가로 분석하기 때문에 뇌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케타민 등의 마취 약제에 대해서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뇌파 검사와 NIRS를 통해 얻은 두 가지 신호를 조합해 결과를 내기 때문에 마취 심도를 한층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BIS는 수술시간이 길어지면 전극의 건조로 저항이 커져 뇌파 신호의 질이 나빠지는 문제가 존재했는데, 이번 기기는 이를 보정해주는 회로를 도입해 긴 수술에도 정확한 마취 심도를 반영할 수 있다. 빛을 쪼이는 형태라 접촉이 줄어들기 때문에 저항 자체도 작아졌다. 또한, 패치 위에 부착한 전극과 칩을 블루투스로 연결해 추가적인 전선도 일절 필요가 없다.

연구팀은 해당 기기가 실제 환자에게 적용 가능한지도 확인했다. 정확한 마취 심도가 측정되는지 고려대학교 병원 수술실에서 지금도 모니터링이 이루어지고 있다. 유 교수는 “정확한 마취 심도 모니터링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은 세계적으로 처음이다”라며 “이번 기술로 한층 더 안전한 수술 환경 구축이 가능해졌다”라고 본 연구의 의의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