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니콜스 - <러빙>

 

▲ (주)UPI코리아 제공

  1948년 UN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에서는 성인 남녀에게는 인종, 국적, 종교에 따른 어떠한 제약에도 구애받지 않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참혹한 전쟁의 비극 이후 세운 도덕적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수년이 지난 후에도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왔다.

  ‘러빙’은 1960년대 타 인종 간 결혼이 금지되던 때에 사랑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러빙 부부의 실제 이야기다. 영화는 아기를 가졌다는 흑인인 밀드레드의 말로 시작된다. 이 고백을 듣는 백인 리처드 러빙의 표정은 그저 밝지만은 않다. 그는 넓은 들판에서 ‘이 땅에 집을 지어줄게. 나와 결혼해줘’라며 청혼하고, 두 사람은 타 인종 간 결혼에 관대한 워싱턴 D.C.까지 가서 비밀 결혼을 하고 돌아온다. 그러나, 한밤중 자고 있던 러빙 부부는 경찰에게 붙잡혀 법정에 서게 된다. 재판대에 선 부부는 종달새와 참새가 다르게 태어난 이유가 있다며, 타 인종 간 결혼은 주님의 이치에 어긋난다는 재판장의 판단으로 버지니아 주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세상은 러빙 부부를 인간으로 대우해주지 않았다. 축복받아야 할 결혼은 가족들의 걱정 어린 시선과 앞날에 대한 불안으로 시작했다.

  러빙 부부는 마지못해 워싱턴 D.C.로 쫓겨났지만, 그곳에서의 삶도 평탄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루하루 고향과 가족들, 그리고 함께 꿈꿨던 삶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결국, 러빙 부부는 몰래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데에 이르지만, 불안하기만 하다. 리처드 러빙은 밤새 불안한 눈빛으로 집을 지킨다. 그의 표정은 분노와 불신,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다. 관객들은 그들이 고군분투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대체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고민해보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사랑을 당당히 인정받고 싶었던 그들은 긴 싸움을 시작한다. 밀드레드 러빙은 검찰총장 케네디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고 그로부터 시민자유연맹 변호사를 소개받는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으로 삶에 대한 희망을 지켜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용감하고 아름답다. 대법원 소송 전, 리처드 러빙에게 변호사는 판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고 묻는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아내를 사랑해요’ 그의 눈물 어린 외침은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조차 보장받지 못해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아픔 자체였다.

  화려한 연출이나 많은 대사가 등장하지 않지만 러빙 부부의 표정과 눈빛은 많은 감정을 담고 있다. 어떤 어려움이 휘몰아쳐도 변함없는 용기와 사랑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현재 사회가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과장되지 않은 순수한 사랑과 당당한 삶의 태도로 세상을 한 발짝 나아가게 만든 그들의 외로운 싸움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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