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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블랙리스트 예술인이다.
[431호] 2017년 03월 14일 (화) 박재균 기자 hagsfdf@kaist.ac.kr

  어느 정부에서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예술인들을 탄압하기 위한 리스트가 비밀리에 작성되었다. 슬프게도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룩됐다고 여겨지는 2014년 이후 대한민국의 얘기다. 이념과 성향에 따라 예술인을 분류한 이 퇴행적인 리스트는 예술계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문화계는 그들이 가진 무기인 예술로 저항을 함과 동시에, 블랙리스트 법률대응모임을 조직해 즉각적으로 대응하였다.  

블랙리스트, 수면 위로 드러나다

  지난 3월 6일, 특별 검사(이하 특검)의 최종수사결과가 발표되면서 블랙리스트에 대한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관여 여부가 보다 선명해졌다. 각종 청문회가 열리고,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이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혐의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던 차에 이루어진 큰 성과였다. 특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과 공모해 지난 2013년 9월부터 2016년 9월 사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한국문화예술위),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문화예술진흥기금 심사에 부당 개입해 19명의 후보자를 한국문화예술위 책임심의위원 선정에서 배제했다는 의혹 등을 밝혀냈다. 또한, 문화예술계 지원배제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문체부 실장들에 사직서를 제출하게 한 직권남용 혐의도 추가했다. 이와 관련하여 특검팀은 김기춘 전 실장, 조윤선 전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제1 차관을 구속기소 했으며,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비서관과 김소영 전 문화체육비서관은 불구속기소 했다.

  특검팀의 구속기소와 아울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박근혜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등은 ‘박근혜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법률대응 모임’을 구성하고, 지난 2016년 12월 12일에 각종 문화예술단체와 함께 특검에 김기춘, 조윤선 등을 고발했다. 이와는 다른 사안으로 블랙리스트에 의해 피해를 본 문화예술인들의 권익을 되찾기 위해, 민변과 참여연대 소속 변호사 10여 명을 중심으로 한 ‘블랙리스트 소송대리인단’이 조직돼 지난 3월 6일 손해배상소송이 제기되었다.

법적인 대응에 나선 예술인

  집단 소송인 이번 손해배상소송은 원고만 461명에 다다른다. 원고는 JTBC, SBS, 한국일보 등 언론에 기재된 문화예술인 및 단체뿐만 아니라, 블랙리스트에 기재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문화예술인 및 단체까지 포괄해 규모가 크다. 소송비용은 1만 원 이상 자율모금의 방식으로 십시일반 모금되었고, 이는 법리검토 비용과 송달료 등 직접적 소송경비에 사용되었다. 피고는 국가를 비롯해 박근혜 전 대통령,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자연인과 법인을 아우른다. 소장은 이들이 블랙리스트를 이용해 문화예술인의 인격권과 예술,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침해했다며, 원고 1인당 100만 원씩 손해를 배상하라는 요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소송 원고는 전체 피해자 중 일부이며, 소송 과정에서 블랙리스트 전체 과정이 밝혀지며 더 많은 피해자가 추가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할 가능성이 열려있다. 또한, 피해 유형과 정도에 따라 청구액도 확장할 예정이다.

  시대에 한참 맞지 않는 블랙리스트에 대한 분노가 점점 발전되어 예술인들은 박근혜 정권의 정당성 자체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이에 예술계의 움직임은 블랙리스트에 항거하는 것뿐만이 아닌, 현 정권 퇴진을 목적으로 재결집하게 된다. 이 집단적 행동의 발로가 광화문에서 매주 열리는 공연 프로젝트, 광장극장 블랙텐트이다. 마침 블랙텐트 퍼포먼스 <우리가 헌법이다>가 광화문역 해치마당에서 진행돼, 찾아가 볼 수 있었다.

<우리가 헌법이다> 공연 현장에 가다

  광화문역 9번 출구 해치마당엔 304개의 구명조끼가 뉘어져 있었다. 각각의 구명조끼 아래엔 세월호 학생들의 이름과 반이 분필로 쓰여있었다. 그 바로 밑엔 그들을 추모하는 국화꽃이 한 송이씩 놓여있었다. 퍼포먼스가 시작되고 무용가들은 짜이지 않은 춤사위로 구명조끼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말 한마디 없이 어떤 무용수는 누워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표현하는가 하면, 직접 죽어 나가는 학생들을 표현하는 무용수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상황을 다시 옮겨온 듯한 무용이었다. 간헐적으로 큰 나팔에서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뱃고동 소리였다. 아무 말 없이, 소리라고는 아주 큰 뱃고동 소리뿐이던 해치마당의 분위기는 고고하고 웅장해졌다.

  구명조끼 퍼포먼스가 끝나고, 사람들이 설치된 사다리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들은 대한민국 헌법을 아주 크게 낭독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익숙한 조항들이 간헐적인 뱃고동 소리와 어우러져 사뭇 낯설어 보였다.

  퍼포먼스의 제목이자 주제인 ‘우리가 헌법이다’는 대한민국 주권이 그 누구도 아닌 일반 시민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다시금 알린 퍼포먼스였다. 또한, 그 기본적인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의 한복판에서, 이 조항들을 다시 한번 크게 소리치며 답답한 마음을 풀어보고자 하는 예술인들의 염원이 들어간 것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해치마당 계단에서 광장극장 블랙텐트의 운영위원, 임인자 씨를 만나 뵐 수 있었다. 그녀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블랙텐트의 설립취지, 현실적인 어려움, 블랙리스트에 대한 예술인들의 생각에 대해서 진솔하게 답했다.

블랙텐트의 설립취지가 궁금하다

  사실 예술계 안에서 블랙리스트나 후원금을 끊는 등의 간접적 검열이 자행되고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박근형 작가가 후원금 포기를 종용받은 일 등은 정치권으로 나가서 계속 문제 제기가 되고 있었다. 이런 저항과 문제 제기가 연극계만의 한정적인 주제였다면, 이는 블랙리스트 문건이 모두 사실이라는 한국일보의 증언 이후로 예술계 전체의 주제가 되었다. 그래서 전부터 치열하게 싸워오던 연극계의 많은 분과 힘을 합쳐 지난 1월 17일, 광화문에 블랙텐트를 설치했다.

블랙텐트가 십시일반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 같다

  당장 블랙텐트의 물리적 설치만 하더라도 광화문 텐트촌에 있던 해고노동자들이 함께 도와줬다. 예술인들은 전부터도 사회적 약자들을 도우는 등, 세상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일을 많이 했었다. 이제 그런 예술인들이 피해자로서 들어왔을 때, 연대했던 해고노동자분들이 같이 들어와서 작업을 도와주셨다. 블랙리스트라는 것은 사람들을 가르고 낙인 찍고 배제하는 폭력이다. 이것은 일을 많이 했음에도 노동조합에 조합원이었단 이유로 해고하는 세상의 부조리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인지 협력과 연대가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던 것 같다.

예술만이 현실에 낼 수 있는 특별한 효과가 있는가

  직접 구술 조사와 취재를 하고 이 자체를 하나의 연극으로 담는 참여 문학의 역사는 길다. 블랙텐트에서 했던 공연 중, <노란 봉투>라는 작품은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다큐 연극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해고와 파업,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가압류에 대한 얘기를 아주 현실적인 투로 다루었다. 배경이 된 공장은 기타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해고 노동자들은 해고가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는 해고노동자들을 연극에 참여하게 했다. 그렇게 그들이 연극인으로 참여한 <구일만 햄릿>이라는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깨진 기타가 햄릿을 미치게 만드는 착취와 노동이라는 은유로 작용한다. 불법해고와 햄릿을 병치시켜, 그들이 겪은 부조리한 세상을 예술로 승화시킨 결과물이다. 굳이 사회적 이슈가 아니더라도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세상을 만나고, 듣지 못한 소리를 듣고, 연극과 세상을 오고 가면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단선적인 소통이 아닌 양방향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결국 예술이다.

  예술인들이 사다리 위에 올라가 크게 외쳤듯, 헌법이 수호되는 대한민국에 대한 국민의 염원이 뜨겁다. 블랙리스트에 대해 법리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항거하는 집단적인 한국 예술계의 움직임은 그만큼 강력한 일반시민들의 내재한 힘을 상징할지도 모른다. 한국의 대통령이 헌정 이래로 유례없이 파면당했다. 앞으로 대한민국에 여러 정치 역학적 변화가 몰아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위정자들은 한국의 정치권력이 누구로부터 나오는지를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우리가 헌법이다> 퍼포먼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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