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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었더니 행복해졌다
[430호] 2017년 02월 28일 (화) 김은설 kaisttimes@gmail.com

지난 가을학기, 날이 흐렸던 어느 날 오전, 나는 ‘노브라’였다. 전날 밤, 밀린 빨래를 모조리 세탁기에 넣었었다. 건조기에 넣고 자겠다는 다짐을 하고, 아주 잠시 침대 위에 누워있던 것이 화근이었다.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어째서 다음 기억이 침대에서 눈을 뜨는 것인지, 다음 날 아침 머리를 싸매 봐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급하게 세탁기 뚜껑을 열었다. 마음대로 구겨진 빨래를 꺼내어 건조기에 넣었지만 이미 수업은 30분 후로 다가와 있었다. 낭패였다. 옷장, 서랍 아무리 열어봐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얼마 전 30% 세일할 때 샀던 꽃무늬 브래지어도, 그 전 언니에게 선물 받았던 하프 컵 브래지어도 모두 건조기에 들어있었다. 어쩔 수 없이 두꺼운 옷을 겹쳐 입고 수업을 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십여 년간 잊고 있었던 이 해방감을!

왜 진작 이런 해방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스스로가 한심했는데, 생각해보니 많은 이유가 있었다. 가장 먼저, 브래지어를 입지 않고 나갔던 날 느꼈던 시선을 들 수 있다. 실제로는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불안감을 느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 불안감은 그동안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 속에 사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여자 연예인이 올린 일상 사진에서 ‘노브라’ 인 것이 뉴스 기사로 나오고, SNS에서는 그에 대해 음담과 비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게 브래지어를 입지 않고 밖을 나서는 것은 곧 스스로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허락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와 대조적으로, 방에 혼자 있을 때도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일과를 마치고 방에 들어가서 브래지어를 벗을 때, 비로소 집에 온 느낌이 든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은 브래지어를 단 한 번이라도 입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온종일 가슴을 죄는 천에서 벗어나며 얻는 편안함이란! 대부분 브래지어에 들어있는 굵은 철사인 와이어가 유방의 모양을 잡아준다는 명분으로 갈비뼈 앞쪽을 누르고, 탄력성이 적은 천으로 흉곽 전체와 어깨를 당기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브래지어를 벗을 때에 비로소 무장해제를 한 것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이해할 수 있다.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브래지어의 착용은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브래지어는 상반신을 죄는 구조로 되어 있으므로 원활한 호흡과 혈액순환을 저해한다. 많은 여성은 보정 기능이 있는 브래지어를 입는데, 이는 압박능력이 한층 더하다. 군살을 밀어 올리고 가슴을 가운데로 모아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때문에, 피부에 자극이 가기도 하며 유선조직을 가운데로 무리하게 몰아넣어 고작 한 두시간 착용 만에 가슴에 통증을 주는 경우도 많다. 해답은 간단하다. 벗으면 된다.

많은 사람이 위의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브래지어를 일상적으로 착용한다.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특히 여성의 몸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의식하지 않기가 쉽지 않다. 올해의 트렌드로 떠오른 브라렛 – 와이어와 몰드형 캡이 없는 톱 스타일의 브래지어 – 을 광고할 때마저도 브래지어를 입지 않을 수는 없으니, 이왕이면 편한 것을 입으라는 광고문구를 사용한다. 브래지어를 당연히 착용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여성들이 스스로 브래지어 착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방해한다.

사실 그 날 느꼈던 해방감은 채 한 시간 반을 넘지 못했다. 수업이 끝난 후 점심시간에 건조기에서 브래지어를 꺼내어 입고 나서야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밖을 다닐 수 있었다. 지금도 푸시업 브래지어를 껴입고 앉아서 이런 글을 쓰고 있지만, 내 몸은 여전히 그때의 자유로움을 기억하고 있다. 여전히 브래지어는 사회의 필수 덕목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편안함을 찾는 나의 은밀한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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