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월 2일은 세계 습지의 날이다. 일반적으로 ‘습지’ 혹은 ‘늪’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부정적인 면이 많아 습지라고 하면 음침한 곳, 쓸모없는 땅, 모기와 벌레들이 들끓는 세상쯤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습지는 수많은 생물이 살아가는 생물상의 보고이며, 자연 댐, 천연 정화조 등 여러 가지 기능이 있다. 습지에 대해 알아보고, 습지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물이 머무르는 땅, 습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람사르 협약 제1조에서는 습지를 ‘자연적이거나 인공적인, 영구적 또는 일시적인, 정수, 유수, 담수, 기수, 혹은 염수에 상관없이 간조 시 수심 6m를 넘지 않는 곳을 포함하는 늪, 습원, 이탄지’로 규정하고 있다. 습지의 정의와 분류기준은 나라마다 다양하지만, 람사르 협약이 정한 기준을 따르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나라 습지보전법 제2조에서는 습지를 ‘담수, 기수 또는 염수가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 그 표면을 덮는 지역으로 내륙습지와 연안습지를 말한다’라고 정의한다. 내륙습지는 육지 또는 섬 안에 있는 호 또는 소와 하구 등의 지역을 말하고, 해안습지는 만조 시에 수위선과 지면이 접하는 경계선으로부터 간조 시에 수위선과 지면이 접하는 경계선까지의 지역을 가리킨다. 

사라져가는 습지
그동안 습지는 보호의 대상이기보다는 개발의 대상으로 생각되었다. 실제로, 1900년 이후 습지의 50%가량이 사라졌고, 쓰레기 매립장, 공단 건설 등으로 습지가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습지의 가치가 인류에게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며, 습지를 통해 인류가 얻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습지는 지구의 수많은 화학, 물리 및 유전인자의 원천, 저장소이자 변화의 산실로서 인류에게 매우 귀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

홍수 범람을 억제하고 물을 저장하는 자연 댐
습지의 토양은 단위 부피당 보유할 수 있는 물의 양이 많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배수 관개로가 복잡하며, 조직적이다. 따라서 우기나 홍수 때의 과다한 수분을 습지토양 속에 저장했다가 건기에 지속적으로 주위에 공급함으로써 수량을 조절한다. 또한, 이때 토양은 표면유출수를 효과적으로 흡수해 토양 침식을 방지한다. 낙동강변의 수많은 하천변 습지는 홍수 시 스펀지처럼 많은 물을 머금어 천천히 하류로 방출함으로써 수문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거대한 천연 정화조
습지에 서식하는 생물과 습지를 구성하는 토양 등은 주변으로부터 흘러나온 오염된 물에 포함된 질소, 인 등 여러 가지 물질을 흡수해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작용을 해 ‘자연의 콩팥’이라 불리기도 한다. 습지의 이러한 자정능력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에게 매우 중요하다. 습지의 수질정화 원리를 이용해 인공습지를 조성, 수질을 정화하려는 노력이 많이 시도되고 있으며 현재 상당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부들, 갈대 등이 수질정화 능력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구 생명의 신비와 질서를 간직하다
습지는 다양한 생물들이 사는 생물상의 보고이다. 습지의 얕은 물과 수초지대는 물고기들이 알을 낳고 어린 물고기들이 살기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새들에게도 쉬거나 먹이를 구할 수 있는 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육상동물들에게도 물의 공급과 쉴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된다. 즉, 습지는 육지와 물을 이어주는 중간단계의 생태적 환경특성을 가져 조류, 어류, 포유류, 양서류 등 각종 야생 동물에게 살 터전을 제공해 높은 종 다양성을 보인다.
또한, 습지 생태계의 생산력은 평균 3,000g/㎡ㆍyr 이상이다. 즉, 1제곱미터당 1년에 3kg만큼의 생물물질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열대우림 생태계와 맞먹는다. 1차 생산력의 연평균 생산율을 보면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 담수와 해수의 혼합작용이 일어나는 하구역이나 해조 숲-산호초 생태계의 생산력이 대륙붕이나 용승 해역보다 4배 정도 높고, 수심이 30~160m인 모래질 바닥의 외해역보다는 10배 이상의 높은 생산력을 보인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기후를 조절
습지는 지표면의 약 6%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식생이 풍부해 기후 조절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거시적으로는 대기 중으로의 탄소 유입을 차단해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흡수, 저장함으로써 양을 적절히 조절해준다. 지표 탄소의 약 40%가 습지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습지가 파괴되면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어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있다. 미시적 측면에서는 한 지역의 대기 온도 및 습도 등을 조절하는 국지적 기후조절기능을 한다.

경제적인 가치도 높아
습지가 제공하는 경제적 가치를 정확히 환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습지는 수자원 개발과 관리, 수질 정화에 따른 비용을 절감시켜 주고, 어업 및 수산업의 산실로서 전 세계 어획량의 2/3를 차지해 막대한 수입원이 된다. 그 외에도 지역에 따라서 농업, 목재 생산, 이탄과 식물자원 등의 에너지 자원, 야생동물 자원, 교통수단, 휴양 및 생태관광의 기회 제공 등으로 경제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

습지보전법 제정을 통한 습지 보존과 관리
이렇게 습지는 수문학적, 생태계적, 기후변화 조절 등에서 큰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습지 전반에 관한 조사, 연구는 물론 보존과 관리를 위한 자료가 부족해 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을 위한 정책과 사업의 시행에 어려움이 많다.

이에 1999년에 습지보전법에서 습지보전을 위한 수단으로서 습지의 현황, 특히 동식물 등의 생물적 자원과 토지이용실태 등 사회, 경제적 현황, 그리고 오염 현황 등에 대한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조사의 필요성을 명시하고 있다.

습지 보호를 위한 세계적 협약이 체결되다
습지의 중요성이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정부 및 비정부단체를 중심으로 습지보전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71년 이란의 람사르에서 체결된 람사르 협약이다. 람사르 협약은 환경오염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사라지는 철새들의 서식지와 습지의 다양한 생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또한, 매년 2월 2일을 세계 습지의 날로 지정해 습지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7년 7월 101번째로 람사르 협약에 가입했다. 가입국들은 국제적으로 중요하거나 독특한 습지를 지정해 람사르 습지라 하고 보전을 위해 노력한다. 우리나라는 강원도 인제군 대암산 용늪을 첫 번째 람사르 습지로 등재했고, 전국 곳곳에 우포늪, 보성 벌교 갯벌 등 14곳의 람사르 습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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