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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예술가의 냉소적 일상,
[428호] 2016년 11월 22일 (화) 김혜령 기자 alastina@kaist.ac.kr
   
 

 

예술가는 사람들이 흘려버리기 쉬운 일상적인 것에서 흔히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데이비드 슈리글리는 그 아이디어들을 단 한 자루 펜으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Lose Your Mind>라는 주제로 열린 개인전은 그의 개성 있는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펜 한 자루로 세상을 말하는 작가

사람들은 흔히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거나 생각이 떠오를 때 일기를 쓴다. 데이비드 슈리글리에게 그림은 일기장 같은 존재였다. 그는 평소에 떠오르는 생각을 일기 대신 그림으로 기록했다. 하루에 그림을 20장 이상 그릴만큼 늘 새로운 아이디어로 가득한 그는, 생활 속 소재에 위트 있는 글귀를 넣어 생생함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의 스케치에는 주로 사람과 동물이 등장한다. 특별한 소재는 아니지만, 사물과 동물들의 속성을 끌어내 시사점을 부여한다. 그림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주로 세상에 대한 비판과, 일상에서 공감할 수 있는 생각이 주요 주제다. 여러 재료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그저 흰 종이에 검정 펜으로 그린 그의 작품은, 어떤 화려한 예술작품보다 빛난다.

그의 스케치에는 글귀를 지우거나 수정한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슈리글리는 사람들이 수정하기 전의 단어가 어떤 단어였는지를 추측하게 함으로써 이중적인 의미를 갖도록 의도한다. 이처럼 슈리글리의 작품에는 아이러니함, 즉 모순이 많이 들어 가 있다. 이중적 의미의 어구나 반어법을 이용한 말장난으로 세상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스케치들은 그의 센스를 보여준다.

 

죽음에서 새 생명을 발견하다

그는 다양한 재료와 방법으로 설치미술에도 도전했다. 작품 <In-sects>는 우리가 관심 두지 않는 작은 세상을 구현했는데, 곤충들의 무리처럼 보인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고리, 녹슨 쇳덩어리, 고철 조각 등의 고물을 모아 특정 모양으로 재구성했다. 쓸모가 없어서 버려지고, 생명을 잃은 것들이 새 가치로 재탄생한 것이다.

작품 <Ostrich>는 머리가 없는 타조 박제다. 왜 머리가 없느냐는 물음에 그는 “그냥 없다”라고 대답한다. 이처럼 슈리글리는 자신의 작품을 관람객의 상상으로 맡겨버리거나 관람객의 가치관을 통해 해석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는 강아지를 기른 뒤부터는 박제 활동을 멈추었다고 하는데, 동물이 좋아진 후로는 그들이 세상을 떠난 다음의 시간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슈리글리는 죽어 있는 것들을 생동감 있게 구현함으로써 그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목소리를 부여한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예술품

슈리글리의 전시는 다른 전시에서는 보지 못하는 신선한 관점에서 바라본 작품이 많이 등장한다. 작품 <The Spectre>는 작품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작품을 받쳤던 받침대만 남아있다. 그리고 작품을 둘러싼 벽에는 그림 수십 점이 붙어있다. 이 그림은 모두 다른 사람이 그린 것인데, 이 그림들을 보고 관객들은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원래 있었던 작품을 추측할 수 있다.

관람객의 머릿속에는 각자 다른 형태의 작품이 존재할 것이다. 관람객들은 이런 서로 다른 관점을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통합하고, 상상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을 얻는다. 슈리글리는 이런 경험을 이용해 관람객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소통한다.

 

짧은 영상으로 깊은 여운을 남기다

슈리글리는 짧은 애니메이션도 제작했다. 그의 애니메이션은, 배경음악과 색 없이 간단한 드로잉만으로 표현해, 무미건조하고 지루할 법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작품 <The Artist>는 화가가 한 여성의 모습을 똑같이 그린다. 실제 얼굴은 울상이지만, 마지막에 입을 그려 넣으며 웃는 얼굴로 만들어 버리고 자리를 떠나며 끝난다. 이 작품은 예술가들이 세상을 그저 아름답게 표현하기만 하지는 않는지, 미화하고 과장하지는 않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작품 <Ones>에서는 컵 안의 주사위를 수없이 다시 던져보아도 항상 1의 눈이 나온다. 관람객들은 이를 보고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생각도 하고, 어떤 말을 해도 변하지 않는 정부 체제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의 애니메이션은 짧지만, 진한 여운을 남긴다.

 

관람객들은 슈리글리 특유의 냉소주의적인 영국식 유머를 즐기며 가볍게 웃고, 공감한다. 그는 예술의 대가보다는 감각 있는 현대적인 작가로 앨범아트, 뮤직비디오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전시는 개인전이라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많은 스케치를 보고 해석하다 보면 훌쩍 시간이 지나있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작품에 설명이 적혀 있지 않아 답답한 느낌이 있지만, 오히려 설명이 없기에 나름의 해석을 해보면서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의 개인전에서 작품을 보며 지루한 일상에서 재미를 찾고 사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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