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말에서 ‘아름’이라는 말은 ‘나, 개인’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아름답다’라는 말은 ‘나답다’, ‘그 사람답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이 보기에 개개인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각자에게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스스로 아름답다고 자신 있게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한 인간으로서의 내 삶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더 많지 않았나 싶다. 겨우 몇 년 전인 고등학교 때만 생각해봐도, 나는 스스로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도 모른 채 당장 해야 하는 일에만 매달려 살았었다. 철없는 어린 마음에, 공부하는 것이 벼슬도 아닌데, 부모님께 예민하게 굴기도 했었다.
과학고등학교의 연장선에서, KAISTian으로서의 나는, 공대의 프레임에 갇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다고 때로 아쉬워했던 적이 있었다. 또한, 여자로서 남자가 많은 사회에서 가끔 소외감이 들 때도 있었다. 그때의 내 생각이 틀렸던 것은 아니지만, 주변을 둘러보며 긍정적인 점들에 감사하고, 불평할 시간에 나에 대해서도 더 깊게 생각해보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실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별로 외로움을 타지 않는 성향인 줄 알았다. 소위 말해 혼자 잘 노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깨달은 점은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욱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싫어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우선 내 마음을 잘 읽고 솔직해지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쪽으로 계속 고민하다 보니 나 자신에 관해서도 더 잘 알게 됐고,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행복을 최우선 순위로 두게 되었다. 내가 이기주의자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긍정적인 감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똑같이 시험공부를 하더라도, 이것은 내가 꿈을 향해 나아가는 디딤돌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었다.
나의 긍정적인 점들에 집중하면서,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KAIST 입학 직후만 해도 혼자 놀아도 편한 줄 알았었던 내가, 이제는 기숙사에 박혀 있었던 시간을 줄이고, 동아리 사람들을 비롯한 여러 친구와 우정을 쌓으며 더 큰 행복을 느낀다. 나는 바로 이것이 나의 ‘나다움’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시끄럽게 수다를 떨고, 영화를 보러 다니고, 같이 밥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나다운 것이다. 여담이지만, 한 사람의 연인으로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과정, 내가 세상에 자리 잡게 해준 부모님께 감사드리는 것 또한 내 행복의 큰 근원인 것 같다.
이런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아름관은 ‘아름’이 없어서 아름관이고, 사랑관, 나눔관은 각각 ‘사랑’과 ‘나눔’이 없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우스갯소리지만, 실제로 ‘아름’이 꽉 찬 삶을 일구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도 나는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사랑하며, 나다운 삶을 살아가려 노력할 것이다. 나다움을 무기로 주위 사람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아름다운 밤에, 이뤄지길 바라는 주문처럼 외쳐본다. “나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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