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에서 의미를 찾은 예술가

 

올해는 백남준 작가 서거 10주년이다. 전세계적으로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로 알려진 그는,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사용해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표현해 냈다. 비디오 예술이라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 한국의 예술가 백남준, 그의 예술세계를 따라가보자.

 

비디오예술과 백남준

비디오 예술이란 텔레비전을 매체로 하는 예술활동이다. 텔레비전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거나, 배치하여 특정한 의미를 나타내는 모든 활동을 비디오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테이프 영상도 비디오 예술이 될 수 있다.

텔레비전은 붓이나 물감, 망치와 끌과는 매우 다른 도구다.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예술로 끌어들인 백남준은 이러한 텔레비전의 독특한 속성을 이용해 다양한 예술활동을 펼쳤다.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관객에 의해 변화되는 텔레비전을 만드는가 하면, 실제 생물과 그것을 실시간으로 촬영한 영상을 같이 놓아 관객이 시간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또한,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주변의 대상과 텔레비전을 이용한 예술을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우연성, 비결정성, 융합성이란 속성은 그의 작품 속에서 계속해서 나타난다. 그의 예술은 작품 자체를 중요시한 전통적인 예술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관객의 참여로 예술을 완성하다

백남준은 관객이 작품에 참여해 만드는 우연성을 아름답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완성된 작품 자체가 아닌 관객으로 인해 변화하는 작품이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생각이 처음으로 표현된 작품은, 1963년 백남준의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참여 TV Ⅰ>이었다. <참여 TV Ⅰ>은 관객이 확성기에 말을 하면 텔레비전에 빛이 나는 작품이었다. 처음으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 작품이었지만 단순한 형태가 아쉬웠던 백남준은 이후 이를 발전시켜 <참여 TV Ⅱ>를 선보인다. <참여 TV Ⅱ>는 컬러텔레비전의 중앙에 선의 뭉치가 나타나는데, 누군가 소리를 내면 음향의 높낮이에 따라 선들이 움직인다. 반복되지도, 예측되지도 않는 선들의 움직임을 통해 백남준은 개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또 다른 관객 참여 작품으로는 1965년에 뉴욕 전시회에서 선보여진 <자석 TV>가 있다. <자석 TV>는 관객이 텔레비전에 매달아 놓은 자석을 움직이면 화면에 추상적이고 아름다운 패턴이 변화되어 나타나는 작품이었다.

<자석 TV>는 백남준이 처음으로 성공했다고 평가한 작품이었다. 이전의 백남준의 작품은 기술적인 이해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었지만, <자석 TV>의 경우는 보기만 해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평가들은 <자석 TV>를 보며,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단순한 기계 조작이 아름다운 영상을 불러온다는 것에 놀라움을 표했다. 백남준은 이런 관객 참여 작품을 통해 가서 보기만 하는 일방적인 예술이 아닌, 임의로 조작하고 소통할 수 있는 쌍방향 예술을 선보였다.

 

비디오로 자연을 선보이다

백남준은 발달하는 기술을 보면서 미래에는 기계로 이루어진 사회가 올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사회 속에서도 자연의 중요성을 잃지 않았으면 했던 그는, 비디오로 자연을 표현하거나, 자연과 비디오를 융합한 작품을 선보인다. 자연에 관한 첫 작품은 1974년에 선보여진 <TV 바다>였다. <TV 바다>는 컬러텔레비전 17대와 흑백텔레비전 3대가 화면을 위로 하여 규칙 없이 바닥에 놓여 있는 형태였다. 바닥에서 화면이 전환되며 빛을 내는 텔레비전들은 전자의 파도를 보여주었고, 이 파도들은 모여서 바다를 형성했다. 이후 백남준은 <TV 바다>를 발전시켜 <TV 정원>을 내놓았다. <TV 정원>은 어두운 공간 안에 열대식물 100여 개를 심고, 그 사이에 컬러텔레비전 28대를 놓은 작품이었다. 텔레비전 화면은 식물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화면이 변하며 식물에 비추는 불빛은 원시림의 꽃들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계속해서 바뀌는 텔레비전 화면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재현해 보였다. 백남준은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텔레비전과 식물을 다른 형태로 상상해보기를 원했다.

자연을 표현한 다른 작품 중 하나로 <비디오 물고기>가 있다. <비디오 물고기>는 텔레비전마다 물고기가 들어 있는 수족관이 텔레비전 앞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시회의 큐레이터인 핸하르트는 작품을 보고 “모니터는 수족관이 되고 수족관은 모니터가 된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수족관을 통해 보이는 텔레비전은 마치 수족관에 담겨 하나가 된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물고기의 살아있는 삶과 비디오에 갇혀 있는 시간이 대비되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백남준의 자연에 관한 작품들은 텔레비전과 자연을 조화시키거나 대비시키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대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인간을 통해 예술로 승화된 기술

텔레비전을 이용한 자신의 작품이 기술의 연장선이 아닌 예술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던 백남준은, 인간과 텔레비전을 융합해 자기 생각을 실현하기도 했다. 1964년 뉴욕에서 첼리스트인 샬럿 무어만의 연주를 들은 그는, 그녀의 진지한 음악성이면 자신의 작품이 더욱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후 그는 그녀와 함께 작품활동을 하기로 하고, 그녀에게 자신의 작품을 적용하기 시작한다. 그 첫 작품이 <TV 브라>다.

<살아 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퍼포먼스에서 샬롯 무어만은 <TV 브라>를 착용한 채 첼로를 연주했다. 백남준은 이 퍼포먼스에서 관객들이 성적인 것이 아닌, 텔레비전을 보며 기술이 인간을 통해 어떻게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지 상상하기를 바랐다. 그의 이런 생각은 작품 <TV 침대>를 통해 다시 한 번 보여졌다. 그는 샬럿 무어만의 수술이 있고 난 뒤, 그녀가 앉아서 공연할 수 있도록 <TV 침대>를 제작한다. 텔레비전 10대로 이루어진 <TV 침대>는 텔레비전이 샬럿 무어만을 위해 작품으로 만들어지면서 예술로서 승화된 것이다.

인간과 TV의 결합은 고급 예술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사용됐다. 1972년에 발표된 <TV 페니스>는 남성의 음부에 설치되어, 남성이 <다비드> 동상의 자세를 취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백남준은 이 퍼포먼스를 통해 <다비드>라는 고급 예술과 텔레비전이라는 대중오락을 충돌시키면서 전통적인 예술에 대항하는 동시에, 그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이렇듯 인간에게 적용되거나, 인간을 위해 기술을 예술로 승화시킨 백남준의 예술 세계는 백남준의 예술 철학을 표현하는 동시에, 텔레비전 기술이 어떻게 예술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백남준의 작품을 보면, 텔레비전이 예술로 받아들여지도록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의미를 가진 모든 행위와 작품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의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텔레비전을 변형하거나 다른 대상과 융합했다. 그 결과 비디오 예술은 현대 예술의 한 분야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고, 그의 예술 철학은 서거 10주년이 지난 지금도 작품에 남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사진 제공 | 백남준 아트센터

참고전시 | 백남준전 <점-선-면-TV>, 백남준 아트센터

참고문헌 | <백남준 비디오 예술의 미학과 기술을 찾아서>, 에디트 데커
             <청년, 백남준: 초기 예술의융합 미학>, 임산

 

 백남준 서거 10주년 기획전 <뉴 게임플레이>

 장소 | 백남준 아트센터

 기간 | 2016.7.20. ~ 2017.2.19.

 요금 | 4,000원

 시간 | 10:00 ~ 18:00

 문의 | 031)201-8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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