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실패한 후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10kg이나 되는 메모지를 큰 배낭에 꽉 채워 다니는 남자가 있다. 의대 교수와 컴퓨터 백신 소프트웨어 개발자, CEO, 대학교수 등 여러 직업을 거쳐오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우리 학교 안철수 석좌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KAIST, 대덕을 만나다’의 마지막 멘토는 우리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을 가르치고 있는 안철수 교수다

안철수 교수는 자신을 찾아온 세 명의 멘티들에게 “멘토라는 개념은 한국말로 번역했을 때 선생님과 조언자라는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요. 선생님과 조언자라는 개념은 뜻이 다르죠. 오늘 제가 하는 이야기가 학생들에게 조언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운을 띄웠다. 그는 “누군가의 조언을 얻을 때 너무 과도한 기대를 하고 듣다 보면 실망하기도 쉬워요. 괴로울 때야 남이 결정해주면 편하지만 안 좋은 결과가 나오게 되면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쉽습니다. 어떤 일에서든 선택을 함에 있어 나 대신 결정을 내릴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조언한다. 결국, 중요한 결정은 자기 자신만이 내릴 수 있고, 아무리 연배가 차이가 나고 저명한 사람이 한 말일지라도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참고사항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 멘토의 말에 이어 가장 먼저 이다호라 멘티가 “전공을 살려 대학원을 가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기술경영 대학원 쪽으로 가서 경영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을까요. 진로가 가장 큰 고민입니다”라고 말했다.
한 멘티의 고민에 대해 안 멘토는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의 구분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안 멘토는 “마이클 조던이 야구를 한다고 마이너리그에 들어갔다가 도저히 가망이 없어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도 하고 싶은 것과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잘 몰랐던 사례죠. 세상에는 수만 가지 일이 있는데 그중에서 자기가 경험해 볼 수 있는 일은 10가지도 안 됩니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자기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이건 나에게 안 맞는 일’이라고 규정지어 놓는 경우가 많아요”라고 설명했다.


안 멘토는 멘티들에게 인생을 살다보면 이전에 했던 많은 경험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는 “KAIST 학생들은 1분 1초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제 제자 중 한 명은 전공이 적성에 안 맞는다고 오랜 시간 동안 고민했어요. 그 학생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해보고 적성에 안 맞는다는 발견을 하게 되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강물이 얼마나 빠르게 흐르는지 알려면 강둑에서 강물을 쳐다보는 것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양말을 벗고 강물에 뛰어들어 발로 직접 느껴봐야 합니다”라고 경험의 가치를 강조했다. 또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자기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인생은 그런 것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안하고 안락하고 안정된 것보다 잘할 수 있고, 재미있고, 그 안에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안 멘토가 직업을 바꾼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간을 낭비하면 어떻습니까. 나중에 어떻게든 자기 인생에 교훈으로 남습니다. 나쁜 결정이든 좋은 결정이든 말이죠. 100% 좋은 선택이 있을 수는 없죠. 하다 보면 실패를 할 수도 있는 거고요. 미리미리 계산해서 살다 보면 오히려 자기 인생이 좁아집니다. 일단 시도해보세요”


안 멘토는 실패가 주는 교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말을 이었다. “사람이란 실패했을 때 많은 것을 느끼죠. 그런데 그것을 자꾸 잊어버립니다. 또 나태해지죠. 전 이것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를 많이 했어요. 실패해서 얻은 교훈이라든지 해야 할 일이라든지, 글을 쓰고 싶은 주제를 쉼 없이 메모했어요”라고 말한다. 그 메모지를 버리지 않고 가방에 넣어서 다녔는데, 어느 순간 보니 10kg 배낭에 꽉 찼다고 한다.


사람들은 안 멘토에게 메모지를 왜 매고 다니느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안 멘토는 “생각해보니까 베낭에 들어 있는 메모지의 무게는 제 고민의 무게이기도 하더라고요. 내 고민을 직접 매고 다닌다. 이거 의미가 있는 행동 아닌가요? 사람들이 일할 때 책상을 치워야겠다고 생각하잖아요. 책상을 치워야 일이 된다고 생각을 하니까요. 제 머리가 책상과 같아요. 무언가 많이 쌓이면 어지러워 견딜 수가 없죠” 그 때 마다 그는  머리에 든 생각을 메모하고, 메모를 모아서 책을 쓴다고 한다. 그렇면 머리 속이 말끔히 정리 된다고 한다.


그는 무조건적인 낙관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말한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때 하노이 수용소에 수감된 미국 스톡데일 장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죠” 8년 동안의 포로 생활을 견뎌내고 돌아온 스톡데일 장군에게 포로로 잡힌 사람 중 어떤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죽어갔는지 물었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낙관주의자’들이 가장 먼저 죽어갔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때면 나갈 수 있을 거야’라고 기대하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부활절이 되면 괜찮아 지겠지’라며 또 다른 기대를 하고 있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연이어 실망으로 바뀌자 결국에는 낙담해서 자살하거나 시름시름 앓다 죽어갔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죽지 않은 사람들 대부분은 현실주의자들로 수용소를 나갈 수 있다는 마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비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 원동력이었다고 스톡데일 장군은 말했다고 한다.


안 멘토는 막연하게 낙관하기보다는 눈앞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믿음을 잃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미래가 불투명한 처음 3~4년 동안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하는 투자는 100% 성공한다는 믿음과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어려움을 견디려면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있어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람을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서 그것이 소질에 안 맞을 수도 있다고 안 멘토는 말했다. “저 역시 직업을 여러 번 바꿨죠. 그래도 도중에 그만둔 적은 없어요. 사람들이 흔들리는 이유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이게 맞는 길인지 아닌지 망설이기 때문입니다. 인생도 사업도 마찬가지죠. 누구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택이 중요한 것이죠.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심각하게 고민을 해보면 자기 스스로 깨달을 수 있어요. 그런 시점이 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선택은 자기 자신만이 풀 수 있는 문제예요”


안 멘토에게 성공이란 무엇이냐는 멘티들의 질문에 안 멘토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성공의 정의, 즉 돈을 많이 벌고 명예가 있다는 것은 진실한 성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생각하기에 성공했다 싶으면 성공을 한 것이고, 남들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만족하지 못하면 실패한 삶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살면서 내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와 존재했을 때의 차이가 없으면 인생 사는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왕에 살아있으니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죠. 책으로 무언가를 남겼다든지, 사람들의 생각이 나 때문에 변화했든지 그런 것들 말이죠. 그게 저한테는 성공의 의미예요” 이에 덧붙여 안 멘토는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이 다르지만, 인생에서 성공이 무엇이냐 질문했을 때엔 스스로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그래야 이 세상 떠날 때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지 아닐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멘티들과 얘기를 나누는 내내 특유의 온화한 웃음을 잃지 않았던 안철수 멘토. 그의 인생은 그가 정의한 ‘성공’을 위해 오늘도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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