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2일 16시 53분,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의 섬나라 아이티에서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했다. 200여 년 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수천 명이 사망하고 많은 난민이 발생했다. 지난 2월 9일에는 경기도 시흥에서 규모 3.0의 지진이 발생했다.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 근처에서 지진이 발생하므로 이젠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진과 내진설계와의 관계, 내진설계의 원리와 종류에 대해 알아보고 내진설계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지반과 구조물에 따라 다른 피해 양상을 보인다
건물의 피해 양상은 지반과 구조물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1985년 멕시코 지진은 지진파가 연약지반인 멕시코시티 지역에서 증폭되면서 중, 고층건물에 큰 피해를 주었다. 1995년 일본 고베 지진에서는 최신 내진설계기준에 따라 설계했던 고층건물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저층건물이나 1~2층의 목조건물에서 큰 피해가 났다. 1999년 터키 이즈미티시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 피해는 부실 공사가 주 원인이었다.

높은 건물이든 낮은 건물이든 내진설계 필요해
구조물의 모양과 층별 중량이 같은 경우 층수가 증가할수록 지진에 저항하는 힘이 감소한다. 건물의 고유진동 주기는 이 힘의 제곱근에 반비례하므로 건물을 고층화할수록 고유진동 주기가 길어지게 되고, 저층 건물은 상대적으로 진동 주기가 짧다. 주기가 짧을수록 주파수가 높으므로, 저층 건물은 높은 주파수 영역, 고층건물은 낮은 주파수 영역의 지진에 공명현상이 일어나 큰 피해를 받는다. 따라서, 주파수가 높은 지진파가 발생하면 낮은 건물들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그러므로 높은 건물이든 낮은 건물이든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에서는 내진설계가 꼭 필요하다.

내진설계는 구조물의 안전을 도모
지진이 발생하면 지반이 흔들리고, 관성 때문에 그 위의 구조물이 힘을 받게 된다. 따라서 구조물을 받치고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는 뼈대가 여러 방향으로 힘을 받게 된다. 내진설계란 이런 진동의 영향을 덜 받는 안전한 건물을 짓기 위해 적용하는 설계방식을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큰 지진이 발생해도 구조물이 전혀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설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 따라서 건물을 지을 때에는 경제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고려해 내진설계를 해야 한다.

내진설계 비용은 여러 조건을 고려 후 결정
강도 높은 지진을 견디기 위한 내진설계를 위해서는 비용이 커지므로 내진설계 계획시 많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내진설계에서는 경제성을 고려해 일부 구조물의 유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유연한 구조물은 작은 힘에도 큰 변형을 일으키는 약점이 있어 작은 지진에 의해서도 유리창이 깨어지는 등의 비구조재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구조물이 강한 힘에도 부서지지 않고 늘어나는 연성을 가지도록 해 구조물이 받게 되는 에너지를 분산하는 것이다. 그 외, 예상하는 지진의 크기와 빈도를 고려한 지진 위험도와 건물의 중요도에 따라 내진설계 정도를 정한다.

구조물의 경제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내진설계는 다음과 같은 기본 원칙을 따른다. 첫째, 자주 발생할 수 있는 작은 지진에 의해서는 구조물이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 내진설계 비용을 많이 증가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주 발생하는 지진에 의한 피해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건물의 수명 동안 한두 번 발생할 수 있는 중간 정도 규모의 지진에 대해서는 건축 마감재 균열 등 뼈대가 아닌 부분에 대한 파손은 허용하지만, 구조물의 뼈대에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약간의 보수를 통해 구조물의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한다. 셋째, 건물의 수명 동안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큰 지진에 대해서는 뼈대의 피해를 허용하지만, 건물이 붕괴하는 것은 방지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인명의 피해는 거의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또한, 내진설계 비용이 지진이 발생했을 때 소요되는 보수경비를 초과하지 않도록 한다.

철판이나 고무를 건물과 땅 사이에
내진설계 방법으로 지반과 건물을 떨어뜨려 놓아 지반이 전달하는 에너지를 덜 받게 하는 방법이 있다. 지진은 단층의 활동으로 생성된 에너지가 지층을 통해 파동으로 전달되어 지반이 흔들리는 것이다. 그 중 지표면에 대해 수평 방향의 파동이 건물의 하단을 흔들리게 하고, 상부에 관성력을 가하며 건물이 관성력을 견디지 못하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진파와 건물을 격리시키는 것이 지진격리장치의 기본적인 아이디어이다.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하는 격리장치는 중앙에 금속봉을 삽입하고 그 주위로 철판과 고무를 번갈아 겹쳐 쌓는 적층식 구조 지진 격리장치이다. 이는 수직 방향으로 철판이 건물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튼튼하고, 수평 방향으로는 고무가 상당히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평상시에는 구조물을 지탱하고 있지만, 지진이 발생하게 되면 수평 방향으로 변형이 발생해 건물과 지반을 격리시켜 지진파로 인한 피해를 줄인다.

에너지 소산 장치로 진동에너지를 흡수
구조물에 발생하는 진동에너지를 흡수, 분산시키는 에너지 소산 장치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자동차의 충격과 진동을 흡수하는 오일 댐퍼와 비슷한 원리로, 구조물에 대형 감쇠기를 설치해 진동을 흡수시켜 건물을 보호하는 것이다. 재료가 변하는 소성을 이용해 에너지를 분산시키기도 하며, 진동을 상쇄하는 반대의 힘을 만드는 새로운 진동 구조계를 건물에 설치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발달한 센서 기술과 컴퓨터 기술 덕분에 건물이 사람처럼 외부변화에 스스로 적응해 진동에 대처하는 능동 제어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6층 이상 건물은 내진설계 의무화
우리나라는 1988년이 되어서야 건물의 지진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내진설계기준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는 6층 이상의 건물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실제 지진이 발생하면 주거용 건물과 같은 저층 건물에서 대규모 피해가 예상된다. 내진설계기준 제정 당시 적용 대상 건물의 층수를 6층 이상으로만 규정했던 것은 우리나라의 저층건물이 지진에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국내에 처음으로 내진설계 시공 의무화에 대해 반박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건물을 우선으로 적용하기 위한 조치였을 뿐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저층 건물도 단주기 영역에서 큰 피해를 받을 수 있으므로, 최근에 시공되는 건물에는 층수에 상관없이 대부분 내진설계를 도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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