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식
인문사회과학부 겸직교수

  여러 해 전 이야기이지만,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교내 서점에서 많이 팔리는 미국 지도가 있다. 주로 미국 곳곳의 주요 대학들을 표시해 놓은 것인데, 서부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쯤에다 아치와 기와지붕이 돋보이는 예쁜 집을 큼지막하게 그려놓고 Leland Jr. Stanford University라고 이름을 달았다. 그리고는 동쪽으로 가서 보스턴 근처 어디에다 아무리 봐도 강아지집 같은 조그만 건물을 하나 그려놓고는 Harvard University라고 표시를 했다. 그리고 바로 이름 밑에(a.k.a. Stanford in the East)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붙였다. 신입생들이 집에 있는 가족에게 부치려고 이 희한한 지도를 사면서 낄낄대던 모습이 생각난다.

  80년대 중반이었는데 U.S. News & World Report 지에서 매년 미국 내 각 대학 학사과정을 평가해서 그 순위를 발표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학마다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해마다 하버드, 스탠퍼드, MIT 등이 맨 윗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는데 그 해에는 스탠퍼드가 1위를 차지하고 하버드가 두세 자리 아래로 내려갔다. 그때 U.S. News 지의 평가 방식이 특이해서 미국 내 대학교 총학장 600명에게 설문지를 보내 각 평가 항목마다 최우수 학교 다섯을 뽑도록 해서 이를 합산해 순위를 정하고 있었다. 다소 불합리한 면이 있지만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식이었던 것 같다.

  스탠퍼드에서는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Stanford Daily가 매일 발행되고 월간으로 Stanford Observer가 나와 후자는 졸업생들에게도 보내주고 있었다. 그곳에 1년 가 있는 동안 매일 묶음으로 강의실 현관이나 복도에 내 던져 배포하는 학교신문을 집어 학교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들여다보
았는데 그중에서도 센터폴드의 오피니언 페이지에 실리는 학생들의 Letters to the Editor를 흥미롭게 읽었다. U.S. News 지의 대학순위 발표가 나오고 며칠 후 편지란에 특히 눈길을 끄는 글이 하나 올라왔다. 이름이 한국계 학생 같아 보이는 두사람이 함께 써 보낸 것이었는데 그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지구를 선회하는 위성 다섯을 꼽으라고 했을 때 달을 빼놓을 수 있을까. 그런데 감히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이 이번 U.S. News 지의 설문에 응답한 대학 총학장들이다. 이들이 응답에서 하버드를 빼놓았고 그 결과로 스탠퍼드에 영예가 돌아갔다"
  놀랍게도 발신인들의 주소는 하버드대학교 기숙사였다. 그 다음 날 스탠퍼드 재학생의 위로의 글이 두어 개 올라왔고 누군가‘동부의 스탠퍼드’하버드 신문에 무어라고 편지를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

  필자는 작년 1월부터 KAIST에 나오면서 타임스와 Herald를 열심히 보고 있다. 격주로 발행되는 카이스트 타임스와 월간으로 나오는 The KAIST Herald, 그리고 계간 KAIST 비전이 각각 특색 있게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전해주어 학생이나 교직원이 자신의 제한된 공간에서 얻을 수 있는 제한된 양의 정보를 보충하고 KAIST라고 하는 큰 공동체의 흐름에 자신을 실어 나아갈 수 있게 하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이 신문들을 읽으면서 남들과 똑같은 학업의 부담 속에서 신문을 만드느라 취재를 구상하고, 자료를 모으고, 사람들을 만나고, 기사를 작성하고, 편집, 인쇄 과정을 챙기는 기자들과 편집진의 아름다운 정성에 항상 치하와 감사의 마음이 울어난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신문과 언론에서 일해온 사람의 버릇으로, 때때로 신문지면에서 무언가 아쉬움을 느끼고‘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됐으면 더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맨 먼저 느끼는 것은 카이스트 타임스는 제1면 즉 프런트 페이지를 좀 더‘미학적’으로 개선할 수 없을까 하는 것이다. KAIST는 내실을 중시하고 외화를 배격하는 학교이고 그래서 정문은 그냥 평범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고 넓은 캠퍼스의 건물들도 최근에 지은 두어 개를 제외하고는 편안하고 단순한 인상만을 던져주고 있으니 교내 신문도 특별히 모양을 낼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할지 모르나 좋은 내용을 더욱 멋있고 눈에 띄는 표지에 담아내는 것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더욱이 학교는 지금‘디자인’을 크게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다음으로, 이것은 앞서 꺼낸 스탠퍼드 교내신문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데, 신문제작에 독자들의 참여를 더욱 고취할 필요가 있다. 신입 학생들의 신선한 감상, 외국인 학생들이 진땀 흘려 작성한 인사말, 학내외 이슈들에 대한 다양한 견해, 때로는 교수들의 당부나 조언, 그리고 가능하면 타교생의 편지(포ㆍ카전을 치르고 난 후일담 같은 것)도 게재해서 오피니언 페이지를 활발한 피드백의 장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편집자가 개별적인 관계를 이용해 흥미로운 사안에 대해 투고하도록 권유해서 시동을 걸고 이에 대한 의견들이 오고 가면서 토론이 벌어지고 하면 독자들의 관심은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최근의 연차초과학생 문제도 불충분한 소통 때문에 꼬이게 된 일면이 있어 교내 신문이 크고 작은 문제에 관한 이해 확산에 일익을 담당하게 되면 이는 매우 좋은 일이다.

  기자들이나 신문제작에 참여하는 모든 분에게 바라는 것은 신문을 통해 캠퍼스에 더 많은 웃음과 기쁨을 전하도록 힘써달라는 것이다. 대학의 구성원은 충만한 생명력으로 생애의 가장 열정적인 시기를 사는 사람들인데 이들의 감성과 감정이 표출되는 모든 행사를 충실히 전함으로써 학교가 더욱 명랑하고 지성의 향기가 넘치는 곳이 되도록 하는데 신문이 한몫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사에 품격 있는 유머를 담아 학업 의 중압감을 떨어내도록 도와주면 더욱 좋겠다. 그리하여 신문이 우리 대학사회에서 윤활유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학 신문의 성격에 관해서는 만드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다 같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학사행정의 공보를 위한 관보나 노조의 소식지 같은 성격은 당치않은 것이고 학교신문만의 고유한 역할과 체질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신문은 학교 당국과 학생들의 머리를 이어주는 지성적 다리가 되어 의사소통에서 top-down과 bottom-up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신문의 기자는 그 신분은 학생이나 기사 작성이나 편집에 임하여서는 저널리스트의 본분을 견지하여 자신의 의견과 입장을 감추고 철저히 객관성을 추구해야 한다. 일반 사회의 신문을 보면 기자가 외견상으로 객관적 형식을 취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려고 언어의 마술을 구사하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 학교신문의 기자는 이러한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대로 신문은 다양한 생각들을 따로 의견의 광장에 모아 함께 주고받으며 나누게 하면 된다.

  끝으로 한마디. 카이스트 타임스 기사를 읽으면‘우리 학교’라는 표기가 자주 나온다. 학생 기자들의 학교에 대한 친근감과 애교심이 묻어나는 표현이겠지만 성인인 대학생이 만드는 신문의 어휘로서는 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든다. 학생들이 자주 찾는 음식문화나 다른 분야의 명소에 대한 소개는 신문에서 이미 많이 취급했겠지만 새로 온 학생들에게 계속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좋을 듯하고, 또 총장, 부총장 그리고 주요 보직 교수들과의 인터뷰를 정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신문의 온라인 판을 만드는 것도 권하고 싶다.

  KAIST에 몸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것은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며 일한다는 자부심일 것이다. 나처럼 반쯤은 학교 밖에 걸쳐 놓고 있는 사람은 이 학교가 얼마나 귀한 곳이고 여기에 속한 분들이 얼마나 행복한 존재들인지를 더욱 절실히 깨닫는다. 이러한 학교의 위상에 맞는 신문을 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기자들의 헌신적 노력에 격려를 보내며 모든 학생들과 교직원 여러분의 참여와 관심 속에 카이스트 타임스가 많은 대학신문의 모델이 되어주기를 충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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