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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협회, 장르 독립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다
[425호] 2016년 09월 27일 (화) 김혜령 기자 alastina@kaist.ac.kr

 

   
 

그림책은 많은 이들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남았다. 당시 꿈과 희망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림책이 언젠가부터, 여러 연령대에서 향유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책에 매료된 이들이 늘어난 만큼 그림책 작가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지는 않았다. 이에 열악한 창작환경 개선하고, 그림책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여러 그림책 제작 관계자, 연구자, 교육자가 힘을 합쳐 그림책협회가 탄생했다. 그림책협회 회장 한성옥 작가의 도움을 받아 그림책협회에 대해 알아보았다.
 

많은 관심 속에서 탄생한 그림책협회

지난 6월 13일, 그림책협회가 발족했다. 그림책협회 초대 회장 한성옥 작가는 협회에서 제안하는 그림책의 정의를 ‘전달하려는 내용을 문자언어와 그림언어로 구성하고 페이지라는 물리적 구조 안에서 다양한 조합으로 담아낸 예술장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출판의 역사는 깊지만, 글과 그림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가 결합한 예술장르인 그림책이 출현한 것은 삼십여 년 전 안팎의 일이다. 스스로 그림책 작가라고 인식한 사람들이 나타나고, 대중이 그림책을 작가의 작품이라 받아들인 시기 역시 비슷하다. 서양과 비교하면 역사가 짧아서,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그림책을 어린 독자들만을 상대로 하는 매체로 인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간 우리나라의 그림책은 국내외 독자와 평단의 지지를 받으며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 그림책이 사랑받자, 그림책에 대한 처우 개선 요구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에 그림책을 만들고 연구하는 이들이 주축이 되어 그림책협회가 탄생했다. 그림책협회는 관련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그림책을 즐기는 일반 독자까지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단체다. 그림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자유롭게 정보를 교환하고,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다.

 

   
<그림책을 펼치다-한국 창작 그림책전>
사람들이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다

그림책협회는 회장 한 명과 부회장 두 명, 감사로 구성되어 있다. 사무국에는 정책, 기획, 연구, 조직관리, 홍보 분과가 있으며, 이사 21명이 있다. 그림책협회의 회원은 그림책 창작과 제작, 출판, 연구, 교육에 종사하며 그림책 관련 도서, 논문 등의 판권에 명시된 사람들인 정회원과, 그림책을 읽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인 일반 회원이 있다. 그 외에도 그림책 발전에 특별한 공로가 있어 협회에서 추대한 사람인 명예회원이 있다. 일반 회원은 협회 소식을 공유하며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도서관 사서, 그림책을 사랑하는 교사, 서점 관계자, 그림책을 읽어 주는 자원봉사자, 독서 모임의 회원 등 다양한 사람들을 일반회원으로 받고 있다. 그림책협회는 협회의 권익을 요구할 때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인원수라는 것을 절감했고, 초기 회원 수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그림책협회에서는 매달 이사회가 열려, 각 분과에서 협회원들의 유익을 위해 기획한 안건을 모은다. 현재는 신인 작가나 작가 지망생을 위한 내실 있는 행사와 세미나를 열 계획이다. 저작권 같은 중대한 사안에 대한 심포지엄과, 그림책을 통해 인간과 예술이 만나 사회적 동력을 생성해 내는 기획도 연구하고 있다.

 

세계에서 주목받는 우리나라 그림책

그림책협회의 주목표는 그림책이 독립된 예술장르로 인정받고, 그림책 창작에 있어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그림책들은 10여 년 전부터 볼로냐 아동도서전이 선정하는 ‘라가치상’과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선정 등 세계에서 그 가치를 주목받았다. 2015년에는 라가치 전 부문에 6권의 수상작을 내면서 창작성, 교육적 가치, 예술적 디자인에 있어 인정받기도 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수출되는 책 중 그림책의 비중도 높다.

현재는 작가들이 그림책의 내용과 형식의 다양성을 추구해 그림책의 표현 어법도 신선하게 변모하고 있으며, 자발적인 창작자 모임을 결성하고 있다. 또한, 전시를 통해 적극적으로 독자와 만나려 하고 있다.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성을 느끼다

하지만 정작 그림책의 사회적 기반은 열악하다. 문학이나 미술, 둘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독자적인 도서 분류 기호조차 없으며, 대학 도서관에서는 그림책이 따로 분류되어 있지 않아 그림책 항목으로 아예 도서 구매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림책이란 이름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어린이만을 위한 장르인 동화로 명명되고, 심지어 한국 공식 직업 분류표에 그림책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니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시스템에서 그림책을 위한 배려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만화가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 독자적인 장르로 설정된 것에 비하면,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한 그림책은 출판 산업의 변방에 놓여있다.

 

제도적 지원을 위한 법 개정안 요구

협회준비위원회는 협회를 준비하면서 모든 사회적 지위나 권익은 법령에 근거함을 깨닫고, 지난 19대 회기 중에 정진후 국회의원을 통해 출판진흥법 개정 법률안에 ‘그림책 산업의 육성 및 지원’을 추가하는 개정안 발의 요구를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제4조 7항 ‘만화산업의 육성·지원’에 이어 8항 ‘그림책산업의 육성·지원’을 추가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그림책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는 국회의원에게 이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준비 과정은 오히려 그림책의 사회적 현주소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성옥 회장은 이야기한다. 공식적 대표 조직이나 창구도 없는 상태로 공청회를 요청한 것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졌던 것이다. 한 회장은 공청회 날 회의실마다 각 협회가 지속해서 공청회를 열고 그들의 권익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소극적이던 태도의 반성과 함께 그림책협회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다고 말했다

결국 개정안 발의는 국회에서 계류되다가 회기가 끝나 폐기되었지만, 법령화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간과했던 많은 것들을 대면할 수 있었다. 개정 법률안 검토 결과를 보면, 그림책의 독립에 관한 공식적인 자료나 근거를 더 보완하라고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만화의 경우, 만화 진흥법이 제정되기 오래전부터 연구 자료와 논문, 작가들의 활동 기록을 축적하고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려 노력해 왔다. 이런 축적된 근거를 바탕으로 협회가 법령화를 추진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에 비해 그림책 분야는 미흡한 점이 아직 많다. 그림책협회는 법령화 준비 과정이 그림책의 정체성을 공유하기 위한 성장과 발전의 과정이라 여기며, 20대 국회에 다시 개정안 발의를 하려 준비하고 있다.

 

   
그림책 산업의 육성 및 지원을 추가하는 개정안 발의 요구를 위한 공청회
지난해 10월 14일 국회의원회관 제9 간담회의실에서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그림책을 제10 예술로 제안하다

그림책협회의 두 번째 목표는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그림책을 ‘제10 예술’로 정의하는 것이다. 예술을 발생 순서에 따라 아홉 갈래로 나눈 예술 분류법이 있다. 이는 프랑스에서 유래되어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는 분류법이다. 예를 들어 제1 예술은 연극이며, 제9 예술은 만화다. 그림책협회는 그림책이 여전히 아동 도서의 하위 장르로 취급받아 어린이 책이나 미술 판매대에 놓이는 등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그림책을 독립된 속성과 특성을 가진 제10 예술로 인정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림책협회 연구 분과에서는 그동안 흩어져 있던 기본 자료뿐만 아니라 발표된 논문 목록을 정리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듦과 동시에 이를 공유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 밖에도 그림책협회는 법률 자문 변호인을 두고 저작권 등 창작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그림책협회는 그림책이 독립된 장르로 인정받고, 창작과 연구를 위해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그림책을 향유하는 이들의 자신과 타인을 대하는 시선이 평화로워지는 것을 꿈꾼다. 이를 위한 진흥법 제정이 한 번 실패한 후, 협회는 더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뚜렷한 목표를 갖고 협회원들의 적극적 지원과 참여를 구하며 목표를 향하는 중이다. 누구나 친숙하게 여겼지만, 정작 어디에 있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림책이 제자리를 찾아 당당하게 서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자문 및 감수 | 한성옥 작가
사진 제공 | 그림책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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