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월 31일, 소망관 앞에 도착한 순간 서먹서먹한 공기가 나를 에워싸는 것도 잠시 다시금 캠퍼스는 강력한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 캠퍼스에 인격이 있다면 ‘너 참 붙임성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하고 경탄할 정도니 말이다.
2. 나를 포함한 2016 봄 학기 신입생들이 가장 많이 듣고 왔을 질문은 ‘학교생활은 할 만하니?’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신입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적응’이었다. 새터반 친구들, 동아리 선배들 한 명 한 명 어색함을 깨기 위한 힘들게 건넨 말 한마디. 졸음과 사투하고 난 후에 노트 위에 남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지렁이들. 적응해야 하는 게 무수히 많은 대학생활 중에서 캠퍼스에 적응하기가 가장 쉽고도 기본적인 1단계가 아닐까. (첫 수업을 들으러 가는 아침 공기와 첫 입사 후 밥을 먹으러 기숙사를 나가는 것 말고는 캠퍼스와의 서먹서먹한 기억이 나지 않으니 말이다)
3.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낯섦과 어색함을 깨뜨리기가 어려운 반면에 공간의 경우는 한번 적응한 이후 그 익숙함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수능이 끝나고 호기심과 편안함으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때가 무척 그립다. 그에 반해 편해질 대로 편해진 이 기숙사와 내 방에선 열흘 동안 씻지 않은 것처럼 몸이 근질가린다. 그래서 시간이 많은 여름방학에는 ‘어디든 좋으니 일단 떠나자’하는 의욕이 마구 생긴다.
4. 딸기파티나 축제시즌이 되어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학교를 하나하나 소개해 줄 땐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조금은 설렌다. 아마 내가 KAIST에 처음 왔을 때의 서먹서먹함과 새로움을 이들도 지금 느끼고 있으리라 하는 기대감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어서일까. (마치 내가 즐겨 찾는 단골 식당을 소개해주는 느낌과도 같은 걸까)
5. 올해 겨울, 40년 전에 다니시던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 하나하나를 곱씹고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아마 6년간 등하교를 하면서 익숙해 질대로 익숙해진 학교가 긴 세월 속에서 잊혀 익숙함을 씻고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아직 그 세세한 구조를 다 읊으시는 것을 보니 아직은 오래된 친구처럼 그 공간 특유의 익숙함을 떨쳐버리실 수는 없으신가 보다.
6. 봄 학기 신입생으로서 나의 캠퍼스 탐구는 단순히 약도에서 위치를 찾고 서둘러 자전거 위에 오르는 것이었다. 마치 거시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처럼 말이다. 하지만 벚꽃이 어디에 가장 아름답게 피었는지, 올해 여름처럼 더울 때 찾아갈 만한 시원한 나무그늘은 어디에 있는지, 가장 KAIST다운 캠퍼스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는 포토존의 위치 같은 깨알 정보는 약도에 표시되어있지 않다. 그마저도 여유를 갖고 걷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다.
1학기를 마치 거시경제학을 배우는 학생으로 지냈다면 2학기에는 세세한 부분까지 파고드는 미시경제학을 수강하는 건 어떨까. 그럼 어느새 익숙함에 젖어 들어버린 캠퍼스의 또 다른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그 새로움에 이내 곧 적응하여 익숙해진다 할지라도 40년 후에 다시 KAIST를 방문했을 때 더 많은 새로움으로 회상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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