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검열이라는 바람이 불어 닥쳤던, 예술계에는 요란한 한 해였다. 이를 계기로 검열에 대한 대응이 집단적인 행동으로 발전한 것이 바로 다양한 극단이 모여 꾸민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이하 <권리장전>) 프로젝트다. <권리장전> 프로젝트의 총 예술감독 김수희 씨를 만났다. 그녀에게서 연극계가 검열사태에 어떻게 반발했는지, 예술인에게 지급되는 지원금과 관련하여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생생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예술감독은 어떤 직책인가
국립과 사립 극단 모두에 꼭 필요한 자리이자, 큰 책임감이 요구되는 직책이다. 1년 동안 극단이 무슨 활동을 할지 계획을 짜고 예술가들을 섭외해 함께 프로젝트를 만들어나가는 임무를 맡는다. <권리장전>에서는 특히 연출들의 순서를 정해주고, 연출가들 간의 이견을 조율해 통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5개월간 진행되는 프로젝트인데, 힘들진 않은가
그런 것 보다는 초반부엔 관객이 매우 많았었는데, 아무래도 후반부로 가면서 관심이 약간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확실히 장기 프로젝트의 한계를 느끼고는 있다. 하지만 연극을 어떻게 관객들과 효과적으로 만나게 할 수 있을지 <권리장전> PD가 고민하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연극계에서 불거진 검열 논란에 대해 설명해달라
지원금 제도 중 창작산실이라는 제도가 있다. 창작산실은 연극인이라면 거의 모두가 꿈꾸는 지원금이다. 이 지원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에서 심사위원들을 위촉한 뒤, 그들의 심사를 통해 지원금을 책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작년에 박근형 연출가는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라는 희극으로 여기에 당선되고, 쇼케이스를 거쳐서 8,000만 원의 지원금 지급을 확정받았었다.

처음에 문예위는 박근형 연출가의 지원금 수혜를 무산시키기 위해 심사위원을 압박했다. 심사위원의 반발이 거셌다. 자신들의 심의를 번복하라는 얘기와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러자 문예위에서 파견된 공무원 둘이 박근형 연출가와 직접 접촉해 포기하라는 압박을 넣었다. 처음에 박 연출가는 그에 수락하지 않았다. 8,000만 원이라는 돈으로 공연을 더욱 꾸며나갈 수 있는데,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창작산실 지원이 결정된 8팀 중 박근형 연출가를 제외한 7팀의 지원금 교부가 갑자기 정지됐다. 창작산실은 봄에 지급 단체를 발표하고 여름에 지원금을 받아 공연을 준비해서 가을에 공연하는 지원제도인데, 여름으로 넘어갈 때까지도 나머지 7팀에 대한 지원금이 지급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박근형 연출가는 직접 찾아온 공무원에게 구두로 창작산실을 포기하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들이 국가예산지원시스템 홈페이지에서 지원금 포기하는 항목을 직접 작성하고 박 연출가가 지원금을 포기하게끔 종용했다. 그 결과 나머지 7팀은 지원금을 받고 공연을 준비했다. 여기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7팀이 다 같이 냈지만, 일단 당장 공연을 준비해야 해서 연극계가 연대하기가 절대 쉬운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지원금 이슈로 대학로의 분위기가 묘하게 갈라진다. 사람을 돈에 매이게 하는 것이다. 과거 유신 시절에는 사람을 끌고 가서 육체적으로 고문하고 학대했다면, 지금은 지원금으로 대학로를 흔드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혹’이어떻게 ‘근거’가 되었나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창작산실의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 한 분이 나섰기 때문이다. 그분의 내부고발 덕분에 관련 기사가 나고, 문예위가 청문회에 올랐다. 상식적으로 공무원 둘이 독단적으로 극단에 직접 찾아가서 큰 액수의 지원금을 포기하라고 종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박근형 연출가를 직접 찾아가 지원금을 포기하라고 종용한 두 공무원만 직위 해제당하는 것으로 청문회가 일단락되었다. 청문회의 요지는 문예위장의 명령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냐는 질문이었지만, 위원장은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자신은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결과적으로 말단 공무원만 잠시 직위해제를 당했고, 사태가 진정된 지금은 다른 부서로 복직한 상태다.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지원금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 받지 못한 사람들 너나 할 것 없이 뜨겁게 분개했다.

 

사건 직후 연극계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맞다. 이후, 예술계는 천명 성명서를 내기도 하고 개인 퍼포먼스도 하긴 했다. 허나, 단체적이고 집단적인 행동이 없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만약 누군가 지하철에서 성희롱을 당하면 엄청 당황해 하나, 정작 성추행범한테 뭐라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옆에서 그 행동을 보고 문제 삼으면 용기가 생긴다. 비슷한 이유로 이런 일을 처음으로 겪은 박근형 연출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것 같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팝업 씨어터 사태가 터졌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라는 문예위에서 주관하는 대규모 축제가 있다. 별도의 선별과정을 거친 국내외 팀들이 참여하며, 새롭게 생긴 대학로 예술극장의 문예위 공연예술센터(이하 센터)에서 진행된다. 그곳엔 아주 큰 카페가 있어, 그 카페에서 깜짝 이벤트처럼 게릴라성 공연을 하고 빠지는 연극을 기획했다. 리허설 때 <이 아이>라는 희곡을 각색하여 연출에 의류 브랜드 노스페이스와 수학여행을 넣는 등 연극의 모티프를 세월호로 설정했다. 그런데 공연 당일 센터장이 내려와 갑자기 의도적으로 공연을 방해했다. 원래는 카페에 나오는 음악을 끄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영업 방해라면서 음악을 틀고, 배우들의 동선에 맞춰 바꿔놓은 테이블도 원상복귀 시킨 것이다. 공연 진행이 불가했고, 2회 진행될 공연이었지만 2번째 공연은 결국 하지도 못했다. 총 3팀이 공연을 준비했는데 뒤 순서의 2팀은 대본을 제출하라는 메일을 받았다. 3명의 연출가의 나이가 30대 초반이다. 생애 처음으로 문예위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연극 조직에서 공연을 준비한 것인데, 갑자기 이런 요구를 받으니 매우 당황한 것이다. 그래서 이 두 연출가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같이 공연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도 내부고발자가 있었다. 센터 직원 중 하나가 센터장이 내부 회의에서 <이 아이> 공연이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며 공연을 취소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회의록과 메신저 내용을 공개했다. 덕분에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 후 세 분의 연출가가 이런 상황을 공개하고, 공식사과와 피해배상을 요구했다. 센터장은 공식적인 사과문을 올린 뒤 직위 해제당했다. 하지만 이내 다른 부서로 복직했다. 이런 보여주기식 행정에 연극계가 집단으로 분노했고, 반발했다.

연극계는 이런 문제에 대해 20대 국회에 맞춰 다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이런 생각의 일환으로 연우 소극장에서 검열이라는 주제로 장기 공연을 한번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단발적인 공연을 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금방 사라질 테니, 그것보다 긴 프로젝트를 기획해보자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연극계가 외압에 의한 검열을 반대한다는 소리를 계속 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해 이런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예술가는 지원금에 매일 수밖에 없나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 대학로에 200개가 넘는 소극장이 있고 거의 모든 소극장에 매일 공연이 올라간다. 결과적으로 몇백 개가 넘는 극단이 있다. 대학교의 연극 영화과만 하더라도 정말 많이 생기지 않았나. 그 학생들이 4년간 공부를 하고 모두 대학로로 나온다. 그들은 매표수익이나 친구들끼리 모아 마련해놓은 자금 등을 자본금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지원 재단에는 일단 문예위라는 국가적인 지원 재단이 있고, 서울문화재단, 도 단위의 문화재단, 대기업에서 진행하는 문화재단 등이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지원금의 종류는 모두 해봐야 몇십 개 남짓이다. 당연히 모든 극단이 지원금의 혜택을 받으며 공연을 진행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원금은 갓 데뷔한 예술가를 지원한다는 의의가 크다. 이들이 어떤 성과를 거두기까지 도와주는 복지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다. 창작산실에서 직접 지원을 받아 본 연출가로서, 이러한 지원금은 정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돈으로 배우들에게 임금을 줄 수도 있고 스텝들이 낸 생각에 합당한 보상도 지급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기획, 연습실 대관 등 기타 제반에 필요한 돈을 충당할 수 있어, 자신이 기획할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다. 결국, 예술가의 복지와 예술의 다양성, 예술이 성장해서 관객들에게 도달할 수 있는 제반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국가 지원금이다. 그래서 그 필요성을 절대로 부정할 수 없다.

 

지원금에서 자유로워질 방법이 있는가
현실적으로 가장 하기 힘든 고민이다. 지금 연극계는 손님이 없는 자영업자가 ‘언젠가 손님이 오겠지’라는 기대로 혼자 버티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자영업자는 손님을 들이기 위해 음식의 질을 바꾸든 가게의 분위기를 바꾸든 ‘자신’이 바뀌어야만 한다. 그처럼 연극계도 극단을 만들어 배우들과 같이 워크숍을 하고, ‘좋은희곡읽기모임’을 하고, 스텝들과 기획 회의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즐겁게 볼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있다. 1970년대에, 김성만 선생님이 연우 무대의 총 연출가였을 적에는 연우 극장에 <칠수와 만수>, <한씨연대기> 등의 극이 올라가면 관객이 극장을 꽉 메워서 매표 수익만으로도 극장을 운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체의 발달로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집에서 얼마든지 핸드폰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관객을 극장으로 발걸음 하게 하려면 결국 연출가가 노력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관객은 이러한 예술계의 실정에 주목하고, 좋은 작품을 찾아보러 와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연출가 입장에서는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잘 만드는 뜻이 상업적이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즐길 수 있는 질 좋은 공연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낭만적인 이야기일 뿐, 당장 극단이 자력으로 공연을 준비하여 관객 앞에 선보인다는 일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의 예술인들은 자본주의에 내몰리고 있다. 사실 정말 지치는 작업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연극계는 계속 공연을 할 것이다.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검열 각하라는 무거운 소재지만, 다음에는 더욱 즐겁고 일반 관객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소재로 다가가고 싶다. 당장은 이런 딱딱한 얘기로 공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 참 서글프다. 그래서 ‘이 얘기가 예술인들의 밥그릇 얘기가 아닌 대한민국 전반에 걸친 문화와 표현의 자유에 관한 얘기다’라는 메시지를 딱딱하지 않게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런 무거운 얘기를 할 필요 없는 세상이 찾아와, 꼭 순수하고 자유롭게 즐거운 소재로 찾아뵙고자 한다. 그것이 나 자신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의 작은 바람일 것이다.

 

인터뷰/ 김수희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 총 예술감독 

정리 | 박재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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