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분야의 연구 기업 가트너(Gartner)는 ‘2016년 신기술 하이프 사이클 보고서’와 ‘10대 전략 기술 동향 보고서’에서 순수 몰입 경험, 증강 인간(augmented human),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플랫폼 등을 주요 미래 기술로 제시했다. 이는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이 미래 기술의 지향점임을 시사한다. 실제로 최근 기술 발달은 인간과 기계가 일상생활에서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기술은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과 소통하고 있다. 기술은 얼마나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왔으며, 가장 ‘인간다운’ 기술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인간의 곁으로 다가온 기술
 
점점 사라지는 기계 사용의 불편함
리아스 반 윅 미국 테크노스캔센터(Technoscan Centre) 소장은 기술을 ‘인간이 지닌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창출한 일련의 수단, 즉, 창조된 능력’으로 정의했다. 인간은 직립보행으로 얻은 두 손으로 도구를 제작해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데 쓰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부터는 기계가 인간에게 필요한 재화를 대량생산하는데 절대적이 되었다. 이처럼 기술은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지만, 이때까지 시대의 중심이 된 것은 인간이 아닌 기술이었다. 기술이 먼저 개발되고 인간이 그 기술에 적응하는 패러다임이었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효율성이나 그 기술 자체지, ‘어떻게 쓰느냐’가 아니었다.
 
따라서 당시 기계란 몇몇 전문가들에게 국한된 존재였으며 그 기계를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불편함은 기계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특권 의식이나 전문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이 점차 대중화되고 범용화되면서 기계가 가정으로 들어오자 그 불편함은 제거해야 할 요소가 되었다. 그에 따라 사용자와 개발자 모두가 기계와 사용자 사이 괴리를 좁힐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인간의 신체와 행동, 감성에 대한 연구도 진행됐다. 
 
인간-기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해
이처럼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변화하는 기술은 사람과 기계가 소통하는 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 간단한 예로 컴퓨터와 인간은 아직 비교적 제한된 공간과 상황에서 마우스와 키보드, 모니터 등의 도구를 사용해 소통한다. 따라서 컴퓨터와 인간의 상호작용은 사람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업무나 활동을 하는 형태를 띤다. 반면 모바일 기기는 휴대와 사용이 간편하다는 점에서 잠시 시간을 확인하거나, 간단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처럼 다른 활동 중에도 짧게 이용하기 쉽다. 그러므로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에는 서로 다른 인간-기계 상호작용 모델이 필요하며, 상호작용의 성격도 크게 다를 것이다.
 
다양해지는 인간-기계 상호작용 방식
기존에는 사람과 기계가 제한된 공간과 인터페이스 안에서 일대일 상호작용을 통해 소통했다. 사람이 정형화된 방식으로 기계에 데이터를 입력하면, 기계가 적절한 결과물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 결과물의 형태는 정보를 주입한 사람도 예상할 수 있었다. 최근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면서 인간-기계 상호작용의 종류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으며,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몸에 착용하거나 부착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의 경우, 기계가 우리의 몸과 밀착해 직접 소통하고 피드백을 제공한다. 
 
한편, 최근 유망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IoT은 우리가 입력으로 의도하지 않은 정보를 입력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문을 열고 닫는 것, 의자에 앉아있는 것, 얘기하는 것 등 우리의 일상적인 행동이 데이터로 인식된다. 이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계가 사용자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는 환경이나 다른 사물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서비스로 제공된다. 즉, 기존의 일대일 상호작용이 완전히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HCI를 통해 인간에 대한 연구 시작돼
기술이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은 꽤 오랜 기간 공학, 경영학,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됐지만, 그 노력을 융합하지 못했다. 정보화 혁명을 기점으로 시스템이 점점 복잡해지고 정보 기술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자 기존 방식으로는 인간 중심의 시스템을 만들기 어려웠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보다 사용자 친화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분야로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HCI)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HCI가 융합과 통섭을 통해 다양한 관점을 담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HCI는 컴퓨터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를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학문이다. 특히 기술의 형태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요즘, HCI 전문가들은 다양한 상황과 기술에서 인터페이스가 어떻게 디자인되어야 할지 고민한다. HCI에서는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평가하는 것과 함께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특성과 경험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공학자, 심리학자, 인류학자가 모두 가세해 다양한 관점에서 지식융합을 도모한다.
 
따라서 HCI의 디자인은 특정 집단이 전문 지식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상식적인 수준에서 보편적인 인간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계를 목표로 한다. 이런 측면에서 HCI 디자이너는 예술가보다는 인문학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 경험을 읽다
 
HCI의 기본 철학은 인간 중심 사고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및 개인 컴퓨터를 생산하는 애플(Apple Inc.)의 설립자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iPod)은 인문학과 공학의 교차점에서 탄생했다. 애플은 기술회사가 아닌 인문학적 회사다”라고 말하며 인문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공학의 시발점이 인간인 만큼, 공학의 결과물 역시 인간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인문학은 무엇일까?
 
인간-기계의 관계를 연구하는 인문학
성균관대학교 신동희 교수는 잡스가 말한 인문학을 흔히 말하는 문학, 역사, 철학이 아닌, 인간-기계의 관계가 얼마나 더 인간적이고 개인적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이 학문 속에서 인간은 제품의 사용자를 넘어 기술과 상호작용하는 존재로서 연구되었다. 잡스는 인간이 하나의 정보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에 관심을 가졌고, 이러한 인지적 특성에 부합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기술의 인문학적 추구, 즉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사람들을 애플에 열광하게 만들었다.

UX로 친숙하고 풍부한 감성 전달해
따라서 인문학이 주목하는 기술은 인간에게 친숙하고 직관적인 경험, 즉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을 중요시한다. UX는 사용자가 어떤 시스템이나 제품, 서비스 등을 직간접적으로 이용하면서 느끼는 지각, 반응, 감정 등의 총체적인 경험을 뜻한다. 특히 UX는 사용자의 감정이나 만족도 등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이므로, 특정 상품에 귀속된 개념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 UI)와는 달리 사용자에 귀속된 개념이다. 그만큼 측정하거나 일반화하기 어렵기에, UX는 인간의 보편성을 바탕으로 한 ‘공감’이라는 특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인간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통해 한 사람에게 공감할 때, 그 인간이 느낄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의 오감을 포함한 다중적인 경험, 그리고 이 경험을 극대화함으로써 인간에게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기술이 탄생한다. 경험의 극대화란 유용함이나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풍부하고 감성적인 부분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경험에 기반을 둔 제품은 자체 기능을 넘어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를 제공한다.
 
체계적인 학문으로 인정받은 디자인
이에 따라 인간과 제품뿐만 아니라 상호작용 행위가 일어나는 총체적 상황을 고려하는 ‘문맥적 디자인’을 중시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디자인은 기존의 통념과 같이 단순히 예술적인 행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체계적인 학문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디자인을 다양한 실험, 연구, 사용자로부터의 피드백을 통해 인간을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품 기획, UI 디자인까지 나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여기는 것이다.
 
융합과 통섭의 HCI
 
인간 연구에는 다양한 관점 필요해
최근 HCI 연구에서는 융합과 통섭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미국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NSF)이 NBIC(Nano, Bio, Information, Cognitive tech-nology) 등의 과학과 인문학이 융합하는 과학기술을 선언한 이후, 융합은 현대 사회를 표현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되었다. 통섭이란 오랜 시간 장벽화되고 세분되어 있던 학제 간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지식의 대통합 과정이다. 
 
HCI의 핵심 키워드가 융합과 통섭인 이유는 HCI가 주목하는 대상이 융합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학문의 융합을 통해 인간에 대한 심오한 탐구를 하고자 하는 HCI의 방법론이 통섭론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해 심도 있고 정확하게 연구하려면 다양한 관점과 지식이 필요한 만큼, UX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와 경력자가 섞여 있다. 서로 다른 분야에 대해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연결 고리를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융합의 원리가 HCI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공학과 인문학 사이 간극 줄이는 HCI
하지만 HCI는 역설적으로 분열과 갈등의 학문이기도 하다. 시스템과 인간 이해라는 서로 다른 연구 목적은 공학과 인문학 사이의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 공학은 객관적이고 눈에 보이는 수치나 정보를 바탕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 반면, 인문학이나 디자인은 정성적인 연구에서 가치를 도출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따라서 시스템 효율성 중심의 공학적 마인드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주관성, 예술성을 기반으로 하는 인문학과 충돌할 수 있다. HCI의 과제는 이 둘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이렇듯 HCI는 인간에 대한 학문인 만큼 통찰이나 직관에 의해서 결정되는 부분도 많다. 기존에는 이렇듯 수치화되지 않은 정보를 잘 인정하지 않았지만, HCI 관련 연례학회인 CHI(Computer-Human Interaction)를 중심으로 디자인과 주관을 중요시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점차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애플과 같은 인문학적 기업이 세계적으로 성공하면서, 인문학과 디자인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했다.
 
발전하는 인간과 기계이 관계, 그 미래는
 
앞서 말했듯 HCI의 기본 목적은 컴퓨터, 컴퓨터를 이용한 기술, 인간의 상호작용을 개선해 기계를 인간에게 보다 편리하고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이다. 즉, 기술의 사용자인 인간에게 최적의 경험(optimal experience)을 제공하는 것이다. 최적의 경험은 인간이 기계와 일체화되어 자신을 잃을 정도의 심리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최적의 경험이란 환경에 압도되지 않고 사용자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으며, 기술과의 상호작용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HCI의 궁극적인 목적은 컴퓨터를 도구로 삼아 인간의 의지를 자유롭게 하고, 창의력을 증진시키며,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인간 본연의 가치 잃지 않아야 해 
우리 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임윤경 교수는 인간이 점점 기계에 의존적으로 변하는 것은 절대 긍정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기계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마치 에이전트처럼 사용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이때 인간이 스스로 판단해야 할 가치를 기계에 의존해 판단하지 않으려면 기계의 역할과 기능의 범주를 사용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임 교수는 “점차 예상 불가능하고 유연해지는 현대 기술 사회에서, HCI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떻게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가치를 지키면서 살아가도록 할 것인가에 있다”라며, 상호작용 디자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임 교수에 의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의 양과 깊이에 따라 달라지듯, 기계와 사람 사이의 관계 역시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기계를 훈련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
 
IoT로 새롭게 정의되는 사물의 기능
스마트혁명을 비롯한 컴퓨팅 환경의 변화는 HCI 영역의 확대 또는 파괴를 가져왔다. 핸드폰, 웨어러블 디바이스, IoT 등 무수한 컴퓨터가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지만, 그 컴퓨터들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기존의 평범한 사물, 문이나 책상, 벽 등에 컴퓨터가 삽입되면서 디자이너들이 물체들의 기능을 처음부터 규정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다. 한 예로 책상이 단순히 사람이 앉아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공간이 아니라, IoT 플랫폼으로서 더 많은 기능을 할 수 있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따라서 각 사물의 기능이 사용자 개개인의 일상생활과 사용 맥락에 기반해 정해져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주변 사물들이 지나치게 복잡해져 사용자들에게 과도한 선택의 폭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미래 HCI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20세기의 기술이 인간의 육체적 능력, 노동력을 대체했다면 미래 기술은 컴퓨팅 기술을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 등으로 인간의 지적 능력을 보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인간 중심적 가치가 중요해지면서 이러한 무형 가치를 기술에 어떻게 구현할지가 관건이다. 점점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인간성이라는 인간 고유의 특징과 가치를 컴퓨터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특성에 대한 존재론적 논의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미래학자이자 발명가인 레이 커즈와일은 자신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를 통해 2030년 전후에 인간과 기술의 경계가 무너지는 ‘특이점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또 컴퓨터 공학자이자 철학자인 브라이언 크리스천은 <가장 인간적인 인간>에서 미래 인공지능의 진화방향은 궁극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컴퓨터라고 말한다. 기술은 점점 인간의 곁으로 다가와 인간 지능을 이루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될 것이고, 인간은 이를 통해 점차 발전할 것이다. 만약 인간이 증강된 능력을 이용해 자신의 가치를 추구해나간다면 커즈와일이 예언한 ‘특이점’은 결국 HCI가 추구한‘최적의 경험’이 아닐까.
 
취재 | 임윤경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참고 문헌 | <휴머니타스 테크놀로지>, 신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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