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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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없다
  • 김건우 KAIST 전산학부 15학번
  • 승인 2016.08.30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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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은 기적을 일으켰다. 10-14에서 내리 5점을 뽑아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만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기적은 이후 한국 선수단을 상징하는 가치가 됐다.”

이제는 막을 내린 리우 올림픽, 국민에게 그 누구보다도 큰 감동을 선물한 사람은 아마도 펜싱 종목의 박상영 선수가 아닐까 싶다. 상대가 금메달까지 1점만을 남겨두어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단 하나의 실점도 없이 연속으로 점수를 얻어내며 마침내 금메달을 거머쥔 박상영 선수는 짜릿함의 아이콘이 되었다. ‘할 수 있다’라는 최면이 만들어 낸 기적이라며 수많은 언론은 그를 치켜세웠다.
글쎄. 사실 기적 같은 건 없다. 할 수 있다는 최면으로 해낸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 멋진 역전극의 공로는, ‘할 수 있다’라는 최면보다 선수가 흘린 땀에 먼저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박상영 선수의 금메달 뒤에는, 중학교 시절에도 새벽 6시부터 훈련을 했던 열정이 있었고,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받고 힘든 재활 과정을 겪은 아픔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가 열심히 땀을 흘리며 기량을 갈고닦을 수 있던 환경이 있었을 것이다.
협회의 실수로 통역사도 함께하지 못해 선수가 직접 통역을 해야만 했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 여자 배구 대표팀은 결국 8강에서 탈락하는 아쉬운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비판의 화살은 오롯이 선수들에게 돌아갔다. 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한 선수는 쏟아지는 욕설에 개인 SNS 계정을 닫고야 말았다.
또 다른 문제는 대한민국이 소수의 선수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국내 리그에는 관심도 지원도 없지만, 국제 대회에 출전한 한두 명의 스타들에게는 큰 기대와 부담이 실리는 것이다. 오랜 기간 스포츠에 지원해 온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다양한 분야에 많은 수의 선수들이 출전해 있어 경기 결과에서 넓은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다. 메달권이 아니면 관심을 받지 못하는 우리나라와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는 단순한 인구의 문제가 아니며, 스포츠 기반의 문제이다. 국민들이 다양한 스포츠에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와 분위기가 있고, 그 가운데 선수들이 나오며, 그 선수들 가운데에서 우수한 성과가 나오는 것이다.
금메달을 따면 ‘응원해준 국민들 덕’이라면서, 부진한 결과의 책임은 개인에게 돌리는 이 상황. 열악한 상황임을 모두가 알면서 소수의 엘리트, 그들의 오기와 열정, 그리고 기적에 희망을 거는 사람들의 모습. 왠지 너무나도 익숙하다. 비단 스포츠계만의 일은 아니다. 과학계에서도, 우리나라의 그 어떤 분야에서도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구 환경에 대한 고민보다 노벨상에 대한 기대가 앞서고, 심지어는 ‘왜 우리나라에는 노벨상이 없냐’며 과학인들을 책망하거나, 각종 규제와 부조리 방치로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성공하기 힘든 환경에서, ‘왜 우리나라에는 스티브 잡스가 나오지 않느냐’는 식이다. 여전히 사람들의 목표는 더 좋은 연구와 우수한 과학도 양성이 아니라 노벨상과 스티브 잡스다.
우리나라는 더는 배를 곯는 처지가 아니다. 어려운 나라 상황에서 ‘헝그리 정신’으로 기적을 만들어 냈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기적은 옵션에 불과하고, ‘기대’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기적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제는 선수 개인의 정신력이 아니라 충분한 투자와 전략으로 그에 걸맞은 성과를 기대해야 한다. 한 명의 엘리트가 아니라 다양한 선수를 길러내고, 나아가 전 국민이 자유롭게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과 분위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한 스포츠 강국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스포츠뿐 아니다. 어려웠던 시절, 전 국민이 ‘잘살아 보세’라는 신조로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끌어 냈던 ‘한강의 기적’. 기적의 시대는 끝났다. 더는 정신력과 노력만으로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시점은 지나버렸다. 소수의 엘리트가 우리 사회를 먹여 살리기보다, 이제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삶의 질을 끌어올려야 한다. 대중들이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고, 대학원생들이 불필요한 스트레스 없이 연구할 수 있어야 하고, 도전에 실패한 사람도 벼랑 끝으로 몰리지 않을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 더는 부족한 환경을 개인의 정신력으로 극복한 기적이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박상영 선수의 기사를 읽던 중 씁쓸함을 남기는 구절이 있어 이 씁쓸함을 공유하려 한다.

“이런 도전정신이 우리나라 스포츠에 널리 퍼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협회와 기업의 지원도 물론 중요하지만, 선수 스스로 먼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세계 무대에 도전하는 목표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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