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리용 313호
상태바
까리용 313호
  • 카이스트신문
  • 승인 2009.01.3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나친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 다른 사람의 변화에도 관심을 갖자

  한복에서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오지랖’이라고 한다. ‘오지랖이 넓다’라는 말은 넓은 가슴을 가졌다는 말이며 이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뜻했다. 요즈음은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을 일컫는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쓰인다. 자기 일도 아니면서 지나친 간섭으로 오히려 일을 귀찮게 만든다는 말이다.

  ‘오지랖이 넓은’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생긴 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경을 쓴다. 이런 행동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려울 때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어 힘이 되는것도 사실이다. 잔소리라고 생각했던 간섭이 때로는 훌륭한 해결책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예전에는‘오지랖이 넓다’라는 표현이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일 만큼 우리 주변에는 남의 일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챙겨주는 사람이 흔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점점‘오지랖 넓은’사람보다‘오지랖 좁은’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가위가 되어 우리 자신의‘오지랖’을 자르고 있다. 길거리에서 누가 봉변을 당했는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식의 이야기는 이제는 신문 기사로도 식상한 내용이다.

  학내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 학번 이후에게 적용되는 정책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올해 입학하는 신입생부터 식비 지원금이 개인에게 지급되지 않지만 그래서 어떤 점이 달라지는지, 후배가 예전보다 나빠진 대우를 받게 되는 건 아닌지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다. 장학금 수혜 기준이 바뀌어도 나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게 먼저다. 새 정책이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단 인식되면 모든 생각의 여지를 차단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지랖 좁은’옷이 제 몫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타인에 대한 지나친 무관심은 자기 자신에게도 해가 된다. 내가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데 어느 누가 나의 어려움에 손을 내밀어 주겠는가.

  바쁜 학기 일정으로 눈앞에 닥친 일을 감당하기도 벅찬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일까지 신경 쓸 수 있느냐며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는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만들어가는 작은 세상이다.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일 때 잘못된 점을 바로잡을 수 있고 보다 발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의 일이 아니더라도 내가 속해있는 학교가 어떤 정책을 추진하는지 무엇이 쟁점인지 정도는 알아야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넓은 오지랖’까지는 아니더라도‘적당한 길이의 오지랖’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미덕이다.

  곧 09학번이 입학한다. 학교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교육 정책을 시행하고 새 정책이 시행되면 학생 관점에서 지나치게 느껴지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시행 대상이 대부분 신입생부터라 재학생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둔다. 재학생도 모두 한때 신입생이었고 처음 시행되는 여러 정책으로 알게 모르게 어려움을 겪었다. 일 학년 시절 자신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며 먼 나라 일 구경하듯 후배의 어려움을 보기만 하는 선배에게 답답하고 섭섭한 마음을 누구든 한 번쯤은 가지지 않았을까.

  당장 자신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나 몰라라 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지나친 개인주의가 팽배한 요즘은 오히려‘오지랖이 넓은’사람이 그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