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차례는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상태바
다음 차례는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반석 엔드리스로드 프로그램 담당자
  • 승인 2016.08.18 02: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이 경쟁과 취업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과 치열한 고뇌를 배우는 곳으로 변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간을 단축하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대학원생 참석자)
“그건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죠. 그렇다면 왜 빨리 가야 하는 거죠? 좋은 것일수록 시간을 투자해서 천천히 봐야죠. 그만큼 신중하게 공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잖아요. 변해가는 과정에도 의미가 있는데 빨리 가는 것만이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아요.”(기준영 소설가)
작년 11월의 엔드리스로드 입주 작가 간담회에서 오간 대화다. 기 작가의 답변이 끝나자 회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청중석에 앉아있던 학생들의 눈빛이 흔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짧은 시간 안에 빨리 가는 것. KAIST 학생 대다수에겐 긍정적인 가치다. 효율성을 도모하는 것은 현대 과학기술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한 소설가가 “왜 빨리 가야 하는 거죠?”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때의 충격은 실로 신선했을 것이다. ‘엔드리스로드’는 이런 순간을 위해 만들어졌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교류하며 낯선 시선을 경험하고 사고의 경계를 넓혀가게 돕는 것이 KAIST가 예술가를 캠퍼스로 끌어들인 목적이다.
과학도와 창작자가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하다. ‘허브차’라고 했을 때 ‘Herbal tea’를 떠올리는 작가와 ‘네트워크 자동차’를 떠올리는 학생의 교류가 웹툰 소재로 사용되었고, 대학원생과 작가의 글쓰기 모임은 도서 ‘15분 마법의 글쓰기’로 출판되었다. 이런 거창한 만남 외에도 간단하게 차를 마시거나 캠퍼스의 이웃으로 지내는 일상적인 어울림 역시 엔드리스로드가 지향하는 교류의 방향이다.
KAIST 출신 독립영화 감독이 입주 작가로 활동했을 때, 학생과의 인터뷰를 촬영하는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학생들은 이름과 학과와 나이를 말하고 나면 침묵에 빠졌다. 카메라 앞이라서 많이 긴장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당연히 나인데 더 생각할 게 뭐가 있나?’ 싶겠지만 스스로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내면의 감정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갈 수도 있다.
이들이 엔드리스로드가 KAIST 구성원 여러분에게 제공하고 싶은 자극이다. 그 자극들이 에너지로 바뀌어 학업과 연구, 캠퍼스 생활이 더욱 풍성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는 16일부터 6기 입주 작가들이 활동한다. 세밀화가로 유명한 윤봉선 작가, 시나리오 및 영상예술 분여에서 활동해온 김연정 작가,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의 저자 김호연 작가가 거처를 옮겨올 예정이다.
엔드리스로드 입주 작가와 KAIST 구성원들이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해진 틀이 없다. 준비된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어도 좋고, 프로그램 담당자의 메일이나 내선 전화로 원하는 교류 방식을 먼저 제안해준다면 더욱 뜻깊을 것이다. KAIST 구성원이라면 누구에게나 기회는 열려 있다. 새 학기에도 예술가와의 일상적인 교류를 함께 만들어갈 분을 기다리고 있다. 다음 차례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었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