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소통의 시대다.” 2년 반 전 본지에 실린 사설 <까리용>의 첫 문장이다. 맞는 말이다. 지금은 모두가 소통의 필요성을 외치고 있다. 다만 그들이 모두 자신의 말을 지키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적어도, 곳곳의 대학교에서는 소통의 부재가 불러온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곳은 소위 ‘이대 사태’가 벌어진 이화여자대학교(이하 이대)일 것이다. 최경희 이대 총장이 부임한 이후, 이대는 밖에서 보기엔 다양한 사업에 참여하는 등 순탄한 2년을 보낸 듯했다. 하지만 막상 학교 안에서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당장 최근 농성 시위로 불거진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치만 해도 그렇고, 올해 상반기 프라임 사업 참여 지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외에도 이대 학생들은 캠퍼스에서 여러 사건에 관해 최 이대 총장에게 입장문을 전달하고 학생 공동행동을 개시하는 등 목소리를 내왔다. 다만 그들이 그토록 주장을 펼쳤지만, 최 이대 총장의 태도는 그다지 변하지 않아 학생들은 최 이대 총장에게 깊은 불신을 품었다. 그러한 불신이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치 결정에서 농성이라는 형태로 폭발한 것이다. 결국 ‘이대 사태’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이 이대만은 아니다. 역시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치 때문에 갈등을 빚고 있는 동국대학교부터, 전 총장 교수 임명에 반발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얼마 전 우리 학교 총학 <K’loud>가 참여한 사학 비리 규탄 연대성명의 대상인 상지대학교까지. 학생들은 소통하지 않는 학교에 반발하며 일어나고 있다.

이렇듯 지금은 불통의 시대다. 형식뿐인 소통이 아닌, 진정으로 이견을 조율하기 위한 소통이 필요한 시대다. 학생들을 달래기 위해, 외부에 보이기 위해 이루어지는 껍질뿐인 대화는 이제는 임시방편조차 되지 않는다. 몇 년 전 우리 학교가 그랬듯, 지금 이대가 그렇듯 말이다.

학교의 주인은 어느 한 명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학교는 학생들만의 것도, 교수진만의 것도, 직원들만의 것도 아니다. 학교는 그들 모두가 참여하는 공간이다. 어느 한쪽의 의견을 묵살해서는 안 되며,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필자는 지금의 우리 학교는 나름대로 소통에 힘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소통함으로써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안타까운 사건이, 더는 우리 캠퍼스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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