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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국악, 옛 소리에 숨을 불어넣다
국악의 현대화를 위한 노력 월드 뮤직의 이름 아래 해외로 진출해
[421호] 2016년 05월 31일 (화) 고기영 mat9847@kaist.ac.kr

 ‘나라의 음악’ 이라는 이름을 가진 국악은 더는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연주되지 않는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국악은 서서히 잊혀, 살아 숨 쉬는 음악보단 보존해야 할 옛것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을 깨고 과거의 음악을 다시 현대에 가져오려는 흐름이 있다. 국악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추구하는 창작 국악에 대해 알아보자.  

 

전통 음악, 국악, 창작 국악
창작 국악이란, 국악의 표현 매체와 양식에 뿌리를 둔 채 현대적 방식으로 만들어진 음악이다. 여기서 국악적 표현 매체는 국악기나 판소리의 발성 등을, 국악적 표현 양식은 국악의 장단, 음계, 또는 음의 변조를 뜻한다. 이 딱딱한 정의를는‘전통 음악’, ‘국악’, 그리고 ‘창작 국악’ 사이의 관계를 알면 좀 더 쉽게 다가온다.
전통 음악이란 일반적으로 2~3세기 전까지 만들어지고 내려온 음악을 가리킨다. 하지만 시대만을 기준으로 전통 음악을 정의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사물놀이는 국악인 김덕수를 중심으로 1978년에 처음 만들어졌지만 전통 음악으로 취급된다. 이는 사물놀이가 전통적인 농악과 무속 음악의 선율을 재구성해 만들어진 음악이기 때문이다. 즉, 전통 음악은 기존의 가락을 변형하는 전통적인 작곡 방식과 표현 방법을 따르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국악은 전통 음악 외에도 창작 국악과 국악가요 등을 포함하는 더 넓은 범주의 음악이다. 1930년대 이후, 서양식 작곡 방법이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국악은 변화를 맞는다. 기존의 국악, 즉 전통 음악에서는 연주자와 작곡가가 분리되어 있지 않았으며, 존재하던 악곡들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신곡을 작곡해 왔다. 반면 새로 등장한 창작 국악은, 서양 음악처럼 작곡가가 자유롭게 음악을 창작하고 연주자가 악보를 따라 연주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하지만 창작 국악은 여전히 국악기와 국악 음계, 장단 등을 사용하기에 국악으로 분류된다.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꾀하다
창작 국악이 등장한 지 약 80년이 지난 지금, 창작 국악의 갈래는 매우 다양하다. 서양식 오케스트라의 형식을 빌려온 국악 관현악단, 다른 장르를 접붙인 ‘퓨전 국악’, 심지어는 국악 록 음악 등이 생겨나며 어디까지 창작 국악으로 보아야 하는지 모호한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러한 음악들 모두 국악을 좀 더 현대인의 감성에 맞게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한 시도가 다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창작 국악은 구체적으로 어떤 시도를 하고 있을까?
국악 관현악단은 오케스트라의 형식을 빌려와 대중성을 높인다. 국악기는 본래 음량이 작고, 악기마다 음정이 조금씩 달라 오케스트라처럼 연주하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서양의 평균율과는 다른 음계를 사용하기에 서양 악기와의 합주 역시 쉽지 않다. 국악 관현악단은 음량과 음정이 개량된 국악기를 도입해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 대규모로 편성된 개량 국악기들은 서양 악기와 함께 웅장하고도 역동적인 곡을 연주하며 국악이 지루하다는 편견을 한결 덜어준다.
오케스트라와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아도 창작 국악을 즐길 수 있다. 다양한 장르와 국악을 혼합한 ‘퓨전 국악’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2014년 발매한 <Fly in, 날아들다> 앨범에서는 재즈 밴드 ‘프렐류드’와 소리꾼 전영랑이 경기 민요의 선율을 즉흥적으로 주고받는다. 3년 동안 민요를 재즈와 어울리게 편곡하고, 색소폰으로 태평소의 소리를 내기 위해 고심했던 이들의 음악에는 민요의 구수함과 재즈의 즉흥성이 모두 느껴진다.

국악의 경계 안에서 찾은 새로움
다른 장르와의 융합만이 새로움을 만드는 방법은 아니다. 파격적인 실험 정신은 국악의 테두리 안에서도 새로운 음악을 창조해낸다. 음악 그룹 ‘거문고팩토리’는 거문고라는 악기의 극한을 탐구하며 새로운 음악을 만든다. 거문고는 절도 있는 음색으로 ‘선비의 악기’라 불리지만, 음량이 작아 대규모 합주에서는 그 매력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거문고팩토리는 거문고의 매력을 부각하고 더욱 다양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연주자들 스스로 거문고를 개량했다. 그 결과 탄생한 전자 거문고, 첼로 거문고, 실로폰 거문고는 기존에 없던, 그러나 전통에 단단히 기반을 둔 소리를 낸다.
옛 소리 속에 현대의 삶을 담아내는 음악들도 있다. 한국대중음악상 2015년 최우수 크로스오버 음반으로 선정된 <바리 abandoned>는 바리데기 설화를 바탕으로 판소리에 오늘의 이야기를 담는다. 설화에서 불라국 오구대왕의 버림받은 딸 바리공주는, 아버지가 불치병에 걸리자 생명수를 찾아 저승으로 험한 길을 떠난다. 극작가 배삼식은 설화 속 바리의 여정과 버림받은 오늘날의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국제 난민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가사에 담는다. 한승석의 판소리와 정재일의 피아노 반주는 가사에 담긴 설움을 때론 잔잔하게, 때론 절절하게 풀어내며 완성도 높은 음악을 빚어낸다.

창작 국악, 월드 뮤직의 날개를 달다
최근 들어 창작 국악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일례로 1997년 창단한 국악 기반 단체 ‘공명’은 38개국에서 공연을 100여 회 진행하였다. 단지 이 단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세대 월드 뮤직 그룹인 공명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 ‘잠비나이’, ‘숨’, ‘바라지’ 등의 많은 창작 국악 단체들이 ‘월드 뮤직’의 날개를 달고 외국으로 진출하고 있다.
‘월드 뮤직’은 각국의 전통 음악, 민속 음악, 신(新)전통음악(neo-traditional music), 그리고 이와 혼합된 대중음악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음악 장르다. 1980년대 들어 음악업계에서 분류를 위해 이 표현을 대중적으로 사용한 이래, 각종 월드 뮤직 축제와 박람회가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그 중 1994년 베를린에서 시작된 WOMEX(World Music Expo)는 500여 개의 음반사 등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월드 뮤직 박람회다. WOMEX는 콘퍼런스와 축제, 그리고 발표회 등으로 구성되며, 이 중 공식 발표회는 오직 30여 팀만이 참여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2008년, 비공식 발표회에 참가한 공명을 시작으로 2009년의 ‘들소리’, 2012년의 ‘거문고팩토리’, 2015년의 ‘바라지’ 등의 단체들이 WOMEX 공식 발표회에 참가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 외에도 여러 창작 국악 단체들이 각국의 행사에 초청받으며 국제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서양식 작곡법이 유입되며 시작된 창작 국악은 시대의 변화를 거치며 다양한 방향으로 분화되었다. 서양 음악 형식을 답습하고, 이질적인 장르와 교감하며, 때론 과격한 실험을 감행하는 창작 국악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창작 국악, 특히 2000년대 들어 급격하게 증가한 소규모 국악 단체들의 음악을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창작 국악의 이름을 단 이러한 시도들이 국악을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들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창작 국악을 즐기는 방법: 사극 OST부터 길거리 공연까지

 

창작 국악은 대중적이지 않기에 찾아 듣기가 마냥 쉽지는 않다. 또한, 국악 특유의 음악 형식이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다. 창작 국악을 찾아 즐기는 방법을 알아보자.

우리에게 익숙한 창작 국악
가장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창작 국악은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 삽입되는 배경 음악이다. 드라마 <추노>에 삽입되어 유명해진 해금 연주곡 ‘비익연리’나 영화 <해어화>에 등장한 ‘正歌 앙상블 소울지기’의 ‘사랑 거즛말이’가 대표적인 예다. 영화 <사도>에서 배우 정해균이 직접 부른 ‘만조상해원경’ 역시 인상적인 가사와 징 소리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정해균이 직접 박수무당에게 사사해 부른 이 음악은 무속 음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로도 작용하였다.

창작 국악 공연을 찾아가다
창작 국악 행사에서는 오랜 경력의 노련한 국악 단체들과, 혈기왕성한 신진 국악인들을 같이 만나볼 수 있다. 매년 7월경,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여우락 페스티벌’은 장르와 영역을 넘어서는 실험적인 무대들을 선보인다. 매년 정해지는 주제 아래,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한 달에 걸쳐 여러 무대를 올리기에 취향에 맞는 공연을 선택할 수 있다. 창우극장이 5월부터 10월까지 개최하는 <북촌낙락>과 <호호낙락>은, 북촌 한옥마을의 거리와 가택에서 젊은 국악인들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거리 축제다. 이 외에도 신진 국악팀의 등용문인 창우극장의 <천차만별 콘서트>와 국악 방송의 <21c 한국음악 프로젝트>에서 창작 국악의 현주소를 만나볼 수 있다.
국악 전용 극장의 정기 공연을 찾는 방법도 있다. 국악 전용 극장은 크게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재청 산하, 지방자치단체 지원, 민영 공연장으로 나누어진다. 국립 국악원 공연장, 국립극장, 남산 국악당, 북촌 창우극장 등이 대표적인 공연장이다. 이 중 국립극장이 ‘많은 이들이 국악을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주로 기획한다. 유명 가수와 협업부터 가족을 위한 공연까지 많은 프로그램이 주기적으로 무대에 오른다.
창작 국악의 이해를 돕는 기초 지식
창작 국악은 전통 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어, 국악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으면 더욱 즐길 수 있다. 가요에서 가수의 음색을 즐기듯이, 국악기의 음색은 국악 감상 시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명주실을 줄로 사용하는 거문고와 가야금은 금속과 나일론 줄을 사용하는 기타와는 다른 음색을 낸다. 얇은 갈대 속껍질(청)을 구멍에 붙인 대금은 부드러운 저음과 날카로운 고음을 자랑하고, 겹서(double reed)을 떨어 소리를 내는 피리는 투박하면서도 애절한 음색을 가진다. 창작 국악에서 자주 사용되는 태평소는 크고 시원시원한 금속성 소리가 특징이다. 기악곡 외에 판소리와 같은 성악곡에서도 특유의 발성법이나 몸짓 등을 알고 가면 공연을 더 즐길 수 있다.
국악의 분류에 대한 이해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창작 국악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국악은 크게 궁에서 연주되거나 양반들이 즐기던 ‘정악’과 민중의 소리인 ‘민속악’으로 나뉜다. 정악은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지배 계층의 음악이기에 단정하고 절제된 소리를 내지만, 민속악은 빠른 선율에 투박하고 솔직한 민중의 감정을 담은 음악이다. 창작 국악 역시 각자 바탕을 둔 국악의 하위 장르에 따라 특색을 달리한다. 단정하고 고상한 창작 국악을 찾는다면 정악에, 빠르고 흥겨운 음악을 찾는다면 민속악에 뿌리를 둔 창작 국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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