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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맥주 세계를 취하게 하다
[420호] 2016년 05월 17일 (화) 우윤지 기자 snailhorn@kaist.ac.kr

국내 맥주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소비자의 기호가 다양해지며 수입 맥주 소비량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다양한 재료와 방식으로 만드는 세계 맥주는 제각기 다른 맛과 향을 갖는다. 나라마다 그만의 독특한 제조 기법도 있다. 세계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온 다양한 맥주를 만나보자.

 


다양한 재료에서 맥주가 탄생하다
맥주 제조에는 다양한 재료가 필요하다. 다양한 종류의 재료로부터 다양한 맥주가 만들어지지만, 맥주 제조에 공통으로 포함되는 재료는 보리, 홉, 물, 효모다.

보리는 맥주를 만드는 핵심 재료다. 보리를 발아시키면 아밀레이스(amylase)가 활성화되어, 보리 속의 전분을 활발하게 분해해 발효 가능한 당을 만든다. 나중에 효모가 이를 양분 삼아 알코올을 만들 수 있다. 맥아는 보리를 적절한 온도에서 발아시킨 후 이를 건조하고 볶아서 만든 것을 말한다. 맥아를 볶는 정도에 따라 카라멜 몰트, 로스티드 몰트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풍미를 위해 종종 옥수수, 귀리, 쌀, 호밀, 밀, 수수 등 다른 발효 보조 곡물을 혼합하기도 한다.

홉(hop)은 맥주에 풍미와 쓴맛을 더해주고, 거품을 오래 가게 하며, 박테리아를 억제하는 방부제 역할을 한다. 홉의 첨가량에 따라 맥주의 종류가 달라지기도 한다. 한국 맥주는 홉의 함량이 적은 편이라 종종 밍밍하다는 평을 듣는다. 물은 맥주 양조에서 90% 이상을 차지하는 원료다. 물의 미네랄 성분은 맥주의 풍미와 특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효모는 맥아를 발효시켜 알코올을 만든다. 간혹 독특한 종류의 효모가 발효에 참여해 새로운 향의 맥주가 탄생하기도 한다. 젖산은 보통 부패한 맥주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와일드 에일과 사우어 맥주는 젖산이 함유되어 드라이하고 톡 쏘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맛있는 맥주의 완성, 거품
거품은 맥주와 다른 주류의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이다. 이산화탄소가 표면까지 올라와 생기는 거품층은 맥주의 휘발성 요소를 많이 가두어 좀 더 매력적인 향을 만들어낸다. 맥주의 거품을 형성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기술이 있다. 첫 번째는 강제로 탄산을 주입하는 방법이다. 맥주 제작의 마지막 공정인 여과를 거치면, 효모가 제거되어 좀 더 맑고 발효가 진행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 상태의 맥주를 냉각해 압축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면, 가스가 맥주에 용해된다.

병 속 2차 발효로 효모가 만든 탄산을 맥주 안에 보관하는 기술도 있다. 병 속에 맥주를 넣고 설탕이나 맥아즙, 효모를 더 첨가한 뒤 밀봉하면 미생물이 당분을 발효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탄산이 생긴다.
 

다양한 제조법만큼이나 맥주의 역사도 길다. 새로운 맥주의 종류가 파생되는 과정은 유럽 역사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발효 방식으로 구분되는 라거와 에일
보리에서 맥주가 만들어질 때는 ▲맥아 제조공정 ▲발효 공정 ▲숙성 공정 ▲여과 공정이라는 4단계의 주요 공정을 거친다. 맥주 제조에는 크게 2가지 효모가 쓰인다. 발효가 끝나면 거품과 함께 위로 떠오르는 상면 효모와 밑으로 가라앉는 하면 효모다. 상면 발효시킨 맥주를 에일(Ale)이라 하고, 하면 발효시킨 맥주를 라거(Lager)라고 한다. 에일은 짙은 향과 쓴맛이 나는 데 반해 라거는 청량감이 높다.
에일은 고대 이집트에서 전해진 전통적인 발효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발효는 까다로운 작업이었기 때문에 중세의 양조업자들은 다양한 첨가물을 섞어 맥주의 풍미를 내려 노력했다.

1516년, 바이에른 공국의 영주인 빌헬름 4세가 ‘맥주 순수령’에서 맥주를 홉, 물, 보리로만 제조할 것을 공표하면서 맥주의 발효 방식은 전환점을 맞는다. 양조업자들은 한정된 재료로 부패와 더위로부터 맥주를 지키기 위해 시원한 동굴에서 보관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맥주를 시원한 상태에서 장기간 보관하면 맥주 숙성과정에서 효모가 떠 있다 가라앉으면서 하면 발효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하면 발효는 상면 발효보다 안정한 상태로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라거의 탄생이다.

라거는 하면 발효를 위해 일정 기간 창고(lager)에 맥주를 저장해서 붙은 이름이다. 라거는 대량 생산이 가능해 가격이 저렴하고, 대중적이다. 체코의 필젠(Pilsen)에서 처음 만들어진 맥주, 필스너(Pilsner)가 대표적인 라거다.

미국에서 라거는 20세기 초까지 큰 인기를 얻었지만, 1920년 금주령이 발표되면서 그 생산량이 빠르게 추락했고, 이후 모래폭풍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맥주 원료가 귀해지자 그 명맥이 거의 끊겼다. 최근 크래프트 맥주가 유행하면서 기존의 라거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도 있다.

영국의 노동자들이 즐겨마신 맥주
18세기 초, 런던에서는 코크(co-ke)로 구운 살짝 붉은 맥아로 양조한 페일 에일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페일 에일은 밝은색과 쓴맛이 특징이다.

페일 에일에 맞설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영국의 양조가들은 오랜 발효를 통해 덜 달콤하면서 수준 있는 브라운 맥주를 양조해냈다. 여러 달 숙성되어 미생물이 젖산을 만들면서 시큼한 맛을 냈다. 18세기 런던의 노동자들, 특히 무거운 짐을 배에서 내리고 소포와 상인의 물건을 나르는 포터(porter) 사이에서 유행한 시큼한 맥주에는 포터라는 별칭이 붙었다.

페일 에일의 한 종류인 IPA(India Pale Ale)은 영국이 식민지를 지배하던 시절, 항로로 맥주를 운송할 때 그 향과 맛을 유지하기 위해 도수를 높이고 많은 홉을 넣은 맥주를 말한다. 최근에는 더블 IPA, 트리플 IPA 등 홉의 함유량을 늘려 쓴맛을 더한 제품도 등장하고 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종류의 IPA가 개발되고 있으며, 이는 크래프트 맥주의 대표 주자이기도 하다.

소비자는 색다른 맥주를 원한다
대기업이 점유하던 국내 맥주 시장에 수입 맥주가 소개되면서, 한국의 맥주 시장은 변화하고 있다. 국산 맥주 소비가 줄어드는 반면, 수입 맥주 시장은 매년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소비자의 기호가 다양해졌고, 해외 문화에 익숙해진 소비자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폭음 문화가 사라진 데다 할인 효과로 수입 맥주 가격이 크게 싸져 국산 맥주와 가격 차이가 사라진 덕도 있다. 다양한 맛의 크래프트 맥주가 많아지면서 홈브류잉(home brewing: 가정에서 맥주 만들기)을 시도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맥주는 와인과 달리 테루아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테루아는 포도가 자라는데 영향을 주는 지리적, 기후적인 요소와 포도재배법을 모두 포괄하는 단어다. 같은 품종의 포도라도 테루아가 다르기 때문에 시기, 지리에 따라 와인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반면, 맥주의 주재료인 보리, 홉 등은 포도보다 균질하게 생산, 배송될 수 있다. 때문에 소비자는 항상 일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주재료 생산 환경에 제약이 적어 대량생산이 가능해 좀 더 싼 가격에 소비자가 맥주를 접할 수 있다.
 

다양한 맛과 향의 수입 맥주를 따라잡기 위해 국산 맥주 업계도 신제품을 개발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여름을 맞아 수입 맥주, 크래프트 맥주 등을 소개하는 맥주 축제도 전국 각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여름밤은 맥주를 마시며 보내는 건 어떨까. 다양한 종류의 맥주에 얽힌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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