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을 학교 캠퍼스로 초대하는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 <엔드리스 로드>가 올해로 5년째를 맞이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사회 구성원들이 직접 작품을 연기하는 작품을 추구하는 신지승 감독과,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자 입주한 문부일 소설가, 그리고 여성 간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은 이진주 작가가 참가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세 명의 예술가를 만나보았다.


 

엔드리스 로드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예전에 <카이스트>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르는 KAIST의 모습을 반영했으니 참신하긴 했지만, 결국 연기자들에 의해서 재현된 모습이었다. 학생이 자신의 모습을 직접 연기하는 것을 찍어보면 어떨까 싶어서 지원했다.

‘마을영화’에 대해 설명해 달라
영화라는 매체는 보통 감독이나 작가가 일상의 모습을 상상해 직업 연기자들이 그걸 재현하는 과정이 들어간다. 하지만 내가 찍고 싶은 영화는 실제 주민이나 당사자가 창작 전면에 나서는 영화다. 농촌 주민, 소년원 생활을 하고 있는 비행청소년, 미혼모 등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왔다.
 
KAIST 캠퍼스의 모습은 어떠한가
80년대에 대학 생활을 했는데, 그때 경험했던 캠퍼스와 지금은 많이 다르다. 독특한 생활 방식에 문화적인 충격도 받았다.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 동아리 활동이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등 낯선 환경이었다. 처음에는 단조롭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영화 제작을 위해 열댓 명 정도 학생들과 얘기해 봤더니, 건강하고 재미있게 지내는 듯하다.

현재 촬영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최근 미세먼지 문제가 불거졌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기상청이 만든 앱을 사용한다. 이렇게 정보가 조종당하는 것을 우려한 KAIST 학생들이 미세먼지 현황을 분석하고 가장 안전한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십성지 칩’이라는 것을 만든다는 설정이다. 학생들이 작가, 공동감독, 연기자로 참여하고 있고, 현재 스토리 및 촬영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KAIST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영화를 생각하고 있다.

학교 구성원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원래 극을 만드는 과정이 구성원에게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극이라는 것은 함께 협력하고 머리를 맞대고 창작하는 것이어서 서로의 협력이 필요하다. 함께 관심을 두고 도와주시면 감사하겠다.

 

엔드리스 로드를 알고 지원한 계기
문학계에서 많은 사람이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알게 되었다. 요즘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매우 많지만, 앤드리스 로드는 6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또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문 쪽에 장르가 국한되어 있는데, KAIST에 오면 통섭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수 있고 과학이라는 테마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KAIST에 와서 어떤 일을 하며 지냈나

학교에서 열리는 인문학강좌들을 들었고, 수료증도 받았다. KAMF에도 참여했었다. 개인적으로는 학생들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그림책 읽는 모임을 만들어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그림책은 어린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심리치료에도 많이 쓰이고,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책이다. 그래서 모임의 소재로 그림책을 선택했는데, 날짜를 공지하기도 전에 많은 학생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현재 학생 5명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작가가 보는 우리 학교의 모습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동시에 열심히 논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인 학생들도 많아서 학교 내에 다양한 시선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모든 강좌가 영어로 진행되어 학생들이 영어를 참 잘한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선 주로 중앙도서관에 있었는데, 부지런한 학생이 되게 많았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동기부여를 많이 받고 있다. 시간이 되면 이공계열 공개수업에 참여해 학생들의 모습을 더 보고 싶다.

지금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지
구상은 늘 하고 있다. 학교에 있는 동안 7월 말쯤에 장편이 출간되는데 그것을 수정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폭력을 담은 암울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그 책은 이곳 KAIST에서 수정을 많이 한 작품이라 애착이 많이 갈 것 같다. 또한, 이 책을 볼 때마다 KAIST가 떠오를 것 같다.

 

 

지금 하는 일이 뭔지
걸스로봇이라는 소셜 벤처를 운영하고 있다. ‘걸스로봇’이라는 이름은 여자들의 로봇을 뜻하는데 여기서 로봇은 일종의 상징이다. 남성적인 분야인 공학, 미래적인 분야인 로봇과 거기서 소외된 존재인 여성을 말하고 싶었다. 이공계에서 차별받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매체가 되는 것이 목표다. 소셜 벤처의 특성상 이윤보다는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어떻게 그 일을 하게 되었나

우연이었다. 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육아와 일의 병행이 어려워 그만두었다. 그렇게 무직 상태로 있다가 로봇 동호회에 나갔는데, 참가한 여성의 비율이 너무 낮아 의아했다. 그래서 30대 이후에 사회에서 소외되는 여성들을 주제로 글을 썼고, 로봇 동호회에서 강연도 했다. 그 이후 여성 모임을 열자는 회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여성 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는 소셜 벤처를 만들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이를 통해 여자들이 공학에 관심 가지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페미니즘에 관심 가지게 된 계기는
대학생 때 여성학회에서 활동했었는데 거기 사람들이 너무 좋았다. 다른 학회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 이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결혼을 빨리하면서 학업과 육아를 병행해야 했었는데, 그때 처음 여성으로서의 부당함을 느꼈다. 결정적으로 기자 생활 도중 아이를 가진 여성에 대해 전혀 배려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억울함을 느꼈다. 젊었을 때 멋있었고 잘나가던 알파걸들이 어느 순간 사회에서 사라지는 걸 보고 답답했다. 이렇게 여성을 배려해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실망과 대학 때 받은 좋은 인상이 더해져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학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먼저 여학생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으니 자기 길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해 달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또 이 사회 구조상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삶의 사이클이 순탄하지 않으니,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좋은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학생들에게는 성차별적 시각을 갖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여자는 공부 못해’, ‘여자가 일을 왜 해’ 등의 시선들이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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