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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희곡 속의 거장을 불러내는 법
[419호] 2016년 05월 03일 (화) 고기영 기자 mat9847@kaist.ac.kr

지난달 23일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에서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약간의 배경 지식이 있다면 더 많은 재미를 선사한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을 더욱 쉽고 재미있게 즐기기 위한 방법을 알아보자.

 

왜 셰익스피어를 읽는가?
400여 년 전 쓰인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자칫 현대와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여러 이유에서 아직도 중요하다.

먼저, 그의 작품은 영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요소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당시, 영국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패퇴시키고 정치, 경제적으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예술의 수요 역시 늘어나던 이 시기에 셰익스피어는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며 근대 영어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작품을 쓰며 라틴어와 희랍어에서 수많은 단어를 가져와 빈약한 영어의 어휘를 보충했다. 또한 그는 소네트 같은 운문의 형태를 재정비하고 희곡의 형식에 다양한 실험을 감행하였다. 이러한 셰익스피어의 시도는 후대의 모든 영문학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영어뿐만 아니라 현대 서양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근대 초기는 서구문화의 가치가 정립되던 시기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당대의 생각들을 통해 독자들은 근대 초기의 문화와 그에 바탕을 둔 현대 문화를 더욱 깊이 통찰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아름답다. 언어의 예술가라는 별칭답게, 그의 문장과 비유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유려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또한, 그가 창조한 수많은 개성적인 인물이 속삭이는 삶에 관한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선 호소력을 가진다.

셰익스피어의 언어를 ‘듣는’ 법
셰익스피어가 구사하는 언어를 이해하면 작품 속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그의 언어를 ‘듣기’ 위한 언어다.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36편의 희곡은 본디 극장에서 상영되는 연극을 위한 대본이다. 배우가 말하고 청중들이 듣기 위한 이런 글은, 책과는 다르게 책장을 앞뒤로 넘기며 내용을 되짚어볼 수 없다. 이로 인해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내용을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한 고유의 형식과 표현 방법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극적 언어’는 극의 재미를 배가시키며, 소리 내어 읽었을 때 가장 잘 느껴진다.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운문의 강세다. 셰익스피어는 희곡을 쓸 때 운문, 그중에서도 무운시(black verse)를 주로 사용했다. 무운시는 각운이 없는 영시의 한 가지 형식으로, 약강오보격(iambic pentameter)이란 규칙적인 강세가 특징이다. 영어를 읽을 때는 자연스레 특정 음절을 강조하는데, 약강오보격은 ‘디--디--디--디--디-’과 같이 짝수 번째 음절을 강조하는 강세로서 희곡 전체에 규칙적인 박자를 부여한다. 당대의 극작가들은 이러한 규칙적인 강세를 변형하여 극적 효과를 만들어냈다. 일례로 햄릿에서 살해당한 햄릿의 아버지가 유령으로 나타나는 부분을 잠시 살펴보자.

“I am thy father’s spirit, Doomed for a certain term to walk the night, And for the day cofin’d to fast in fires”

위 구절에서 구문의 첫음절 ‘Doomed’에는 예외적으로 강세가 들어가 있다. 무대에서 공연될 때,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길고 강하게 발음되는 이 단어는 관객의 시선은 단번에 사로잡으며 영혼의 비참한 처지를 극적으로 강조한다.

각종 수사법은 극적 언어에 풍부한 의미를 더해주며 이해를 돕는다. 수사법은 크게 ‘형태’와 ‘비유’로 나뉠 수 있다. 먼저 형태는 글에 특정한 패턴을 만들어 내는 단어의 배열을 의미한다. 자음의 반복, 문장의 대조, 문장의 끝을 잇기와 같은 특정한 형태들은 리듬감과 함께 대사에 고유한 어조를 형성한다.

반면 비유는 표현에 깊이를 더한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비유는 때로는 생소하다. 이는 그의 비유가 ‘존재의 대연쇄’라는 중세 사상에 근간해 있기 때문이다.

존재의 대연쇄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고정된 질서로 조직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질서의 정점인 신 아래로 천사, 남자, 여자, 동물, 나무, 돌 등이 엄격한 위계질서를 이루고 있으며, 각 하부 영역에는 추가적인 위계질서가 또다시 있다. 인간이 생물의 으뜸인 것처럼 동물의 우두머리는 사자이고, 새들의 왕은 독수리다. 이러한 질서 아래에서 비슷한 위치에 있는 존재들은 마법적인 연관성을 가진다고 믿어졌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당시, 이 믿음은 약화하고 있었으나 여전히 강력했고, 셰익스피어도 이런 도식과 상징을 비유에 사용했다.

희곡은 극장 안에서 살아난다
아쉽게도 위에서 언급한 극적 언어는 비영어권 독자들이 느끼기는 어렵다. 운문의 강세와 수사법이 만드는 어조를 섬세하게 느끼려면 원문, 그것도 16세기의 영어로 쓰인 글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상연하는 연극은 동작과 연기로 이런 언어의 장벽을 낮춰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16세기에 쓰인 셰익스피어의 극은 현대의 연극이나 영화와는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먼저, 셰익스피어의 극은 다른 연극처럼 대사를 통해 관객이 극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머릿속 생각을 말하는 독백은 관객을 특정한 입장으로 몰아간다. 가령 <오셀로>에서 사악한 간계를 꾸미는 이아고의 독백을 들으며, 관객들은 음모의 공모자가 된 기분을 느낀다. 극 속의 인물이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방백은 더욱 노골적으로 관객을 극 속으로 끌어들인다. 연극의 규칙에 따라 다른 배우들은 방백을 듣지 못하는 양 행동한다. 이런 연극의 규칙을 이해하고 그에 참여할 때, 관객은 더욱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관객이 연극에 참여하고 몰입한다는 것은 관객이 연극을 대체 현실(alternative reality), 즉 진짜인 척하는 허구로 여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대체 현실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매체는 영화다. 관객들은 적어도 영화가 상영되는 순간만큼은 영화 속 세상이 진짜라고 믿는다.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며 ‘사실 저 초능력자는 배우이며, 초능력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관객의 몰입은 깨진다. 따라서 영화는 각종 특수효과와 사실적인 배경을 사용해 관객이 대체 현실을 진짜라고 믿고 몰입하게 한다.

그와 달리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대체 현실을 묘사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관객은 연극이란 놀이의 규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연극이 대체 현실이 아니라 그저 현실에 대한 비유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공연되었던 글로브 극장의 ‘중립 공간’은 이런 효과를 더욱 강조했다. 객석과 무대 사이에 있는 이 공간은 연극 속 세상에도, 관객이 서 있는 현실에도 속하지 않은 회색 지대였다. 셰익스피어의 극에서 등장인물들은 종종 이 중립 공간으로 내려와 ‘극 밖에서’ 극에 대한 객관적인 논평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셰익스피어의 극을 보며 관객들은 영화처럼 등장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기보다는 극이 표현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에 그 의미에 대해 집중할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를 읽는 다양한 관점
모든 사람은 예술 작품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다만 평론가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을 안다면 이해의 지평을 더욱 넓힐 수 있다. 여기서는 역사주의적 비평과 현재주의적 비평 만을 살필 것이다.

역사주의 비평은 셰익스피어의 글을 당대의 사회적 배경 속에서 파악한다. 가령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기를 망설이는 햄릿을 보자. 햄릿이 고뇌하는 것은 단지 그가 우유부단한 인물이기 때문일까? 역사주의적 비평에 따르면 그의 고민은 봉건제와 근대적 지배구조 사이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살해당한 햄릿의 부왕은 봉건 군주의 미덕을 갖춘 사람이었다. 덴마크의 왕이었던 그는 노르웨이와의 영토 분쟁을 노르웨이 왕과의 결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해결한다. 반면 그를 살해하고 왕이 된 클로어디스는 근대 군주에 가까운 사람이다. 갈등이 영웅적 결투가 아닌 법과 재판을 통해 해결되는 클로어디스의 지배 아래 놓인 햄릿에게 부왕의 혼령은 클로어디스를 죽이라는 중세적 복수를 요구한다. 결국 지배구조의 변화라는 사회적 배경이 햄릿의 고민의 근원인 것이다.

반면 현재주의적 비평은 현재의 관심사에 따라 작품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 주장한다. 따라서 비평가들은 작품 속에서 권력의 본질이나 성 정체성 등 현재 사회의 문제들을 읽어낸다. 가령 셰익스피어는 여러 작품에서 권력이 언어의 해석에 미치는 영향을 묘사한다. 일례로 <베니스의 상인>에서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를 가져가려는 샤일록의 시도는 실패한다. 재판관이 ‘가슴살 1파운드’라는 말을 ‘피를 흘리지 않고 살 1파운드만 잘라야 한다’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만약 샤일록이 이방인인 유대인이 아니라 베니스의 귀족이었다면, 샤일록의 요구는 ‘피를 흘리든 말든 가슴살 1파운드를 잘라간다’로 해석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현대주의적 비평은 권력구조와 언어에 대한 현대적인 고찰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찾아낸다.

 

지금까지 셰익스피어를 보다 즐기기 위해 그의 언어를 ‘듣는’ 법, 연극이란 형식을 이해하는 법, 그리고 작품 속 내용을 해석하는 법을 살펴보았다. 셰익스피어의 글은 때론 복잡하고 난해하다. 하지만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이 끊임없이 읽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을 책으로, 또는 연극이나 영화로 찬찬히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자문 | 유정화 교수
참고도서 | 션 매커보이 - <셰익스피어 깊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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