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 홀 The Hole

비일상은 대부분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나타난다. 상상해본 적도 없는 어둠이 갑작스레 인생을 집어삼킨다. 우리는 비일상이 만들어낸 갑작스러운 일상의 균열에 허둥대면서도, 비일상이 제공하는 일상의 여유 속에서 마음속에 자리 잡은 깊은 구멍을 들여다본다.

오기는 병상에서 눈을 떴다. 이제 그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두 눈동자가 전부다. 함께 사고에 휘말린 아내는 목숨을 잃었고, 동료들마저 그를 잊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지난 삶을 돌이켜볼 고통스러운 시간뿐이다.

간호를 자청한 장모는 모든 것을 잃은 오기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다. 하지만 딸을 잃은 장모와 아내를 잃은 사위의 기묘한 공생은 서로에게 불편하다. 오기는 재활치료를 계속하면 다시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지만, 장모는 혼자 살아남은 사위가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갈까봐 겁에 질린다. 유일한 보호자인 장모가 그를 괴롭히면서, 집은 서서히 불안과 공포의 감옥으로 변해간다.

오기에게 남은 것은 삶을 돌이켜볼 고통스러운 시간뿐이다. 그는 ‘40대란 모든 죄가 어울리는 나이’라는 시인의 말을 빌려 자신의 삶을 정당화한다. 오기는 가끔은 세속적으로 행동한 덕에 사회적 성공을 이륙할 수 있었다. 아내는 그처럼 약삭빠르지 못했다. 오기는 성공했지만, 아내는 실패했다. 계속되는 실패는 사람을 망가뜨렸다. 아내는 고통을 잊기 위해 정원 관리에 온 힘을 쏟았고, 남편이 외도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고발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긴 사색의 고통 끝에 오기는 자신이 아내를 전혀 위로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내의 고통에 공감하는 장모의 괴롭힘은 오기의 자기혐오를 심화시킨다.

소설은 성공과 안정된 삶을 위해 세속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을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 마음속에 생긴 구멍을 키워나가는 그들에게 안쓰러운 위로를 건넨다. 균열은 점점 커져가지만,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내를 향한 사죄를 담아, 오기는 안간힘을 다해 깊은 구덩이 속으로 몸을 던진다. 그것은 그들이 함께 미래를 축복하고, 기도했던 시간을 위해 오기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애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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