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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랑] 길 잃은 청춘의 냉소
로멩 가리 - <게리 쿠퍼여 안녕>
[418호] 2016년 03월 29일 (화) 우윤지 기자 snailhorn@kaist.ac.kr

‘누가 쿠키를 훔쳤지? 나는 아냐, 나도 아냐. 그렇다면 누가 쿠키를 훔쳤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무의미한 동요가 되풀이된다. 기성세대는 참으로 편안하고 안이한 삶을 살았다. 각종 질병과 전쟁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는 기꺼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줄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악’이 존재했다. 현대 사회라는 것은, 세계화라는 것은 참으로 혹독해서 각 개인은 세계가 잘못 돌아가는 것에 대한 책임을 동일하게 부담해야 한다.

존재하지 않는 쿠키를 쫓아 길을 헤매도 알아주는 이 하나 없다. 20대 청년은 이미 세계에 넘쳐나서 제 값을 받지도 못한다. 청년들은 이상향을 꿈꾸기보다는 도피할 곳을 찾으며 세상을 향한 신랄한 비판과 냉소를 쏟아낸다. 자기 자신에게도 알레르기가 있는 인간 혐오자 버그, 영원한 소수자인 흑인 청년 척, 그리고 레니. 이들은 세상과 멀리 떨어진 해발 2500 m에서 세계를 향해 조소를 보낸다.

미국인 청년 레니는 베트남 전쟁 징용을 피해 중립국 스위스로 떠났다. 그의 잘생긴 용모를 좋아하는 여자도 많지만, 정착은 그의 목표가 아니다. 저를 이해하려 드는 것이 두려워 애인이 영어를 배우면 필사적으로 그녀를 떠나려 애쓴다. 레니에게 결혼은 끔찍한 망상이며, 자식을 낳는 것은 또 다른 세상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잔뜩 가시를 세우고 움츠러들며 타인과 멀어지는 것이 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두 염세주의자 레니와 제스는 첫 만남에 꼭 닮아있는 서로를 알아본다. 아버지의 착한 딸이던 제스는 만난 지 하루도 채 안 되는 청년의 품에 안기고, 레니는 제스와의 결혼을 꿈꾸며 그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염세주의에 파묻혀있던 두 청년은 인간과 사회를 불신하면서도 감히 자그마한 희망을 꿈꿔본다.

레니는 미국인 배우 게리 쿠퍼를 닮았다. 언제나 악당에게 맞서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게리 쿠퍼. 세상에 냉소를 보내면서도 레니는 게리 쿠퍼를 향한 꿈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레니는 게리 쿠퍼에게, 어릴 적 환상에게 안녕을 고한다. 이상 세계는 끝끝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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