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우리 학교와 서울대학교, 포항공과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의 각 연구부총장들이 정부의 연구 업적 평가 시스템을 개선하는 선언문을 전달하기로 합의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들이 정부에게 연구 평가 시스템을 개선해 달라는 선언문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미래창조과학부는 추후 연구 평가 시스템에서 정량적인 평가를 대폭 줄이고 정성적인 평가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우리 학교 이희윤 연구부총장을 만나 이번 사건에 관한 설명을 들어보았다.
이번 선언에서 5개 대학은 “우리나라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을 위해 SCI(Science Citation Index) 국제학술지 논문 게재 수, 인용지수 등을 잣대로 연구 업적을 평가해 왔다”라며 “이러한 평가 방식의 유효한지 의문이다”라고 밝혔다. 이 연구부총장은 “정량적인 연구 평가 방식은 초반 연구 실적 증가에는 도움을 주었지만, 이제는 변화가 필요할 때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부총장은 우리 학교가 정량적인 지수를 연구 평가 기준으로 도입한 이후, 십여 년 뒤 유럽과 미국 학계에서도 이러한 방식을 따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정량적인 평가 시스템이 객관적인 과제 선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이를 유지해 왔고, 이에 출판사들 또한 학술지를 홍보할 때 정량적 수치를 이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연구부총장은 정량적인 평가 시스템을 도입한 후로 연구자들이 인용지수가 높은 연구분야만 좇는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분야마다 논문 작성 및 연구 관행이 달라 인용지수가 다른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모든 분야를 똑같이 평가하기 때문에 왜곡이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창적이고 모험적인 연구 분야보다 기존에 논문 인용이 많이 되던 분야에 연구자가 몰리는 문제가 생겼다.
연구 자체의 인용지수를 보지 않고 논문이 실린 학술지의 인용지수만을 보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실제로 인용지수가 높은 학술지에 논문이 실렸다고 해서 반드시 인용이 잘 되는 것은 아닌데, 저명 학술지에 논문이 실리면 연구에 가산점을 주는 평가 항목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네이처(Nature)>, <사이언스(Science)> 등 인기 학술지에 싣는 것이 목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학계에서도 정량적인 평가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한 샌프란시스코 선언이 발표된 바 있다.
이어 이 연구부총장은 현재 연구 평가 방식의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한 가지 평가 방식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평가 기준을 적용해야 하고, 정량적인 평가 기준에서 벗어나 동료 평가(peer review) 등의 정성적인 평가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부총장은 이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연구자 간 신뢰를 강조하며 우리 학교가 이러한 흐름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우리 학교도 현재 연구 평가 시스템의 문제점을 탈피하기 위해 과감하고 도전적인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지난 15일 미래창조과학부는 국가 연구·개발 성과 평가 실시 계획에서 연구자의 SCI 논문 게재 수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방식을 폐지하고, 대신 정성적인 평가를 확대할 것으로 발표했다. 정성적 평가에는 창의·도전성 수준 및 달성 과정·노력 등이 포함된다. 또한, 자율적인 평가를 위해 같은 대학 및 연구소에 소속된 전문가의 평가 배제 원칙을 개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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