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과 학사07 김예은

주말동안 부모님을 뵙기 위해서 늘 타던 시외버스인데 올 겨울에 접어들어서는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앞으로 다가올 추위를 경고라도 하는 듯 뼛속까지 파고드는 칼바람에 사람들이 저마다 얼굴을 감싼 목도리 안에, 흰색이나 푸른색의 마스크가 더해진 것이다. 초기엔 아무리 뉴스에서 무섭게 보도를 해대어도 그저 바다 건너 먼 나라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던 신종플루가 불쑥 불청객처럼 내 옆자리에 앉아버렸다. 지금처럼 심각해지기 전에만 해도 의심환자라고 눈초리를 받을까봐 마스크를 쓰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이제는 너도나도 목도리처럼 얼굴을 덮는다. 믿기지 않게도, 갑작스레 나타난 감기 하나가 어린아이이든 노인이든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게 하며 전 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신종플루가 감기증상이면서도 커다란 골칫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은, 사람들이 이 질병에 대한 항체를 체내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신종이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이 낯선 침입자에게 당황하며 공간을 내어준다. 그래서 1년에 몇 번씩도 걸리는 감기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갈 수가 없는 병이다. 이렇게 의료기술이 발달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접해보지 못한 것들 앞에선 쩔쩔매고 있다니, 결국 안정된 삶이란 존재할 수 없는걸까?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많은 위험들이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 숨어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그것들이 언제 닥쳐올지 우리에게 미리 귀띔을 해준다고 해도, 우리는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해결책을 찾기가 난감할 것이다. 어떤 종류의 위험인지, 사람들 각자에게는 또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는 이론만으로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종플루의 현상만 봐도 기존의 건강하던 사람들은 약만 잘 먹으면 무사히 넘어간다면서도 이례적인 상황들이 발생하지 않던가. 이러한 현실 속에서 불안함을 느끼던 내게도, 신종플루는 찾아왔다. 다만 그 ‘접해보지 못한 아픔’이 닥친 곳은 타미플루를 삼키고 며칠동안 누워있으면 떨어져나가는 몸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10월 29일 목요일 밤, 평소에 급한 일이 아니면 전화를 거시지 않으시는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낯선 시간대의 전화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기도 전에 건강이 많이 안좋아지셔서 누워계시던 할아버지를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아버지께선 침착한 목소리로 내가 찾아와야 할 장례식장과 시간에 대해 말씀하셨다. 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지만, 머릿속에 돌아다니던 모든 생각들은 동시에 걸음을 멈춰버린 것 같았다. ‘할아버지께서 결국엔 돌아가셨다’라는 사실이 컴퓨터처럼 내게 입력되었고, 나는 멍해진 채 그 문장을 해석하기 위한 어떤 감정들도 찾아내지 못했다. 내 머릿속엔 그 현실을 가슴에까지 닿게 할 수 있는 어떤 수단도 공식도 존재하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이, 그러한 상황이 내겐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삶 속엔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잊고 살아가기로 하는 진실들이 있다. 할아버지의 죽음이, 내겐 그렇게 코앞에 있는 게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듯이 잊고 살아가게 되는 한 가지였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일주일 전부터 들었지만 처음으로 '죽음' 을 겪게 되는 데에 그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진짜 닥치기 전까지는 진정으로 될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존경하던 유명한 사람들의 죽음이 뉴스를 통해 알려지고 인기검색어 위에까지 떠도, 지금까지의 내 삶 속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 사라져버린다는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일이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존재하던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허무함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는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그 죽음이라는 것이 비로소 내 가슴에까지 닿게 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처음’을, 신종플루보다도 더 무섭고 깊게 마음으로 앓아야했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내내, 지금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앞으로 영원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그 사실은 진정으로 느낄 수가 없었다. 일찍 일어나서 온통 검은 옷으로 맞춰 입고 걷는데, 세상은 어떻게 그렇게 밝고 환하기만 한지 나 혼자 세상에서 분리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이 세상 위를 70년 넘는 세월동안 살아가던 사람이 먼지처럼 사라져버렸는데, 어떻게 풀잎 하나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세상은 고요할 수 있는걸까. 장례식장에 가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더 이상 수척하신 할아버지가 아니라 영정사진 하나라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고통이 눈물로 흘러나왔다. 삼일장을 하는 동안 애써 태연해지려고 참아내던 눈물도, 발인하던 날 손녀로써 치토하는데 투두둑, 흙이 할아버지의 몸이 아니라 그 위의 관에 닿아서 내는 소리에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젠 현실 속에서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기억을 통해서만 되새겨지는 할아버지의 모습들을 나는 소처럼 계속 되새김질했고 눈물을 짜냈다. 학교에 돌아와서 전공시험을 앞두고 다른 일들로도 정신없고 바쁜 상황이었는데도, 그러한 슬픔은 규칙도 없이 내 마음속에 찾아왔다가 나가는 것을 반복했다.


이렇게 힘든 일이 닥쳤을 때마다 매번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왜 자꾸 나를 슬프게 만드는 그 일을 생각해내냐는 것이었다. 당장에야 그 고통이 너무 커서 불가능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는 마음만 굳게 먹으면 얼마든지 덜 생각하고 덜 괴로워할 수도 있을텐데……. 난 상처위에 굳은 딱지를 다시 떼어내며 피가 나게 하는 것처럼 그 아픔을 반복해서 삼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건 나에게서뿐만은 아니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첫 사랑을 다시 되새기며 마른 눈물을 다시 짓곤 하던 친구들도 있었고, 굳이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슬픈 생각들을 다시 기억 속에서 꺼내곤 하는 사람들도 많이 봐왔다. 사람들은 누구나 최대한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믿던 내게 그런 모습들은 다양한 생각들을 해보게 만들었다. 특히 내 눈에 비추어진 나는 ‘슬픔’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러한 내 모습 속에서 진정으로 내 마음이 향해있는 곳은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싶었다. 그 이유는, 내가 나 자신의 의지로 좀 더 슬프기로 선택이라도 한 것이라는 결론이 난다면 더 이상 그렇게 내게 머물고 있는 슬픔들에 대해 투정부릴 수 있는 권리가 내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내 인생이 너무 초라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질 것 같았다. 우리가 마음속에서 길게 끌어가는 이 슬픔들은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나는 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생각을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되새기며 눈물을 짓고, 이러한 것은 언제까지 반복하게 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과학 잡지 하나를 뒤적이다가 찾아내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면역력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아기들이 무언가를 집기 시작할 때, 장난감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입에 물면 어머니들은 혹시라도 건강에 위협이 될까봐 저지하지만, 생각만큼 위험한 일은 아니라고 한다. 여러 가지를 접해보지 않아 체내에 항체가 없는 아기들이 본능적으로 이것저것 접해보며 체내에 항체를 생성하여 면역력을 키우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기들이 의식적으로 그 면역력을 이해하며 행동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냥 신기해서 이것저것 만져보는 거겠지 생각하고 말았던 그러한 아기들의 행동들이 본능적인 면에서 설명된 것을 보며 신선하고 놀랍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이미 우리가 머릿속으로 일일이 생각하고 의식하지 않아도 이루어져가고 있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몸에 상처가 났을 때에도 우리가 직접 새 살이 돋아나라고 명령하지 않아도 어느새 나아있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가 낫지 말라고 명령한다고 상처가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계속해서 상처를 만들어내도 그 의지에 반해서 몸은 회복되는 과정을 따른다. 이러한 것을 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잠재되어있는 많은 능력들을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도 깨닫게 되면서, ‘살아가려는 본능’ 은 생각보다 굉장히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런 놀라움에 우리에게 잠재되어있는 본능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다가, 슬픔에 대항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꽤 마음에 드는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는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면역력을 키워가는,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한 본능적인 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 마음에 안고 있는 상처를 지워야 할 것 같지만 자꾸 떠오르고, 생각하고, 되씹는 것은 어쩌면 자꾸 부딪치고 부딪치면서 상처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잊고 싶은데, 그래야 할 것만 같은데 자꾸 되씹게 되는 것도 어쩌면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그 사람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낫기 위해 부딪치고 또 부딪친다. 그리고 무감각해지 위해 느끼고 또 느낀다. 아무렇지도 않을 때까지, 아니 적어도 점점 덜해질 때까지 반복될 것이다.


이러한 결론에 누군가는 이렇게 반론할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너무 다르고, 그렇게 슬픔을 되새김질하는 동안에 더 좌절하고 고통 받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내가 슬픔에 대한 되새김질을 설명해내보고자 했던 것은 그러한 상황을 없앨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든가 해결책을 내버리겠다는 마음에서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에서 반복되는 슬픔에 지쳐가는 동안이라도 위로될만한 이유를 찾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 슬픔은 점점 더 줄어들어갈 것이고, 우리는 적어도 그 슬픔을 이겨내지 못해서 자꾸 부딪히며 아파하는 게 아니라 천천히 면역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그 슬픔에 맞서고 있다고 생각을 바꾸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왜 나는 바보처럼 아직도 이 슬픔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가’ 하고 자책하던 마음만이라도 사라질 수 있고, 우리 모두는 ‘슬픔 속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아지기 위해 ‘슬픔과 부딪혀보고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신종플루처럼 내게 처음으로 닥쳐온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낼 수 있는 감기같은 슬픔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슬픔은 앞으로도 삶 속에서는 몇 번이고 더 되풀이될 것이다. 삶 속에서 많은 슬픔을 경험했다고 해서, 슬픔이 결코 슬프지 않아질리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면역력이 길러지고 있는 내게서 그것이 처음과 같은 크기로 고통스럽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며 많은 일들을 경험하는 만큼, 우리가 더 강하고 성숙해져갈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고통의 크기에 비례해서 나아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생각한 것보다 너무 오래일 때, 어쩌면 100년도 살지 못할 내게 1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일일 때 그 상처와 쓰라림은 평생 ‘면역 진행 중' 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평생을 ‘면역 진행 중' 일 것을 본능적으로, 그리고 이제는 내 마음까지 더해서 택할 것이다. 지금 여전히 슬픔 속에 있는 사람들도 슬픔은 슬플 수밖에 없더라도, 슬픔을 되새기는 일만큼은 더 이상 슬프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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