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보면 여주인공 역할로 나오는 전지현은, 참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가서 바로 따지고, 자신과 똑같은 패션을 한 사람을 혼내는, 말 그대로 엽기적인 사람입니다. 현실에서 저런 사람을 찾을 수 있겠냐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막무가내에 가까운 그녀이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매력이 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특히나 한국 사회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튀는 사람을 싫어하는 환경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굉장히 많이 의식하면서 살았습니다. 제가 저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이미지에 저를 맞춰 가면서 살았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 봉사심이 뛰어나 남을 잘 돕는 아이.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효도하는 아이. 다양한 수식어가 저를 묘사했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물론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일도 중요하고, 부모님을 사랑하고 효도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요지는, 그저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친구와 수업을 가던 도중 날씨가 좋아 그대로 자전거 산책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같이 수업을 들으러 가던 친구들은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저와 제 친구는 머리를 붉게 물들이고, 새 옷을 사고, 서로 사진을 찍어 주며 그 날 하루를 보냈습니다. 물론 일탈의 기쁨도 있었겠지만, 그날 가장 좋았던 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처음 느낀 자유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수업을 들을 때 놀았다고 해서 결코 후회하지 않았고,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결정을 할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남들의 시선을 벗어나는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모두가 Yes라고 할 때 항상 No라고 하는 반항아는 아니지만, 제 가치관에서 맞다 고 생각하는 행동들은, 제가 하고 싶었던 행동들은,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오고 있습니다. 가령 시험 기간에도 꼬박꼬박 1시간씩 운동을 한다거나, 보드를 타고 수업을 들으러 간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눈에 띕니다. 가끔은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행복이 더 크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느끼는 만족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SNS에서 “다른 친구들은 다들 동아리를 가는데, 나만 방에 혼자 남겨져 외롭다. 남들은 다 하는데 왜 나만 이러는지 모르겠다.” 라는 한 새내기의 글을 보았습니다. 위로해 주고 싶어서 길게 댓글을 달아두었는데 학우분이 읽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해주고 싶었던 말은, 위로의 말과 더불어 그런 일로 상처 입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사람이라면,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결국은 나 자신에게 인정받고,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볼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나답게 삽시다. 뭐든지 다 괜찮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선배가 해주셨던, 아직도 제가 마음에 품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뭐든지 다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슷한 삶을 살아갈 필요도 없고, 어떤 일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가는 길이라고 해서 따라갈 필요도 없고,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이라고 해서 두려워서 시도도 해보지 않을 필요도 없습니다. 아마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아는 것은 자신밖에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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