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의 정의와 역사, 그리고 그 의의에 대해

인공지능 컴퓨터가 치열한 수 싸움 끝에 인간에게 승리한다. 지난주 바둑 기사 이세돌 9단과 대국을 펼친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 십년 전 SF 작가들이 상상해온 미래의 모습 중 하나다. 인공지능이 현실화되고 <인터스텔라> 같은 SF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지금, SF는 더 이상 우리에게 생소한 장르가 아니다. 친숙하면서도 때론 궁금증을 일으키는, SF에 대해 알아보자. 

 

과학의 의미를 고민하는 장르의 탄생

SF 장르의 SF, 즉 Science-Fiction은 본디 과학소설을 의미한다. 18세기 말, 산업자본주의가 인간의 삶을 빠르게 바꾸면서 비로소 문학은 과학기술을 다뤄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1818년 탄생한 메리 쉘리의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이하 <프랑켄슈타인>)은 최초의 현대과학소설로 일컬어진다. <프랑켄슈타인> 이전에도 과학기술을 소재 삼은 작품들은 있었으나, <걸리버 여행기>와 같은 ‘선구적 과학소설’들은 과학기술을 사회 풍자나 재미를 위한 도구로만 이용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후 등장한 쥘 베른, H.G 웰즈 등 유럽 작가들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성찰을 이어나갔다.

한편, 미국의 잡지 출판인들은 이러한 단발적 시도를 과학소설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묶고자 했다. 이들은 유럽 작가들과는 달리, 과학에 대한 고민을 담는 동시에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그러한 풍토 아래 과학소설의 대부라 불리는 휴고 건즈백이 1926년 과학소설 전문 잡지 <어메이징 스토리즈(Amazing Stories)>를 창간하자, 수많은 과학소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천재 발명왕들의 이야기부터 미녀와 함께 외계를 탐험하는 모험담까지, 수많은 상업 소설들이 독자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과학소설의 양적 성장에 기여했다.  이후, 과학소설계는 합리적인 추측과 이성적인 사고를 도입하며 질적 성장 역시 이뤄낸다. 

 

SF와 판타지는 어떻게 다른가

이처럼 과학소설은 과학기술의 탈을 쓴 카우보이 서부극부터, 인공지능 로봇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한 아이작 아시모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포함하며 성장해 왔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이 등장하기만 하면 SF 장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영화 <스타워즈> 속에는 거대한 우주선과 광선총이 등장하지만, 동시에 제다이 기사들은 ‘포스’라는 초능력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스타워즈>는 SF에 속하는가, 아니면 판타지에 속하는가? 

사실 SF와 판타지(환상문학) 사이의 경계는 불명확하다. 이는 고대의 과학이 상상에 많은 부분 의존했고, SF와 판타지 모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며 신화에서 떨어져 나왔듯이, SF 역시 판타지와 분명히 다른 특성을 보인다. 가장 단순한 차이점을 들자면, 판타지는 아예 실현할 수 없는 것을 다루지만, SF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잠재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들을 다룬다는 점이다. 

작품의 목적 역시 큰 차이 중 하나다. 판타지는 소망을 형상화한 장르이기에 인물들의 성격이 명확하게 규정되며, 주로 권선징악적인 질서의 회복을 추구한다. 가령 조앤 K. 롤링의 <해리 포터>에서 인물들의 선악 구도는 명확하며, 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마법 세계는 예전의 질서를 회복한다. 반면 SF는 특정한 과학기술로 인해 변화하는 인간 사회와 새로운 질서의 수립을 표현한다. 가령 타임머신이 등장한다면, 각국은 과거로 돌아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바꾸려 들 것이며, 시간을 넘나드는 온갖 암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혼돈 후 정립된 질서는 과거와 다르다. 이것이 바로 SF 장르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다.

 

과학의 변화가 창조하는 새로운 질서

그렇다면 SF가 표현하는 새로운 질서, 즉 변화는 무엇이며, 어떠한 가치를 가지는가? 우선 SF는 개인이 아닌 사회와 환경의 변화를 표현한다. 가령 자원이 풍부한 외계 행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 <아바타>에서 인간 주인공과 외계인 여주인공의 연애는 SF적 관점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류의 욕망을 대표하는 주인공이 외계인들에게 상호 공존의 의미를 배워 변해간다는 점이다. 

 SF 작가들은 하드 SF와 소프트 SF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사회와 환경의 변화를 고찰한다. 하드 SF는 구체적으로는 기존에 존재하는 이론, 또는 그와 논리적으로 어긋나지 않는 가정을 바탕으로 있을 법한 미래를 탐구한다. 예를 들어 할 클레멘트의 장편 소설 <중력의 임무>는 백조자리 61을 공전하는 실제 행성 메스클린에 사는 외계 생물과의 조우를 그린다.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클레멘트는 수소로 호흡하는 지적인 외계 환형동물을 구상했으며, 그들이 인류와 도덕이나 풍습, 제도가 달라도 공동의 이익을 위한 상거래는 가능하리라라 추측했다. 이처럼 하드 SF에서 과학은 단순한 수단이 아닌 핵심 소재로 엄밀하게 다뤄지며, 이는 가능할 법한 미래나 외계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의의를 가진다.

 반면 소프트 SF는 과학기술의 엄밀함보다는 그것이 인간, 그리고 인류 전체에게 가지는 의미를 사회과학으로 분석하려는 경향이다. 소프트 SF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과학소설은 논문이 아닌 문학 작품이라 주장하며, 작품 속 과학기술의 원리나 실현 가능성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가상의 과학기술이 불러올 법한 세상과 인류의 변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기술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하드 SF와는 달리 과학기술의 인간에게 가지는 가치를 질문하며, 가상 세계를 통해 현재 사회의 모습을 반추하기도 한다. 기술에 중점을 둔 하드 SF적 경향과 그 속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에 집중하는 소프트 SF적 경향은 작품 속에 공존하며 각기 다른 가치를 부여한다.

 

한국의 SF 시장을 들여다보다

 SF의 특징과 가치는 장르 전반에서 드러나지만 다른 매체들의 원류인 과학소설에서 두드러진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과학소설 시장은 일본이나 중국 등에 비해 매우 작다. 2000년대 이전에 우리나라의 과학소설 작가는 복거일과 듀나(이영수) 뿐이었으며, 연간 과학서적 출판 총수는 30권 이하였다. 다행히도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시행된 과학기술창작문예를 통해 배명훈, 김보영, 박성환 등의 신진 작가들이 등단하며, 양질의 과학소설이 꾸준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고장원 SF 평론가의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과학소설 출판 총수는 50여 권으로 늘었으며, 프로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과천과학관의 ‘SF 어워드’가 2014년부터 시행되며 SF 시장에 조금씩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한 SF의 역사는 19세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발맞추어 SF는 과학의 미래와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과거의 상상이 현실로 다가오는 지금, SF 장르가 나아갈 방향이 주목되는 이유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