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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산책] 부끄러움을 아는 이를 위하여
이준익 - <동주>
[417호] 2016년 03월 15일 (화) 우윤지 기자 snailhorn@kaist.ac.kr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한국 영화가 성공하기 위한 몇 가지 공식이 있다. <동주>는 흥행하는 영화와 정반대다. 유명한 스타 배우가 등장하지도, 특별히 아름다운 연출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낯선 북간도 사투리, 게다가 어딘가 무거워 보이는 흑백 영화는 거부감부터 불러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편한 역사를 다루는 저예산 영화 <동주>가 관객들을 울리고 있다.

<동주>는 애국심을 강요하기보다 불합리한 시대를 살아간 청춘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개인의 삶에 시대적 배경은 어떤 방향으로든 반영된다. 우리말로 시를 쓰고 싶던 소년의 꿈은 언어를 박탈당한 나라에서 길을 잃었다. 이광수, 최남선 등 존경하던 작가들마저 하나둘 일본의 앞잡이로 변모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윤동주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정지용 선생의 조언에 용기를 얻어 일본 유학을 가고, 몽규가 혁명을 계획할 때에 시를 쓴다.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길 바랐던 그는 자신에게 세상을 바꿀 용기가 없어 문학의 뒤로 숨는 것이 아닌지, 이 시대에 시를 쓰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조용한 분노, 설움, 그리고 부끄러움. 흑백 화면 속 절제된 감정은 쉬운 말로 쓰여진 정제된 시어와 닮아있다. 

동주의 부끄러움은 ‘몽규’를 통해 가속된다. 우리에게 송몽규는 독립운동가보다 윤동주의 친구로 더 익숙하다. 그는 재능이 있음에도 문학을 포기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세에 중국으로 떠나 독립군 훈련을 받았고, 일본을 더 알기 위해 유학을 선택했다. 몽규는 동주가 문학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꿨다. 자신이 포기한 길을 걸어가는 친구를 다독이며, 그의 몫까지 독립을 위해 애썼다. 둘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삶을 불태운다. 담담하게 나레이션으로 읊어지는 윤동주의 시 <자화상>은 거울에 비친 듯 닮아있는 그들의 내면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국, 몽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감옥에 갇힌다. 이준익 감독은 그를 ‘과정은 아름다웠으나 결과를 내지 못한 인물’이라 말한다. <동주>는 그의 삶을 조명하며, 잊혀진 수많은 송몽규들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동주가 아닌 몽규인지도 모른다.

일본 순사는 ‘학생들을 선동해 조선의 독립을 꾀했다’라는 죄목을 들이밀며 순순히 죄를 인정하라 강요한다. 몽규는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해서 원통하다”라고 외쳤고, 동주는 이 시대에 시인을 꿈꾼 것이 부끄럽다며 서명을 포기했다. 

독립을 겨우 6개월 앞두고, 그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 죽어갔다. 젊은 나이에 스러져간 청춘들은 마지막으로 그들이 꿈꿨던 무엇인가를 토해낸다. 하늘과 바람과 별이 되어 시를 노래한 윤동주의 삶은 이미 한 편의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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